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
요즘 정병연은 기침을 달고 삽니다. 코로나 후유증입니다. 광복절 즈음 목이 간질거리더니 그 주 일요일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바로 알겠더군요. 코로나에 걸렸다는 것을. 하필 자가검진키트가 똑 떨어지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확진 받은 것은 아닙니다만, 예전부터 그런 말이 많았잖습니까. ‘이거 코로나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아니라고. 그런 생각조차 못할 만큼 화끈하게 온몸을 두드린다고. 그게 무슨 말인지 이번에 알았습니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할 때도 이만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경험이 두 번 있습니다. 다만 자가검진키트로는 별 짓을 해도 두 줄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디 가면 ‘코로나에 한 번도 걸린 적 없다’고 큰 소리 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왜 코로나라고 확신하냐고요? 대표적인 증상이 모두 나타났거든요. 특히 미각이 사라지는 것과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침은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것.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저는 공식적으로 코로나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대단합니다.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최소 두 번은 걸렸을 텐데요. 그 뒤에 “어쨌든 공식적으로 걸린 적은 없다”고 덧붙이면 듣는 사람도 “아, 뭐, 그렇긴 한데…”라고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공식적인 것이 이렇게나 중요합니다. 운동선수의 이적에 있어서도 ‘오피셜’ 나기 전에는 안심하지 말자고 하는 이유가 있죠.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딥페이크 범죄와 관련해 정의당 당직자 강남규 님이 쓴 페이스북 글을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원외정당 공보를 한다는 건 속도와의 싸움이다. "정의당만" 낸 상태여야 그나마 기사가 된다. 특히 원내정당들이 입장을 내기 시작하면 정의당이 낄 자린 급격하게 없어진다. 이 문제 관련해서 지난주에도 입장을 하나 내긴 했지만, 구체적인 학교 명단이 돌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인식하는 정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오전에 기자회견이 있어 늦어지는 동안 조바심이 났다. 결국 오후에 내게 됐는데, 이미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게 무슨. 아무 당도 입장을 안 내고 있다. (진보당 김재연 대표가 트윗을 올리긴 했다. 트윗만 올리고 페북엔 안 올렸더라.) 그래서 이렇게 기사가 나갔다. 하지만 기사를 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황당하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내가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가?” 공식적인 것은 힘이 셉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보증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공식적인 것은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다소 추상적입니다. 조금 느립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은 직감과 기분에 따라 ‘좋빠가’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요. 더 명확하고 더 빠를수록 그것은 힘이 더 세집니다. 이례적인 것은 그 자체로 리스크를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례적인 것은 유일한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을 때 딱 하나 있는 선택지가 평범한 경우가 오히려 드물겠죠. 그러니 어쩌면 선택 자체는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 선택을 최선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이 어려울 뿐. 어려워서 피할 건가요? 개인은 그럴 수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인데 누가 누구를 덮어놓고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런 자격은 누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당이 그래도 되나요? 정당은 사회의 룰을 만드는 주체입니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사회 집단입니다. 심지어 원내정당은 실질적인 권력도 쥐고 있죠. 말도 안 되는 범죄(라고 썼지만 이미 디지털 성범죄는 반복적으로 일어났고 딥페이크 기술이 보편화 되는 시점에서 여러 사람이 경고하기도 했죠. ‘말도 안 되는 범죄’는 사실 순진 혹은 무식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에 수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는데 공식 입장 표명이 이토록 느긋하다니, 솔직히 충격 받았습니다. 유불리를 따지고 있었다면 나쁜 것이고 단지 늦게 인지했다면 무능한 것이죠. 딥페이크 범죄는 어떻게 될까요? 가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카페)에 모여 수사에 대한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이들을 상대로 상담 및 수임 홍보에 나서는 변호사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와중에 딥페이크 범죄 포스터에 집게손을 썼다며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고 경찰은 포스터를 삭제·회수 조치했습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맞는 일인가 싶어요. 정말로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상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고, 정말, 답답한 일 투성입니다. 공식적이건 비공식적이건 말이에요. 지난 레터 이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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