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로 겪은 왜곡은 대학 졸업 후 인턴을 할 때였다. ‘연구원’들이 다니는 회사였다. 나는 연구원이라길래 다들 백색 가운을 입고 현미경을 들여다보거나, 산처럼 쌓인 논문에 파묻혀 있을 줄 알았다. 근데 막상 회사에 와보니 수석연구위원, 연구위원, 연구원 모두 등산복과 정장에 절묘하게 한발씩 걸친 복장으로 예산을 쓰고 외주를 주고 회의를 여는, 걍 보통 회사원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게 아닌가. 대학교수들이 행정업무에 치여서 연구를 못한다는 뉴스를 본 적 있는데, 교수들이 항의 차원에서 아예 연구원의 뜻을 ‘행정업무를 맡은 자’로 바꿔버리기로 합의라도 한 걸까? 사실 그곳에서 연구원은 직무의 성격이 아니라 고용의 형태를 드러내기 위한 단어였다. 연구원의 의미는 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은 ‘담당’이었다. 맡은 일은 있되, 인텔리한 이미지는 취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가 잘 드러나는 직함이다. 나는 걍 인턴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