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In
어쩌구 저쩌구

하방 저지와 디스리스펙: 맨스티어 디스전의 의미

병연
코미디 크리에이터 ‘뷰티풀너드’는 얼떨결에 한국 힙합의 거대한 전환을 이끌어낸 장본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뷰티풀너드는 코미디 레이블 ‘메타코미디’ 소속 크리에이터다. 2명의 멤버(최제우, 전경민)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현재 힙합과 래퍼를 소재로 한 페이크다큐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그룹 ‘맨스티어’의 멤버(케이셉 라마, 포이즌 머쉬룸) 역할로 출연 중이다. 단순히 콘텐츠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힙합 음원을 발매하고 라이브 공연도 하니 일종의 ‘부캐’인 셈.
출처: 하입비스트
맨스티어는 ‘일반 대중이 느끼는 한국 래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의 화신이다. 이 캐릭터를 통해 묘사되는 질 낮은 말투와 행동, 알맹이 없는 가사, 각종 사회적 물의 등 사례별로 그에 해당하는 래퍼들을 떠올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댓글창이 공감에서 비롯된 웃음으로 가득한 이유다.
사실 한국 래퍼의 부정적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수요는 이미 존재했다. ‘쇼미더머니’ 무대에서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라며 광역 도발을 시전한 이찬혁이나 뽀글머리에 꿀벌 같은 옷을 입고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라고 내뱉는 고등학생 김하온이 반향을 일으켰던 것만 봐도 그렇다. 뷰티풀너드는 그러한 수요를 풍자로써 충족시킨 것이다. 세계관 기반의 캐릭터쇼로 서사까지 착실하게 쌓아갔다.
게다가 맨스티어의 랩 실력과 곡 수준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중이 반응했다. 지난 2월 말 선보인 ‘AK47’의 뮤직비디오는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조회 수 1000만에 다가섰다. 그야말로 대박 음원. 적지 않은 래퍼들도 이들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맨스티어는 클럽에서 직접 공연을 했으며 최근엔 힙합플레이야페스티벌 무대에도 서며 라이브 실력을 증명했다. 그렇게 그들은 ‘국힙을 정리’ 해버리고 말았다.
이때부터 맨스티어는 일종의 하방 저지선이 됐다. 한국 래퍼들은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싶지 않다면 ‘최소한’ 맨스티어만큼 진지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최소한’ 맨스티어만큼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야 했다(물론 ‘훌륭한’의 기준은 흥행 여부가 아니다.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맨스티어의 말투, 행동, 태도 같은 것들이 묻어나지 않는지 검열해야 했다. 모든 게 다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코미디언이 의도한 결과일까? 그것까지는 모르겠다(개인적으로는 ‘아니다’에 한 표).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돼 버렸다.
문제는 풍자를 기반으로 한 하방 저지는 당사자 의도와 상관없이, 특히 대중의 반응을 얻을 경우에는 디스리스펙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풍자 자체가 타인의 결점이나 현실의 부정적인 면모를 꼬집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조롱의 근거로 소모하는 이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뷰티풀너드의 풍자가 영원히 선을 넘지 않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pH-1이 맨스티어 디스곡 ‘BEAUTIFUL’을 통해 짚은 것이 바로 그 부분이다. 내 식대로 해석하면, “너희들의 콘텐츠는 충분히 재밌고 나 또한 좋아했다.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점점 도를 지나치고 있다. 지금 이게 진짜로 너희들이 바랐던 상황인가? 크리에이터라면 자신의 콘텐츠가 대중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풍자가 존중을 잃으면 조롱밖에 남지 않는다는 거 잘 알잖아. 우리도 고민이 많으니 같이 생각해보자.”
이를 두고 ‘긁’이라고 한다면, 맞다. 긁힌 거. 하지만 그건 필연적인 결과다. 원래 특정 집단에 덧씌워진 멸칭은 대개 그것으로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부터 타격하기 마련이다. 맨스티어에게 ‘긁힌’ 또 다른 래퍼, 이센스가 이해되는 이유다. 물론 그가 쏟아낸 모든 발언을 긍정하긴 어렵다. 다만 “진지하게 하는 사람 기분 개좆같게” 만드는 행태를 더는 참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이라는 사실만큼은 대부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센스는 자기 작업에 공들이는 만큼 힙합 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직접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최근에도 랩 레슨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피력하며 한바탕 이슈몰이를 했다. 분야를 막론하고 이만한 스타가 이정도로 튀는 건 분명 쉽지 않다. 누군가는 철없다 할지 모르겠으나 그만큼 진지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pH-1이 디스곡을 낸 계기이기도 하다. 좀 더 젠틀했을 뿐.
이와중에 스카이민혁이 참전하며 릴리즈한 곡 ‘촛불’은 가히 일품이다. 그는 이번 기회에 한국 힙합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아니, ‘보여주자’고 한다. 맨스티어를 탄생시킨, 한국 힙합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걷어내고 이 문화가 한줌 안되는 우리만의 문화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자는 얘기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문화를 사랑하고 만들어가는 우리가.
뷰티풀너드는 언더그라운드라는 콘텐츠와 맨스티어라는 캐릭터를 통해 한국힙합에 거대한 전환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던졌다. 아니, 스스로 계기가 됐다. 대중들의 반응을 등에 업고 말이다. 더콰이엇은 머니코드 인터뷰에서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스타가 필요하다”라는 의견에 대해 “스타는 자연발생적인 게 아니라 시대가 원해서 나타나는 것에 가깝다”며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그걸 이 시대가 안 원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 힙합에서 등장한 새로운 스타가 엉뚱하게 맨스티어라는 것은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다.
하방 저지가 디스리스펙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pH-1은 적절한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의 말마따나 반응해도 긁, 가만있어도 긁이라는 반응이 돌아올 ‘이미 진 싸움’에 제발로 들어갔다. 그런데 뷰티풀너드 역시 그의 디스를 단순히 콘텐츠 소재로 소모하지 않았다. 맨스티어로서 맞디스로 받았다. 자기 영역이 아닌 pH-1의 영역에 제발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스카이민혁은 이를 ‘우리 모두의 일’로 확산시키자는 메시지를 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호응할까. 그에 따라 한국 힙합이 또 다시 새로운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동력의 양이 달라질 것이다.
Subscribe to 'workoutsomehow'
Subscribe to my site to be the first to receive notifications and emails about the latest updates, including new posts.
Join Slashpage and subscribe to 'workoutsomehow'!
Subscri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