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는 사람 몇 명이 타있었다. 명찰을 보니 같은 건물의 00홈쇼핑이었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P가 완전 박살났지. 왜 박살났는데. 그거 한지 마스크 있잖아. 걔 담당이라 완전 깨졌잖아. 그러고 보니 점심시간에 상품기획실 사람들이 00홈쇼핑이 있어서 우리는 다행이라고, 덩치가 작은 게 이럴 땐 좋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회사는 당신네들이 총알받이가 되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또 그 짝 안에서도 누군가는 박살난 동료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다는 것이 어딘지 우습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그 박살났다는 P의 표정이 궁금해졌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지만 왠지 스타벅스 가는 길 흡연구역에 있지 않을까, 거기 있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여덟 잔을, 내 몫으로는 아침에 팀장 자리에 놓여있던 것과 같은 그란데 사이즈를 주문하고, 회사로 돌아와서 커피를 나눠줬다. 이제 이 커피를 마시며 남은 500여 건의 환불을 처리하다 보면 악의 평범성이고 책임이고 나발이고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이 남게 될 것이다. 박살이 났다는 00홈쇼핑의 P는 몇 시에 퇴근하려나. 그란데 사이즈의 플라스틱 컵에 인쇄된 사이렌이 대답했다. 알게 뭐니? 그러게. 알게 뭐람. 얼음이 벌써 녹았는지 커피 맛이 밍밍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 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