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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2,380만원’, 이 회사에 들어간 사연
내세울 게 하나도 없었다. 그저 그런 스펙에 졸업 이후 2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떤 경력도 쌓지 못한 스물일곱 살 청년. 그게 내 현실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장래희망은 기자였다. 대학교 전공도 언론정보학. 열심히 노는 중에 그나마 대외활동이라고 한 게 학보사나 블로그 기자단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런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이었다. 아마 면접관 입장에서 난 탁월하지도 않고 반전도 없는 지원자였을 테다. 의외로 서류와 필기, 실무 테스트는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번번이 최종면접에서 고배를 마셨다. 결정타는 KBS였다. 이미 최종면접에서 탈락한 경험이 있는 회사. 좀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면접은 잘 봤다. ‘다시 그 자리에 데려다 놔도 그 이상은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잘 봤다.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하다. 하지만 탈락이었다. 크게 실망했다. 더 시험과 면접을 보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언론사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카페 ‘아랑’에 ‘최종탈락후기’를 남기고 모두 그만뒀다. 그게 12월이었다. 고민이 컸다. 일반 기업을 준비할까? 자신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왜 자연스럽냐면, 그때는 공무원 열풍이 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침 고향에서 채용하는 인원 수도 역대급이었다. 국가직 공무원 시험은 4월, 지방직 공무원 시험은 6월. 언론사 취업 준비를 하며 공부했던 것들을 기초 삼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 여겼다.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필기 시험 결과 국가직 공무원은 불합격, 지방직 공무원은 합격했다. 하지만 합격 선보다 겨우 2점 높았다. 이어지는 면접 전형에서 내가 잘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 중에서 헛발질을 하는 사람이 나와주길 바라야 했다. 문득 ‘이 길이 맞을까?’ 싶었다. 바라지도 않았던 것에 이렇게 목매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만에 하나 합격한다 해도 이대로 40년의 삶을 결정짓는 일에 의구심이 생겼다. 고민 끝에 면접을 포기했다. 악수가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저 그런 스펙에 졸업 이후 2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떤 경력도 쌓지 못한 스물일곱 살 청년이 됐다. 이제는 어떤 회사든 무슨 직무든 일을 시작해야 했다. 오랜만에 아랑에 다시 들어갔다. 채용 게시판에서 가장 최근에 올라온 글을 눌렀다. 유력 언론사와 같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듯했다. 그동안 썼던 자기소개서를 대충 섞어 지원했다.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을 봤고 난생 처음 합격 통보를 받았다. 나름대로 긴 업력을 가진 기업인데다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는 일을 할 수 있으니 됐다. 게다가 이미 크고 안정적인 회사에서 오래 다니는 건 어려워진 것 같으니 더 늦기 전에 커리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2,380만원. ‘최저임금 수준의 연봉’을 받아들인 이유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경력의 시작점과 기대 연봉의 시작점을 맞바꾸는 선택인 만큼 좀 더 신중하게 살폈어야 했다. 당시의 내겐 그러한 점을 따져볼 시야도 여유도 없었을 뿐이다.
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