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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일인칭을 위한 변론-김봉곤론 (『문학들』 제76호)

저자
전승민
평가
⭐⭐⭐⭐⭐
완독일
06/29/2024
분류
  1. 한국문학
Created by
  • Jun
감히 벌써 '올해의 글'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내가 한국문학을 따분해하기 시작했던 그 시대를, 본 글을 쓴 평론가, 그와 궤를 함께하는 동료 평론가(와 작가)들로 하여금 돌파되었으면 한다.
비평의 '나'가 여성일 때, '나'를 욕망의 대상으로 물화할 가능성이 아주 적으면서 동시에 그 시선의 주체가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소수자로서의 여성과 동등하거나 더 열악한 지위를 가지는 곳은 게이의 세계다. 제출된 비평과 여러 맥락을 숙고하면 2010년대부터 융성하여 지금까지도 비평의 주된 젠더/섹슈얼리티를 형성하고 있는 '나'는 이성애 여성의 관점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창작의 당위가 되면서 창작자들의 강박 또한 징후적으로 감지되었다. 남성성을 발휘하는 남성 인물들이 사라지거나 발휘하더라도 그것이 '상식'적으로 선한 윤리의 자장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국한되고, 남성이 '무지'와 '폭력'으로 전형화되는 작품들이 무수히 많이 발표되었다(그러한 거시적인 경향성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단지 소비재로서의 문학, 다시 말해 물화된 삶으로서의 문학과 삶 그 자체로서의 문학이 갈라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일 것이다. 수많은 질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날아가는 공의 끝을 눈감지 않고 지켜보는 일, 그것이 비평의 몸을 당장 해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끝내 놓지 않는 것이 실제 삶으로서의 문학과 그것의 윤리일 것이다.

소설이라는 가상적 현실 속에서 발생한 재현으로 인해 "C누나"가 수치심을 느낀 것이라면, 가해 행위 또한 가상적 행위성이 현실의 영역으로 넘쳐 흐른 것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가해 행위의 처벌은 가상 세계가 아닌 바깥의 실제 세계에서 이루어졌다. 사법적 처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소설과 오토픽션으로 이어져 온 소설론에 대한 문학적 린치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김봉곤과 그의 소설 세계가 '사람 아닌 것'의 자리로 물화되었다고 생각되며 그러한 물화의 작업을 해 온 것이 저간의 문학장이라고 생각한다. 김봉곤의 소설은 비평이 자기보존원리로 채택해 온 정치적 올바름의 '윤리'를 강화하기 위한 대타자로 도구화되었던 것이다. 비평의 윤리는 결코 의문시되지 않았던 이 자연스러운 추인에 대하여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물음을 던질 수 없게 한 것이 2010년대 한국 페미니즘 문학비평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강박과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상당히 자연화된 것 같은 다양한 퀴어 주체와 퀴어한 소설들의 출현이 이성애 중심성의 페미니즘이 대타자로 삼던 정치적 올바름에 의해서라는 것은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동시에 상당한 불안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 ... 오토픽션으로 재현되어 온 퀴어의 발칙한 섹슈얼리티가 너무나도 손쉽게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윤리성 안으로 녹아들어 갔다는 것을 의문시하고 싶다. 퀴어한 섹슈얼리티는 정치적으로 올바른가?

당시 현실의 페미니즘적인 윤리가 신성시 되고, 흠결 없이 무해하게 보존되어야 한다는 믿음, 그래야만 페미니즘 비평이 목표로 하는 폭력적이고 패권적인 남성성을 문학장에서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한 집단적 단결을 유지하고 보존하고자 하는 비평의 욕망과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과 퀴어가 만드는 윤리적인 연대는 모두 남성을 욕망한다는 점을 긍정하는 공통의 좌표에서가 아니라 서로의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축, 자신을 섣불리 긍정하기 어려운 수치심이 만드는 공동의 축 위의 서로 다른 좌표에서 진정으로 발생한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무한한 미래를 무한한 과거로 만들면서 쓰는 '나'는 세계의 가장 뒷자리에 있어야 하므로 운명적으로 외롭다. 그러나, 퀴어한 생활 양식과 게이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미안한 일이 되는 외적 편실과 그래서 부러 벌충하듯 야근하는 자신의 죄의식, ... 그 어떤 소설적 상상력과 허구성도 그를 향해 동원하지 않고 도리어 그 모든 국면을 직시하고자 계속 쓰는 '나'는 이 삶과 세계를 최대한으로 사랑하는 퀴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