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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노트

소피님의 추천으로 시작한 필사노트,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필사 출처 :
경향신문의 직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o231)
001 - '진실은 언제나 하나'는 없다 : 심완선 SF평론가
khan.co.kr/article/202510132104015
002 - 실패의 사용법 : 인아영 문학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72046005
003 - 인맥을 깨뜨리는 시대적 책임 :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92207025#ENT
004 - 성의 없음과 부담 없음 사이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082100005#ENT
005 - 일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 : 변재원 작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52137025
006 - 어둠에서 보기 : 인아영 문학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10222115015
007 - 좋은 제목을 짓는 방법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112106005#ENT
008 - 틀리고 싶을 때 SF를 본다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42105015#ENT

008 - 틀리고 싶을 때 SF를 본다 :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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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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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42105015#ENT
당신이 틀렸다. 이런 말은 언제나 불편하다. 감정적으로 불쾌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선호하지 않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내 생각이나 판단이 틀렸는지 어떤지, 틀렸다면 어떤 오류가 있는지 검토하는 과정은 인지적으로 부담스럽다. 다시 말해, 불편하고 성가신 일이다. 그리고 인간의 뇌는 인지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발달했다. 대충대충, 빨리빨리, 하던 대로. 우리 머리는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야 당황해서 뒤늦게 수습에 나서곤 한다.
착시 효과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에임스 룸' 은 안에 들어간 사람의 크기가 고무줄처럼 변하는 공간이다. 방에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걸으면 그 사람은 거인처럼 커진다. 반대쪽으로 가면 점점 줄어들어 난쟁이 또는 요정이 된다. 밖에서는 정말로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사람 크기가 정말로 한순간에 변할 리는 없다. 비밀은 바닥이다. 에임스 룸은 네모반듯한 공간이 아니라 경사진 바닥 위에 사다리꼴로 세워진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방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평범한 사각형 구조의 공간이리라고 간주한다. 그쪽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비밀이 밝혀지더라도 착시는 여전히 유지된다. '제대로' 보려면 의식적으로 애써 오류를 보완해야 한다. 인지적 습관에서 벗어나기는 그토록 어렵다. 우리 머릿속 게으름은 강력하다. 관성적으로 정보를 흘려보내는 바람에 우리는 보고도 못 보거나, 없는 것을 보곤 한다 (맹점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착시 현상처럼 이상하고 낯선 광경 앞에서는 문제가 명백해진다. 이때의 당혹감과 놀라움이 착시의 매력이다. 착시는 '당신이 틀렸다'를 마주하는 상황을 기꺼이 감내할 만한 경험으로 탈바꿈해준다. 그리고 SF는 착시의 문학이다.
SF가 어렵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SF는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작중 일부 요소는 노골적으로 현실과 다르다. 그렇다고 작품 멱살을 잡고 이거 틀렸다, 이상하다고 싸울 수는 없다. 그야...SF는 원래 비현실에서 태어나니까. 외계인이 지우게 있다? 인간을 복제할 수 있다? 로봇이 사랑을 한다? 그럴 수 있지. 순순히 수긍하지 않으면 소설을 읽기가 불가능하다. 독자는 허리를 숙여 내가 몰랐다, 틀렸다고 꼼짝없이 인정해야 한다.
숙달되고 나면 이러한 비현실, 비상식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오히려 아쉬워진다. 인지적으로 부하가 걸리는 그 자극을 찾게 된달까. SF의 '인지적 소회'는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다듬어 독자가 새로운 관점을 취하게 만든다. 능숙하게 착시를 구현하는 SF 소설은 인물이나 사회가 마주하는 낯섦 외에도 종종 독자가 보아야만 하는 낯섦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