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
얼굴 없는 중개자들
하비에르 블라스, 잭 파시
  1. 비문학
09/21/2024
퀴어
윌리엄 버로스
  1. 영미문학
09/08/2024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1. 독일문학
09/08/2024
육체의 악마
레몽 라디게
  1. 프랑스문학
09/01/2024
개 신랑 들이기
다와다 요코
  1. 일본문학
08/31/2024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1. 일본문학
08/29/2024
열쇠
다니자키 준이치로
  1. 일본문학
08/25/2024
제국은 왜 무너지는가
피터 헤더, 존 래플리
  1. 비문학
08/25/2024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
제임스 퍼거슨
  1. 비문학
08/24/2024
아즈마 히로키
한송희
  1. 비문학
08/19/2024
담론의 질서
미셸 푸코
  1. 비문학
08/18/2024
샤워
다카세 준코
  1. 일본문학
08/04/2024
현대사상 입문
지바 마사야
  1. 한국문학
07/26/2024
신앙
무라타 사야카
  1. 일본문학
06/16/2024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
  1. 비문학
06/10/2024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1. 한국문학
06/06/2024

현대사상 입문

저자
지바 마사야
평가
⭐⭐⭐
완독일
07/26/2024
분류
  1. 한국문학
Created by
  • Jun
"어떤 주의, 주장이든 마음대로 골라서 OK"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는 타자와 마주하고 그 타자성 = 고유성을 존중한다는 윤리가 있고, 또한 함께 살기 위한 질서를 임시로 유지한다는 것이 이면의 테마로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 일단 철저하게 기성 질서를 의심해야 근본 = 급진적으로 '함께'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현대사상의 자세입니다.
데리다의 경우는 일상 속에 타자성이 거품을 일으키는 듯한 이미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일상을 이른바 타자성의 사이다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감각입니다. 일체의 물결이 일지 않는, 투명하고 안정된 것으로서 자기나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탄산이고, 거품이 일고, 소음으로 시끄러우며, 그러나 모종의 음악적인 매력도 가지고 있는 듯한, 웅성거리는 세계로서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 데리다의 비전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들뢰즈+가타리의 사상은 밖에서부터 반강제로 주어지는 모델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계 속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해서 스스로 준안정상태를 만들어나가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들뢰즈+가타리가 생각하는 것은 모종의 예술적, 준예술적 실천입니다. 자기 자신의 생활 속에서 독자적인 거처가 되는, 자신의 독자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여러 가지 만들어 나가자고 합니다.

(근대적으로) 하나의 X를 둘러싼 인생이란 이른바 단수적인 비극이지만, 그렇지 않고 인생의 모습을 좀 더 복수적으로 만들어, 각자 자율적인 기쁨을 인정하자는 것입니다. ... 이처럼 무한의 수수께끼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행위를 하나하나 해낸다는 방향성은 어떤 의미에서, 근대 이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웅물 같은 이미지가 권력의 이항대립적 도식이라는 것인데, 푸코는 그것을 흔드는 거죠. 그걸 흔든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지배를 당하고 있는 우리는 사실 그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바라는' 구조가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 권력에는 위로부터 짓누르는 것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도 있어서, 진짜 나쁜 것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죠.

푸코의 사상에 항상 있는 것은 권력구조, 혹은 푸코의 말로 하면 '통치'의 시스템 바깥을 생각하는 의식입니다. ... 푸코는 인간이 그 과잉(본능적인 행동을 초과한 행동의 유연성)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다양성을 어무 정리하지 말고, 즉 너무 똑바로 하지 않고 헤엄치게 두는 사회의 여유를 말합니다.

고대인도 "그건 나쁜 짓이었다"라거나 "그건 너무했다"라고 반성은 합니다. ... 뭔가 무한히 계속되는 죄 같은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주의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의 세계는 좀 더 유한했습니다. 자기와의 끝없는 투쟁을 하기보다는 그때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적절히 자신의 인생을 관리, 통제했습니다. 이것을 고대에서는 '자기에의 배려'라고 불렀습니다. ... 모종의 '새로운 고대인'이 되는 방식으로서 내면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물질적으로 관여하면서, ... 새롭게 세속적으로 사는 것이며, 일상생활의 극히 즉물적인, 그러나 과잉이 아닌 개인적 질서 수립을 즐기고 그것을 본위로 삼고 세간의 규범에서 가끔 벗어난다고 해고, "그것이 내 인생이니까"라며 개의치 않는 그런 세속적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수수께끼의 X를 파고들지 않고, 생활 속에서 과제가 하나하나 완료되어 간다는 그런 이미지의, 담담한 유한성입니다. 주체란 우선 행동의 주체이지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레비나스는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타자가 배제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모두 '그저 있다'는 근본적인 공통 지평에 모든 존재자가 올려 놓아짐으로써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성 속으로 모든 것이 회수(환원)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더는 없을 것 같은 강제적인 지평에 모든 것이 실리고 만다, 이것과 파시즘이 연결된다는 얘기입니다.
메이야수에 따르면 ... 절대적 실재는 절대적이기 때문에 우연적이며, 그렇다면 그대로의 모습으로 계속 존재할 필연성은 없습니다. 단적인 실재는 그저 우연일 뿐 언제든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귀결에 이르게 됩니다. ... '모든 것은 차이다'라는 논의에 대한 역주행으로 절대적 동일성을 끄집어낼 때, 그 절대적 동일성을 정말 절대적으로 비인간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일적이면서도 갑자기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는 귀결이 되어, 차이의 철학의 새로운 철저함이라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변적 실재론이란 그게 말하면, 인간에 의한 의미 부여와는 관계없이, 그저 단적으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사물 쪽으로 향한다는 방향입니다. 의미보다는 그 자체로서 있는 것을 문제 삼는 신종 실재론이 등장했습니다. ... 메이야수에 따르면, 이 세계가 이렇게 있다는 것에는 필연성이 없고, 세계는 우연히, 우연적으로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며, 그래서 세계는 갑자기 다른 것으로 바뀔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객관적 세계는 근본적인 우연성 아래에 있다는 주장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 "확실히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이 있지만, 객관적 사실의 객관성을 따진다면 객관적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연적인 것이며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라는 더 고차적인, 실재 그 자체에 미치는 상대주의 같은 것이 나오게 됩니다.

메이야수의 경우에는 그 자체로서 우연적으로 있을 뿐인 세계, 그 '그 자체'라는 지위는 라뤼엘적 내재성이며, 바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하먼에게서의 서로 무관한 객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