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영수의 소설을 읽는다. 과거 그의 소설을 읽었을 때 감상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번 작품들처럼 의연함을 불러일으키는 어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님,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에요?'라고 작품 속 주변 인물들처럼 묻게 된다.
"믿기로 한다", "나아가기로 한다" 등으로 종결짓는 그의 다짐이 좋다. 그가 인식하는 세계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내가 기대하는 미래-심지어 현재까지도-를 종종 억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연하게 어떤 다짐으로 넘어가는 것, 다소 유아적일수도, 보수적일수도, 그리고 정신승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삶의 전제, 살아감을 위한 낙관이다.
어머니에게만큼 나에게도 나만의 믿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가 그리는 괜찮은 미래는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과거가 괜찮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처럼, 미래도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낙관이 가능한 이유는 미래는 언제까지고 미래에 머물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어디에나 있다. 심지어 실패한 과거 속에도. 그러니 그 말이 미래 시제로 존재하는 한,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믿기로 한다. 그것이 어머니와 내가 공유하는 유일한 자원인 것처럼. 그래서 나는 어머니의 염려와 달리, 아무 것정도 하지 않는다.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채로 멀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