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 기획자의 일은 독서모임을 만들고 팔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의아한 눈빛을 보냅니다. 의사나 판사나 변호사처럼 한 마디로 정의할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정확히 말하면,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있습니다("독서모임을 만들고 팔고 운영한다."). 그러나 듣는 사람은 보통 그것을 한번에 '정의'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대체 누가 돈 내고 독서모임을 한단 말이야?'라는 생각부터 드니까요. 머리 박고 일할 때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한번 고민이 시작되면 좀처럼 끝나지 않습니다. 만약 이직한다면 어느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커리어 플랫폼을 켜면 직무를 선택하는 단계에서 이미 혼란스럽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면 길이 좀 보일까. 그런데 다양한 사람 누구? 마케터끼리 모이고, 디자이너끼리 모이고, 개발자끼리 모이는데, 나는 대체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나. 혼란 다음 혼란입니다. '어느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실마리가 됐습니다. 독서모임 기획자도 '기획자'라는 걸 새삼 환기했죠. 그중에서도 플레이어 역할을 맡은 사람이 필요한 기획자, 예컨대 도서 편집자 같은 직업과 업무 형태가 비슷합디다. 그래서 그에 비추어 독서모임 기획자의 세 가지 업무 패턴을 뽑아봤는데요.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타인의 콘텐츠를 다룬다. 둘째, 나의 관심과 세상의 관심 사이에서 줄타기 해야 한다. 셋째, 호흡이 길다. 오늘은 첫 번째 패턴, '타인의 콘텐츠를 다룬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타인의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 독서모임 기획자(이하 '기획자')의 일은 독서모임을 기획하고 팔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진행'은 기획자가 아닌 진행자의 몫입니다. 그래서 기획자의 업무 최우선 순위에 '진행자 섭외'가 있습니다. 섭외 후보군을 꾸리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섭외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은 '인물'과 '주제' 두 가지입니다. 어떤 기준인지에 따라 기획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섭외, 기획의 방향이 잡히는 순간 섭외는 섭외 대상의 기본적인 정보를 살피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인터뷰나 강연을 한 적 있다면 워딩을 잘 살핍니다. 책을 비롯해 특정 콘텐츠를 예로 든 부분이 있다면 더 좋습니다. 맥락을 더 풍성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동향 확인도 필수입니다. 요즘 관심 갖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하고 혹시나 문제 되는 부분이 없을지 파악해야 하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사람과 함께 만들 수 있는 독서모임 주제 서너 가지를 뽑습니다. 일차적으로 OK 된다면 섭외 메일을 작성하기 시작합니다. 어차피 완성도 높은 기획안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설득이 안 된다면 그것까지 읽지도 않으니까요. 정성을 다하는 것과 엄한 데 리소스를 쓰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본적인 설명만 적어도 메일은 상당히 길어집니다. '그래서 너랑은 이런 주제로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라는 내용은 기껏해야 2~300자 정도 되는 문단 하나에 압축적으로 녹여야 하죠. 섭외 시도를 최대한 많이 하는 게 기본입니다. 회신을 받는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고 또 그 중에서도 일부만 제안을 수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섭외 하나하나가 실제 서비스로 이어질 것임을 분명하게 전제해야 합니다. 최대한 많이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해 어중간한 대상을 섭외해버리거나(어떻게 팔 거예요?) 공들여야 할 대상에 어중간한 기획으로 접근했다가 거절 당하면(시도 안 하느니만 못 하죠) 여러모로 곤란합니다. 기획의 방향은 섭외를 시도하는 순간에 틀이 잡힙니다. 물론 논의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조정할 수는 있겠지만 섭외 대상의 전문 분야, 관심사, 인지도 같은 것은 단기간에 변하지 않습니다. 섭외가 기획자의 최우선 업무인 것은 맞지만, 어디까지나 충분한 신청자를 모아 실제로 모임이 진행돼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냥 기획자와 섭외 대상의 리소스만 낭비한 것에 불과합니다. 서로 민망하기도 하고요. 최대한 피해야 할 상황입니다. 발굴하든지, 모셔오든지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섭외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대중적인 영향력은 높지 않지만 자기만의 관점이 확실하고 충분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가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과 독서모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의 매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획을 뽑고 그것을 매력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상세페이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왜 이 주제를 알아야 하는지, 이 주제를 아는 데에 특히 이 책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 주제로 이 책들을 읽을 때 이 사람과 함께 이야기 나누면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총 세 가지 층위의 설득을 해내야 합니다. 중요해서 다시 강조합니다. '이 사람'과 '이 주제'로 '이 책들'을 읽어서 좋은 점을 어필해야 합니다. 한 부분이라도 설득이 되지 않으면 신청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세페이지와 마케팅 방향도 그 연장선에서 이뤄지죠. 특히 중요한 것은 당연히 '이 사람'입니다. 예컨대 똑같이 『규칙 없음』을 읽더라도 누구와 읽는지에 따라 주목하는 지점이 다르고 들려주는 경험이 다릅니다. '이 사람'이 기업의 대표인지 C-Level인지 팀장인지에 따라 다르고, '이 사람'이 속한 기업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다르고, '이 사람'의 기업이 속한 산업이 무엇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자연히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는 것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중심으로 설득 포인트를 설계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유명한 사람. 사실 이 경우엔 기획이 흥행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입니다. 유명인과 몇 시간이고 대화하는 시간을 연속해서 가질 수 있다는 경험만으로도 고객에겐 매우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예를 들어 볼까요. '아이유'와 독서모임을 한다는데 어떤 주제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유심히 살핀 다음 신청할 사람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럼에도 기획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신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이때의 기획은 '유명한 사람' 당사자를 설득해야 합니다. 나 말고도 수많은 사람이 그를 모시지 못해 안달일 텐데, 그저 그런 기획으로는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눈에 띌 만큼 높은 금액을 제시하든지). 그의 입장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획을 찾아내야 합니다. 재밌는 것은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도(물론 여기서 '유명한'의 기준이 예로 들었던 아이유는 아닙니다) 그가 충분한 가치를 주지 못한다거나 그것을 보완할 정도의 기획이 따라 붙지 않는다면 전체 완주율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리텐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의외로 냉정합니다. 그리고 게으릅니다. 움직이게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보상과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독서모임으로 아젠다 세팅하기 사람이 아니라 주제를 타깃해 기획하기도 합니다. 큰 그림을 그린다는 측면에서 기획의 주도권을 조금 더 가져갈 수 있습니다. 이 경우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쓸 글에서 더 자세히 말씀드릴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주제를 타깃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이런 것입니다.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NFT, 암호화폐, 블록체인과 같은 신기술이 주목 받고 있네? 이 분야에 대해 선제적으로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체계적인 방식으로 지식과 경험을 쌓은 사람은 누굴까? 토론의 정수는 정치에 있는 것 아닐까? 이왕이면 의회 정치 경험자가 리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어디 없을까? 젠더는 우리 사회가 꼭 다뤄야 할 이슈인데. 단호하게 그러나 부드럽게 토론을 이끌어 줄 사람이 있을까? 등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