본래 그림 쪽에 관심이 많았는데 갑자기 다른 길로 빠졌다. 그래도 역시 무언가 꾸미거나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해 다시 도전했고, 이 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언제까지 그 일 할 것 같나?
그것이 늘 고민이다. 오래 하고 싶긴 한데 한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한 켠에 맴돈다. 그렇지만 설령 내가 다른 일을 하게 되더라도 디자인을 완전히 놓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든다.
주변에서 '애플'하면 떠오르는 사람, 애플 제품 애호가를 인터뷰이로 섭외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애플(혹은 애플의 제품)이란 어떤 존재인가.
디자이너에게 있어 ‘시각적’이라는 것은 하나의 세트이다. 이왕 동일한 용도의 제품이라면 아무래도 보기 좋은, 보다 잘 만든 예쁜 제품을 선호하는 게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 물론 미적감각은 주관의 영역이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선 애플은 그냥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세밀한 센스가 들어간 잘 만든 제품이라 생각한다.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애플 제품은 인터페이스가 깔끔하고 업무를 하는 데에 있어서도 디자인에 최적화되어 있다. 때문에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제품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로 몹시 중요한! 실색상을 가장 잘 구현할(보여줄) 수 있다던가.)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 같은 디자이너에 대한 밈이 특히 많다. 디자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디자이너와 협업할 때 지향했으면, 반대로 지양했으면 하는 태도가 있다면?
예로 든 밈처럼 디자이너를 괴롭게 하는 밈이 유독 많긴 하다. 아무래도 디자이너에게는 명확한 내용의 요청(피드백)이 가장 이상적이다. 목적지가 명확해야만 서로가 원하는 결과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 나온 김에 반드시 알아주었으면 하는 게 하나 있다. 디자인이 요청서 그대로 출력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성능 좋은 프린터가 아니다. 디자인 작업은 그 자체로 치열한 고민과 기획의 과정이다.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부심을 느낄 때, 반대로 자괴감이나 분노를 느낄 때는 언제인가.
요청한 사람과 작업자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왔을 때! 내 손으로 만든 것들이 세상 어딘가에서 잘 쓰이고 있을 때 아무래도 힘도 나고 기쁘다. 반대로 처음의 방향과 전혀 다른 길로 향해갈 때는 어김없이 혼종의 결과가 나온다. 그럴 땐 키메라를 만든 연금술사의 심정이 이런 걸까 싶다. 분노보다는 속상하다는 감정을 깊이 느낀다.
풀칠의 모토는 ‘밥벌이 그 이상의 풀칠을 위하여’다. ‘돈 벌어야 해서' 말고 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일단은 재미 때문이다. 매번 잘할 수 있을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절반 이상은 설렘에 가깝다. 이번에는 내가 어떤 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생각해낸 것을 또 잘 표현해 낼 수는 있을까. 흥분도 되고 두근거리기도 하다. 그런 생각들이 내게 재미를 주고, 내가 마우스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된다. 그래서 조금은…(가끔은 아주 많이ㅠ) 힘들어도 지금까지 디자인을 업으로 삼는 게 아닐까. 별일 없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이 일을 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