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Project_매일 랜덤주제 500자 쓰기
3rd Project - 오늘의 관찰 일기

필사노트

소피님의 추천으로 시작한 필사노트, 어떤 도움이 될지 궁금하다

필사 출처 :
경향신문의 직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o231)
001 - '진실은 언제나 하나'는 없다 : 심완선 SF평론가
khan.co.kr/article/202510132104015
002 - 실패의 사용법 : 인아영 문학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72046005
003 - 인맥을 깨뜨리는 시대적 책임 :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292207025#ENT
004 - 성의 없음과 부담 없음 사이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082100005#ENT
005 - 일과 나를 사랑하는 마음 : 변재원 작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252137025
006 - 어둠에서 보기 : 인아영 문학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10222115015
007 - 좋은 제목을 짓는 방법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8112106005#ENT
008 - 틀리고 싶을 때 SF를 본다 : 심완선 SF평론가
https://www.khan.co.kr/article/202507142105015#ENT

002 - 실패의 사용법 : 인아영 문학평론가

Created by
  • 해이든
Created at
출처
https://www.khan.co.kr/article/202509172046005
우리는 성공의 언어에 두럴싸여 있다. 더 좋은 직장과 더 넓은 집, 적기의 연애-결혼-출산, 취미-건강을 위한 자기계발이 좋은 인생의 기준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잭 핼버스탬의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 (2011)은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그는 "실패(failure)"라는 부정적 단어를 낙오가 아니라 다른 가능성을 여는 방식으로 다시 쓰자고 제안한다. 실패를 낙오가 아니라 다른 방향키로 보자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균열을 내고 그 틈에서 다른 삶의 감각을 발견하자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론가로서 핼버스탬이 즐겨 스는 재료는 의외로 가벼운 것들이다. 애니메이션, 아동영화, B급 코미디. 그는 이런 텍스트에서 '정상적'이거나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궤도를 비켜 나가는 이야기를 발견한다. 성공을 향해 직선적으로 올라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목표 없이 미뤄지고 망설이고 돌아가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장난감들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토이 스토리>, 닭들이 농장에서 탈출하는 <치킨 런>, 벌이 집단으로 반란을 일으키는 <꿀벌 대소동> 같은 이야기들은, 단순한 어린이 영화가 아니라 다른 시간, 다른 관계, 다른 질서를 상상하게 만든다. 정답을 향해 질주하는 영웅담이 아니라 삐걱거림을 공유하는 우정의 서사. 핼버스탬은 이런 장르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고 "저급이론(low theory"으로 종합한다. 말 그대로 고급 학문 담론의 반대편에 있는, 일상과 주변주에서 생산되는 사유를 뜻한다.
핼버스탬이 강조하는 '실패'는 단순히 좌절이나 무능력이 아니다. 그는 우울, 외로움, 소외, 심지어는 퇴행까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열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그림자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꺼낸다. '주체적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식의 페미니즘과 달리, 자기파괴를 욕망하는 여성, 어머니와의 본질적인 유대를 거부하는 여성, 자유를 버리고 수동적이길 원하는 여성들 역시 대항 서사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지-망각-수동성-마조히즘 같은 태도도 포함된다. 핼버스탬은 이러한 태도가 단순한 패배나 회피가 아니라 다른 삶의 계보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도라고 읽는다.
하지만 이 논의에도 몇가지 한계도 있다. 첫째, 실패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자원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 실패는 선택일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가난, 인종차별, 장애 같은 조건 때문에 강요된 결과일 수 있다. 둘째, 실패가 퀴어나 여성의 정체성에 고정적으로 붙는 순간, 오히려 "원래 실패하는 존재"라는 오래된 낙인을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 즉 실패가 특정한 정체성을 정의하는 진단적인 명칭이 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실패를 지나치게 낭만화할 위험이 있다. 어쩌면 실패는 실패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이들만이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간과한다면 실패는 정치적 저항이 아니라 정서적 위안에 머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기술과 퀴어 예술>이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여는 문이라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언어가 하나의 길만을 가리킬 때, 실패는 그 길에서 벗어나 옆으로 나가고, 잠시 멈추고, 돌아가며 또 다른 경로를 열어낸다. 따라서 질문도 달라진다. "실패란 무엇인가?" 가 아니라 "우리는 실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로. 실패는 낙오의 표지가 아니다. 오히려 제도의 시간을 흔들고, 그와는 다른 리듬으로 살게 하는 기회다. 바로 이 점에서 실패는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언어이자 가능성이 될 수 있다.

Hayden Time

글의 전개 방식
1.
실패를 다른 가능성으로 보자는 핼버스탬의 주장 소개
2.
실패의 반대말인 성공에 대한 주장 - 정상적, 올바르다, 직선적 이야기 ↔ 목표없이 미루고 주저하고 돌아가는 이야기
올바른 상황의 반대 상황을 영화화한 것을 예시로 들은거구나
장난감은 움직이지 않음 ↔ 장난감이 움직이는 시간
닭들은 농장에 ↔ 닭들이 농장 탈출
벌은 아무 생각없이 일만함 ↔ 벌의 반란
근데 이걸 저급이론으로 종합한다? 일상과 주변부에서 만들어진 생각?
그래서 이게 무슨 상관이지? 이해가 잘 안돼
3.
실패는 무능력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삶을 여는 것 - 그림자 페미니즘
페미니즘 ↔ 그림자 페미니즘 : 페미니즘과 다른 사고여도 단순한 패배나 회피가 아니라 이것또한 다른 삶의 계보이다
4.
주장의 한계
5.
그럼에도 우리가 배울 점 : 실패가 끝이 아니니 실패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하나의 기회/가능성으로 보는 눈
두번째 단락은 이해를 못했지만, 궁금한 물음표가 뜰 때마다 단락이 바뀌고 그 물음으로 단락을 시작해서 소름이었다.
그리고 반박하고 싶은 말들이 차오를 때 주장의 한계를 설명해줘서 내 뇌를 다 읽힌 기분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울 점에 공감이 되어 무언갈 배워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