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중개 업체의 포트폴리오는 단순하다. 한마디로 '수급 불균형'으로 돈을 번다. 특정 장소와 시간에 원자재를 사들인 다음, 지역과 시간을 달리하는 과정에서 차익을 얻기 위해 그 원자재를 되파는 것이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원자재의 공급과 수요가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 (네 번째 줄기는) 1980년대에 시작된 세계경제의 금융화였다. 그간 원자재 중개 업체는 계약을 맺은 원자재를 선적하기 위해 '전에' 대금을 내야 했으므로 현금 확보의 필요성을 항상 느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원자재 중개 업체는 보유한 현금 대신 차입금과 은행 보증을 활용했다. 그렇게 대량 거래와 대규모 자금 조달의 시대가 열렸다.
필리프브라더스는 경쟁자와 달랐다. ... 먼저 대규모의 장기 계약을 맺기 시작했다. 가끔은 자금을 융통해 주는 조건까지 붙였다. 이 거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세계 곳곳에 안정적인 원자재 공급원을 확보했음이다. 또한 시장 디스로케이션으로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필리프브라더스가 엄청난 수익을 챙긴다는 뜻이다.
석유가 가져온 효과는 (또) 있었다. 원자재 중개 업체를 권력에 더욱 가까이 데려다줬다. 정부는 금속, 광물, 곡물을 전략적 민감성이 큰 자원이라 '종종' 생각했다. 하지만 석유는 차원이 달랐다. 석유는 워낙 액수가 크기에 공급자, 트레이더, 소비자 모두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다. 산유국은 오일머니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한 반면, 서방 정부는 석유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받길 원했다. 이 둘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원자재 중개 업체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
... 1970년대 말 자메이카 정부는 바라던 대로 보크사이트와 알루미나의 수출 재고를 충분히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것을 팔거나 운송하기 위한 전문 지식은 그들에게 없었다. 원자재 중개 업체가 제일 바라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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