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서 졸음과 싸우며 녹취록을 풀었다. 두세 시간이면 끝낼 일인데 피곤해서 인터뷰이의 말이 도통 한 번에 들리지가 않았다. 일을 완전히 마쳤을 땐 아침 아홉시였다. 넌 아직 청춘이구나라는 친구의 말이 내게 무슨 신통함을 부린 것인지 자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자면 영영 청춘이길 포기하는 일이라도 되는 양. 오후 2시엔 사이드 프로젝트를 같이 하는 친구와 회의를 하기로 했고 밤 10시 반엔 집 근처 독서실을 청소하는 알바를 하기로 했다. 이 모든 일정을 마치면 새벽 한시 반이 될 것이다. 어제 친구와 와인을 마신 일은 돈이 안되는 일이고 녹취록 푸는 알바는 돈이 되는 일이다. 오후의 사이드 프로젝트 회의는 돈이 안되는 일이고 독서실 청소는 돈이 되는 일이다. 0과 1이 반복되는 하루다. 0과 1로만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선 청춘,조로, 젊음과 힘, 와인, 피곤 같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의미없다. 이 디지털 코드 같은 하루는 21세기를 사는 초인들의 생활패턴이다. 깨지지 않은 패턴에선 아름다움이 생겨난다. 이 아름다움을 위하는 마음으로 하루 종일 몸을 움직였다. 독서실 청소를 마치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여태 읽지 않은 친구의 카톡에 답했다. 나 이러저러한 하루를 마치고 들어왔다. 너랑 와인을 마신 게 먼 과거의 일 같다. 친구가 답했다. 넌 역시 아직 젊구나.(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