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진로를 결정하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으로 기자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운명은 나를 점점 그 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6월호)에 실린,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글이 계기가 되어 <문화일보> 학술 담당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의 탈바꿈이었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로 이직했다. 1995년에 건국 대통령 이승만 취재를 바탕으로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을 연재하면서 한국 역사와 교육, 리더십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줄곧 학술·출판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원없이 들여다보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학맥과 학풍』(1995)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