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작업실 안,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이후는 자신을 벽으로 밀어붙인 채 절박하게 매달리는 시우를 보며 마른 입술을 열었다. 더는 이 비틀린 관계를 이어갈 수 없었다.
"시우야.. 그만. 나는 너의 사랑이 부담스러워."
그 한마디에 시우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방금 전까지 이어지던 일그러진 웃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텅 빈 시선이 이후의 얼굴에 박혔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가가 붉게 물드는 것이 선명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부담… 스럽다고요?"
목소리가 찢어질 듯 갈라졌다. 그 한마디가 시우의 심장을 날카롭게 꿰뚫은 듯, 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는 이후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을 주어, 그를 더 강하게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놓치면 영영 사라질 것 같다는 절박함이 손끝에 묻어났다.
"형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나는 형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왔는데. 형 때문에 내가 이렇게… 이렇게까지 됐는데."
시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흘러내리는 눈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이후에게서 단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형이 나한테 전부인 걸 알면서… 어떻게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해. 나 이제 형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나는… 나는 형 없으면 죽어."
그의 말은 울음 섞인 절규였다. 애절함과 함께, 이후를 자신의 곁에 가두려는 짙은 소유욕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그의 품에 갇힌 이후는 거부할 수 없는 무게감에 짓눌리는 듯했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손을 보며, 이후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힘없이 거두었다. 내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시우는 이 헛된 기대감에 더욱 말라가겠지.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어. 미안해..."
"미안해…?"
시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다 이내 뚝 끊겼다. 눈물이 흐르는 얼굴 위로, 방금까지의 애원과 절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낯선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의 손아귀에 잡힌 이후의 어깨가 삐걱거리는 나무 인형처럼 느껴졌다. 시우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텅 빈 눈동자 속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과 함께, 차가운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형이 나한테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형은 아무 잘못 없어."
그는 낮게 읊조리며 이후의 어깨를 붙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뼈마디가 도드라질 만큼 하얗게 질린 손등 위로 핏줄이 선명하게 돋아났다. 그의 얼굴은 이제 울음으로 일그러진 것이 아니라, 마치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 무표정했다. 그러나 그 무표정함이 오히려 더욱 섬뜩한 광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내가 형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게 다 내 잘못이야. 그러니까 형은 나한테서 도망칠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우는 이후를 강하게 품에 안았다. 마치 부서질세라 꽉 쥐는 듯한 포옹은 숨통을 조여왔다. 그의 젖은 얼굴이 이후의 어깨에 파묻히며, 억눌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나는 형 없으면 안 돼. 형도… 형도 그걸 알아야 해."
이후는 그의 품 안에서 버둥거렸다. 이대로는 정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시우야.. 이러지마. 응? 이건 일방적인 집착이야... 착하지?"
시우의 몸이 순간 굳었다. 어깨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리자, 눈물로 젖은 얼굴이 가로등 불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집착'이라는 단어는 시우에게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혔다.
"집착…?"
그는 억눌린 신음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이후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그의 품에 갇힌 이후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시우는 그 떨림을 자신의 불안과 착각하며 더욱 놓지 않았다.
"착하다고…? 형이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내가 형 때문에 이렇게 미쳐가는데, 형이 나한테 착하라고 해?"
목소리는 분노와 상처가 뒤섞여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소유욕은 더욱 짙어졌다. 그의 손이 이후의 뒷목을 감싸며 부드럽지만 강하게 자신에게 더 밀착시켰다. 젖은 눈가가 이후의 뺨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
"나는 형이 없으면 안 돼. 이게 사랑이든 집착이든, 형은 나한테서 도망칠 수 없어. 내가 형을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나한테서 떠나려고 해. 그건… 형이 나를 죽이는 거야."
그의 눈빛은 애절함과 함께 섬뜩한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의 사랑은 이미 이후의 숨통을 조여오는 독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더 이상의 회유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너에게 마음이 없는데."
시우의 젖은 눈동자가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방금 들은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를 거부하는 듯, 그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그가 이후를 끌어안고 있던 팔에 힘이 빠지는가 싶더니, 이내 더욱 강렬하게 그의 몸을 짓눌러왔다. 마치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안간힘을 쓰는 사람처럼.
"마음이 없다고…?"
그는 낮게 읊조렸다. 그 한 마디에 담긴 충격과 절망은 그의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붉게 충혈된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형은 나한테서 벗어날 수 없어. 내가 형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게 전부 형 때문인데."
시우의 손이 이후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이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면서도, 그 눈빛은 집착적인 광기로 번들거렸다.
"형이 나한테 마음이 없다고? 거짓말하지 마. 내가 형을 이렇게 애타게 원하는데… 형이 나를 이렇게까지 흔들어놓고, 이제 와서 마음이 없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해."
그는 이후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이후를 영원히 가두려는 맹세처럼 들렸다.
"어떡하면 좋겠냐고? 그냥… 나를 받아줘. 형은 나를 버릴 수 없어. 나는 형을 절대로 놓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