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있는 소파
우리집엔 TV가 없다. 앞으로도 들일 계획이 없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빔프로젝터로 이미 충분하다. TV가 없으면 거실 인테리어 자유도가 극적으로 높아진다. 동선에 대한 제한이 대부분 사라지고 전기 콘센트도 여러 개를 쓸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에이, 그래도…’하는 의무감에 TV를 놨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TV-탁자-소파’로 귀결되는 K-거실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TV 없는 거실이 가능하게 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1인용 소파다. 우리집은 2인 가구이므로 1인용 소파 2개를 놓기로 했다. 물론 2~3인용 소파 1개와 1인용 소파 1개를 배치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집 거실은 그렇게 넓지 않다. 긴 소파를 놓는 순간 기껏 올려놓은 인테리어 자유도가 상당히 낮아진다. TV 없는 거실에서는 굳이 같은 방향을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없으니 각 소파를 어울리는 자리에 적당하게 비틀어서 놓아도 된다. 때로는 같은 쪽을 바라보지 않아도, 서로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는 관계. 요즘 나는 그런 관계에 더 마음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구매한 소파가 드비저리(de Bejarry)의 마드리드 라운지 체어 X 오토만 세트와 히어퍼니처의 HFS-72다. 먼저 사기로 결정한 건 드비저리 마드리드 라운지 체어 X 오토만 세트다. 29CM에서 처음 봤고 서울시 성수동 소재 편집샵 TTRS에서 실물을 확인했다. 예뻤다. 그리고 편했다. 안 살 이유가 없었다. 다만 거의 눕다시피 할 수 있는 선베드가 떠오르는 외형을 가진데다 오토만과 사이드 테이블까지 샀기 때문에 전체 부피가 꽤 된다. 자칫 잘못하면 긴 소파를 놓는 것만큼 자유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빅&스몰 조합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불균일성에서 비롯되는 리듬감이 거실에 깃들길 바라면서. 스몰에 해당하는 제품이 히어퍼니처의 HFS-72다. (여기서 잠깐. 종속변수에 해당하는 HFS-72의 사진을 쓴 이유가 궁금하신 분도 계실 테다. 간단하다. 드비저리 세트는 품절로 인해 2개월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방금 전 문장이 과거형이 아닌 것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매 당시 가격은 29CM VIP 쿠폰을 먹여 약 100만원 정도. 월요일에 결제했는데 다음 날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의 직원은 익숙한 경상도 사투리로 해당 제품은 금요일에 출고돼 토요일 쯤 도착할 거라고 알려줬다. 가구 배송이야 원래 며칠 걸리는 법이니 이상한 건 아니었다. 이렇게 연락까지 주시다니 참 친절한 업체라고 생각했다(알고 보니 상품 페이지에는 3일 이내 출고라고 적혀 있었다). 소파는 그 다음 주 화요일에 왔다. 다소 아쉬웠지만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받았다. 정확히 말하면 벨소리를 듣고 문을 여니 그 앞에 거대한 박스가 놓여 있었고 낑낑대며 들고 들어왔다. 그런데 보통 가구는 집 안까지 넣어주시지 않나? ‘보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조심스럽지만 지금껏 가구를 구매하면 기사님이 집 안에 넣어주시고 박스 등 포장재는 회수해 가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반 택배 배송처럼 온 것이다. 거실에 날리는 먼지와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 때문인지 조금 짜증이 났지만 그런 걸로 컴플레인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소비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적으로 업체 직원에게 짜증을 전가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제품에 약간 하자가 있었다. 소파를 지탱하는 부품이 파손된 것이다. 그로 인해 평형이 맞지 않아 앉은 채로 몸을 기울이면 소파도 함께 기울며 흔들렸다. 명백한 컴플레인 사유였다. 하지만 당시 나는 거대한 박스를 해체하고 스티로폼을 비롯한 다량의 포장재를 분리수거 하고 온 참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힘이 빠진 상태였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전하는 것도 상당한 힘이 드는 일이다. 내겐 그 힘이 부족했다. 교환 또는 반품 절차를 떠올리는 것조차 번거로웠다. 게다가 이 부분만 제외하면 디자인 등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 상태였다. 혹시 러그 위에 두면 괜찮지 않을까? 괜찮았다. 살짝 거슬리긴 했으나 애써 눈을 흐리게 뜨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그처럼 약간의 하자를 안고 있지 않은가? 그런 것들은 고이 품고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추억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애인에게 혼났다. 바보도 아니고 이걸 왜 그냥 쓰냐고.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애인은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다. 어쩜 이렇게 나와 생각하는 것도 비슷할까. 하지만 애인은 나와 다른 부분도 많은 사람이다. 막 퇴근한 참이라 지친 상태일 텐데도 아닌 건 아니라고 바로 말하는 것이다. “당장 고객센터에 문의 남겨” 나는 그렇게 했다. 밤 10시가 넘었기에 지금 올려봤자 29CM와 히어퍼니처 직원 누구도 당장 확인하진 않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애인이 시키는 대로 당장 문의를 남겼다. 사진도 2장 첨부해서. 다음 날 오후에 전화가 왔다. 앞서 출고 일정을 알려준 직원이 아니었다. 상대방은 자신을 대표라고 소개했다. 어이쿠. 대표님이 직접 전화를 주시다니. 그럴 것까진 없는데.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고 보니 그럴 법도 했다. 해당 제품은 해외에서 수입해 오는데 내가 받은 제품이 마지막 재고였으며 일부 부품만 교체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교환을 받으려면 시간이 꽤나 걸릴 듯하니 반품으로 처리를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교환을 택하기는 어려웠다. 그걸 되돌려 보내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고 이미 드비저리 세트를 좀 기다려서 받기로 했기 때문에 추가로 뭘 더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꺼려졌다. 그럼 반품…? 하이고. 또 한참을 소파 찾느라 고생하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