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에 가면 오리를: 삼강식당
“거기 가면 오리죽을 먹어야 돼. 배부르면 포장을 해서라도 꼭.” 제주도에서 굳이 오리를 먹어봐야 한다고 권할 이유는 무엇이며 샤브샤브와 백숙을 제치고 마지막 순서로 내오는 희멀건한 죽이 킥이라고 몇 번씩 강조할 필요가 있는지 약간 의문스러웠지만 평소 음식에 큰 관심도 없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니 오히려 더 궁금해진 게 사실이었다. 이후 몇 번 제주도를 다녀왔지만 동선이 맞지 않거나 우선순위에 밀리는 등 여러 이유로 방문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궁금증은 잘 숙성돼 기대감으로 변해갔다. 가게 이름은 삼강식당. 제주도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쪽에 있다. 그보다 동쪽에 위치한 서귀포 신시가지에 본점이 있지만 이곳을 추천한 해린이가 중문초와 중문중을 졸업한 중문피플이었으므로 우리에게는 중문점이 본점이나 마찬가지였다(사실 난 본점이 따로 있는 것도 중문점을 다녀오고 나서 알았다). 좋은 기회로 중문관광단지 내 호텔에 묵게 됐으니 이번이야말로 적기였다. 여행 일정을 결정하자마자 둘째날 저녁 메뉴를 오리로 못 박았다. 더위가 물러날 때를 잘 골라 떠나겠구나 싶었는데 여름의 꼬리가 이렇게 길 줄은 몰랐다. 걷는 것은 진작 포기했고 대신 전기자전거를 탔다. 15분 정도 달리니 묘하게 익숙한 풍경이 나왔다. 서귀포시 인구는 내 고향 김천(김밥천국 아님)과 인구가 비슷하고 역시 발전이 더딘 곳이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쏘다니던 골목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고 있던 게 아닌가 싶다. 좁은 길과 양차선으로 주차된 자동차들. 오래된 가게들. 그 사이로 삼강식당이 보였다. 가게 안은 더웠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여러 대 돌아가는 중이었지만 바깥 날씨부터 상당히 더웠던 데다 메뉴 특성상 주방과 각 테이블에서 계속해서 불을 써야 했으므로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더위에 취약한 나로서는 다소 아쉬웠으나 오리도 나름 보양식이니 땀 한 번 쫙 빼는 셈 치면 그럭저럭 용인할 만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더운데도 이렇게 많은 손님으로 붐빈다는 데서 신뢰감이 생겼다. 메뉴가 하나인 것도 흡족했다. 오리 한 마리 세트.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이른 마감 시간이다. 정기휴무일인 수요일을 제외하면 매일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영업을 하는데 재료 소진으로 인해 실제 마감은 그보다 이르다. 우리가 입장한 때는 일요일 저녁 7시. 30분 쯤 지나니 워크인은 벌써 마감됐다. 그 사이에 몇 번씩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보니 당일 방문이라도 미리 확인을 해보고 내친 김에 예약까지 한 다음 방문하는 듯했다. 들려오는 말투와 대화 내용으로 미뤄보아 손님 대부분이 도민인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대단한 맛돌이가 아니기 때문에 맛을 표현하는 데 무척 서툴다. 그래서 평소 식습관을 알려준 뒤 ‘그런 내가 이정도로 만족했어’라고 설명하는 편이다. 슬쩍 정보를 드리자면 나는 자극적인 맛을 즐기지 않는다. 특히 매운 것(=빨간 것)은 웬만하면 피한다. 술을 좋아하고 웬만하면 소주를 마신다. 집어 먹을 것과 국물이 모두 있는 안주를 선호한다(메뉴를 두 개 시키더라도). 고기를 자주 먹고 식감을 잡아주기 위해 채소를 꼭 곁들인다. 오리 한 마리 세트는 더 보탤 말 없이 훌륭했다. 도톰하면서 묘하게 부드러운 고기와 육수에 팔팔 끓여낸 채소가 잘 어울리는 샤브샤브, 쫄깃한 식감에 담백한 풍미가 은근하게 우러나는 맛이 일품인 백숙, 그 둘을 한데 섞어 끓여낸 죽까지. 한 입 한 입이 소주 한 잔씩 꿀떡꿀떡 넘기게 했다. 특히 죽 맛이 엄청났다. 세트의 마무리가 아니라 단독 메뉴로도 손색 없는 완결성을 가지고 있었다. 한 입 맛보고 나니 소주 한 병을 더 시키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진정한 현지인 맛집은 여행자 입장에서 ‘거기까지 가서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당장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맛집을 떠올려 보면 지역 특색과 무관한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거의 대부분일 걸. 그렇게 생각하면 여행을 다니면서 현지인 맛집을 찾아 다닐 필요가 없지 않을까. 그건 우리 동네에서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메뉴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현지인들이 스타벅스를 많이 간다고 거길 가진 않을 거 아닌가? 리미티드 에디션이 있다면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