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칠
Fullchill
병연
이름부터 지원 팀이잖아요 [풀터뷰]
*풀칠 매거진(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정해린은 평범한 직장인이다. 출근 전 날 밤이면 다음 날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워 괴로워하고, 회사에서 꼬박 하루를 보낼 생각에 비명을 지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자신이 맡은 업무를 처리한다. 백화점 가서 돈쓰기만 했지 여기서 돈을 벌 줄은 몰랐다는,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백화점 직원이 다 된 정해린을 만나봤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총무로 일하고 있는 정해린이라고 합니다. 입사한 지 1년 6개월 정도 됐습니다. 백화점에서 총무는 어떤 일을 합니까? 백화점 전반을 관리하는 직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고객들이 방문하는 물리적 공간 차원에서 각종 시설을 챙기는 일이 많습니다. 각 시설은 담당 업체가 있고 업체 소속의 직원 분들이 계세요. 그 분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게 주요 업무 중 하나예요. 도급이라고 하는데요. 업체에 대한 계약, 평가, 서류 관리 및 점검 같은 걸 담당해요. 이외에도 복리후생, 세금, 보험, 구매, 안전, 미화까지 다방면으로 관여하고 있어요. 또 저희는 총무와 인사가 함께 지원 팀에 속해 있는데요. 그러다보니 내외부에서 다양한 요청을 받습니다. 그것들을 처리하는 것도 일이죠. 어떤 요청을 받나요? 예를 들면 영업 팀에서 고객 대상 행사를 진행할 때 필요한 물품을 확인해서 배정해주기도 하고요. 뭔가 설치해야 한다면 공간 또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지 챙기기도 합니다. 혹은 본사 차원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취합해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요. 외부에서 저희 직원 또는 고객 대상으로 이런저런 행사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이 들어오면 대응하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살림꾼이네요. 보통 출근하면 뭘 합니까? 다들 그렇겠지만 메일이나 메신저부터 살핍니다. 저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출근하고 주말에 쉬는 게 아니라 한 달 스케줄을 별도로 짜서 그에 맞춰서 출근하는데요(백화점은 주말에도 열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제가 쉬는 것과 상관없이 회사의 일은 현재진행형일 때가 많아요. 새로 발생하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을 놓치지 않게 인수인계를 잘해야 해요. 당장 처리해야 할 게 없으면 일단 백화점을 한 바퀴 돕니다. 돈다는 게 뭡니까? 돌면서 뭘 하나요? 문제 없나 살피는 거죠. 백화점이 크고 작은 공사를 자주 해요. 입점 브랜드가 바뀌기도 하고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닫히기도 하니까요. 보통 영업 시간이 끝나고 다음 날 오픈 전까지 진행되는데 그 현장에 가보는 거죠. 공사는 잘 됐는지, 뒷정리는 잘 됐는지. 그리고 나서는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주차장 혹은 직원 전용 통로 같은 것들을 확인해요. 영업 시작하기 전에 전반적인 컨디션을 체크하는 거죠.
병연
재밌는 걸 했는데 일이 됐다 [풀터뷰]
*풀칠 매거진(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정다운은 ‘일이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재밌는 걸 했는데 일이 됐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꼭 덧붙인다. ‘너무 좋잖아!’ 우당탕탕 흘러온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게 현재로 이어지는 단 하나의 경로였을 거라 확신하게 만드는 정다운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왔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올해로 딱 10년 차에 접어든 정다운입니다. 지금은 헤이러너스라는 F&B 브랜드에서 CMO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밥을 팔아요. 김밥을 판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오픈 준비에 6개월 정도 썼고 오픈하고 나서 6개월 정도 지났어요. 다 합치면 1년 쯤 됐네요. 많은 걸 하셨을 듯한데요. 잘 모르는 입장에서 다운 님의 하루를 상상하며 업무를 쪼개 봤습니다. 매장 관리, 상품 판매, 마케팅, 기타 백오피스 업무 정도. 모든 일을 했죠. ‘실제로 김밥을 마는 것’ 빼고는 다 했어요. 브랜드 이름을 짓고, 콘셉트를 정하고, 공간을 꾸미고, 어떤 고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전략을 짜고, 이런 저런 비용 관리도 하고. 오픈 준비하는 6개월, 오픈하고 난 뒤 얼마 간은 그렇게 다 아울렀어요. 다행히 금방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대부분의 업무에서는 손을 떼고 마케팅과 B2B 영업 쪽에 집중하고 있어요. 현재 다운 님의 일과를 소개해주신다면. 아침엔 무조건 매장에 출근합니다. 그 날 이슈가 없는지, 뭔가 챙겨야 할 건 없는지 살펴봐요. 특히 고정으로 나가는 단체 주문이 항상 있는데요. 그거는 제가 매일매일 배달을 하고 있어요. 직접 배달까지? 저를 보고 시켜주시는 거잖아요. 많이 주문해주시기도 하고요. 처음으로 정기 배송을 해주셨던 분들이니 웬만하면 직접 가서 인사도 드리고 맛은 어떤지 여쭤보기도 하고 그래요. 그리고 여기 주변에 회사가 많잖아요(헤이러너스는 광화문에 있다. 인터뷰 다음 날 상암에 2호점을 오픈했다). 포장하러 자주 오시다가 이제 아예 정기 배송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기도 해요. 배달 다녀와서는 뭘 하시나요?
병연
풀칠 에세이 모음(2020~2023)
홈페이지에는 2024년 이후에 쓴 콘텐츠를 업로드합니다. 그 전까지 썼던 콘텐츠(=에세이)는 아래 박스를 클릭하면 바로 읽어볼 수 있습니다. 풀칠은 저를 포함한 직장인 4명이 함께 만드는 매거진입니다. 홈페이지와 뉴스레터를 운영 중입니다.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살펴봐 주세요.
병연
정당이라는 일터 [풀터뷰]
*풀칠 매거진(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이 업계에 한 발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주변에서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보기 힘들 거라고. 심지어 이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지하지 못 했을 거라고. 김예슬은 당직자다. 정당에서 일한다. 매일 아침 국회로 출근한다. 그는 정치인인가? NO. 정치 꿈나무인가? NO. 직장인인가? YES. 5년 차 풀칠러 김예슬과 이야기 나눴다. 짧게 소개 부탁합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당직자로 일하고 있는 김예슬 주임입니다. 계약직 기간을 포함하면 벌써 5년 차네요. 소속을 어디까지 밝힐 수 있나요? 원하는 수준이 있나요? 편한 대로 해도 돼요. 저희야 당연히 최대한 구체적인 게 좋습니다만, 아무래도 정당이다 보니 조심스럽지 않을까 싶어서요. 상관없어요. 일하는 것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인터뷰니까요. 좋습니다. 당직자란 당최 뭐 하는 직업인가요? 우리가 흔히 아는 당직은 아닐 테고요. 정당이라는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보통 정당 하면 당대표나 국회의원 등 정치인을 떠올릴 텐데요. 그 외에도 조직으로서 정당을 굴리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있어요. 홍보, 행사 운영, 회계 등등.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죠. 일반 회사원이나 공무원들이 그렇듯이 저희도 입사하면 발령 나는 대로 여러 부서를 돌아요. 저는 더불어민주당에서 정책 연구를 담당하는 민주연구원 정책연구실 소속이고요. 정당에서 일하는 일반행정직 직원이군요. 요즘엔 무슨 업무를 하고 있습니까? 조금씩 다양한 일을 해요. 다음 달(8.18)에 전당대회가 있는데요. 뉴스에선 당 대표 선거 얘기가 주로 나오지만 사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2년마다 열리는 행사인 만큼 그동안 바뀐 시대 흐름에 맞춰서 당헌, 당규도 조금씩 수정하는데요. 제가 속한 민주연구원에서는 그중 강령 개정을 맡았고, 저 역시 당분간 이 업무를 지원할 예정이에요 그쪽 업무를 지원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병연
🍔 아이스버거는 혁신인가 [풀칠 186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알 듯 말 듯 해, 혁신 ‘이제 곧 초복이군.’ 10년 전 이맘때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먹은 짬밥이 ‘초복 특식’ 삼계탕이었던 탓에 매해 이맘때면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된다. 하지만 난 초복을 챙기지 않는다. 여름이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보양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아니다.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되는 것과 내 라이프스타일은 별 관계가 없다. 그건 뭐랄까…꼭 한 시절의 상흔으로 마음에 남았을 뿐이다. 중복과 말복은 언젠지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게 증거다. ‘이제 곧 초복이군’이라는 생각은 한동안 일상 속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회의 중 쉬는 시간에,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퇴근 후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제 곧 초복이네요…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지요. 그러나 대개 말만으로 그친다. 나는 초복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삼계탕을 먹을 수 있지만 그 이유는 ‘초복이라서’가 아니라 ‘먹고 싶으니까’다. 내 선택의 근거를 외주 주지 않으리. 그러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이 초복에 삼계탕을 먹는다. 중복도, 말복도 놓치지 않는다. 삼계탕집 주인은 삼복 시즌이면 더 많은 재료를 확보해 둘 것이다. 올림픽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스포츠 브랜드가 물량 갖추기에 들어가듯이. 연말이면 베이커리에서 각양각색 신상 케이크를 내놓듯이. 아주 작은 습관이라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장이 형성된다. 역시 습관이야말로 가장 큰 상품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습관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내겠다는 발상을 최초로 했던 사람은 누굴까. 직관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주장하고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누군지 몰라도 덕분에 800만 삼계탕인이 여름에도 밥 먹고 산다. 아니지, 밥 팔고 산다. 다른 게 혁신이 아니다. 이런 게 혁신이지. 다음 혁신은 ‘겨울에 냉면 먹는 날 만들기’ 정도 되려나. 친구와 냉면을 먹다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식초와 겨자를 골고루 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지. 그건 너무 1차원적이잖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다음 혁신은 뭔데?”
병연
안물안궁? 이 책에는 그런 게 없다
*풀칠 인스타그램에 쓴 콘텐츠입니다 박찬용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뭐냐면, ‘블랙칼라 워커를 위한 국내 최초의 남성 패션지‘다. 그러니까 박찬용은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잡지 에디터다. “잡지의 사생활”은 그가 쓴 직업 에세이다. 부제는 이렇다. “미감과 호기심, 대화와 물건으로 이루어진 매체를 서울에서 만드는 일에 대하여” 안물안궁이라고? 박찬용의 책에는 바로 그런 게 없다. 스스로에겐 유의미할지 몰라도 타인이 듣기엔 심드렁할 수 있는 에피소드 말이다. ’그 일을 하게 된 우연한 계기‘로 시작해 ’피나는 노력과 성취, 자기만족‘을 지나 ’번아웃 극복기‘로 이어지는 글에는 대개 악의 없는 나르시시즘이 묻어난다. 그런 건 SNS에서 읽는 걸로 족하다. 직업 에세이의 미덕은 ‘작가의 렌즈화’다. 즉 '직업'을 통해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직업'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잡지의 사생활”은 훌륭한 직업 에세이다. 박찬용은 묵묵히 잡지 에디터의 본질을 탐구한다. 자신이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다. 쓸 수 없지만 필요한 것은 물어본 뒤 쓴다. 참 믿음직하다. 잡지 에디터를 꿈꾼다면 그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듯하다. 잡지 에디터를 꿈꾸지 않아도 자기 커리어를 돌아보고 싶다면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직업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를 이보다 잘 담아낸 책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잘 쓴 문장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니 그걸로 됐다.
병연
🧑🏾‍🏫 반면교사는 없다 [풀칠 180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와 대거리를 벌인 날이면 니체가 했다는 멋진 말을 퇴근길 지하철(1호선) 안에서 떠올리곤 했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어쩌구 심연도 나를 저쩌구… 나는 부하 직원을 저렇게 대하지 않아야지. 알고 있다. 실은 상사가 옳았을 확률이 더 높다. 더 많은 경력을 가진 그의 판단력은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한 나보다는 예리했을 것이다. 직책을 고려하면 더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테니 우리 팀이 놓인 상황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것이다. 이러한 추측은 충분히 논리적이다. 가끔 예외가 있긴 하지만…예외는 드물기 때문에 예외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일반・보통・평범에서 벗어난 상황을 그렇게 자주 마주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상사와 한 판 붙은 팀원 A가 있다. 그와 상사 뒷담을 하다보면 갑자기 혼자 설득이 되는 묘한 순간이 온다. 상사의 말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을 A가 말하고 있고, A가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은 내가 말했던 바로 그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결론적으로 상사가 맞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동급인 동료를 통해 들으면 이해하고 동의하게 된다. 하지만 인정하기 싫다. 그래서 상사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탓한다. 돌이켜보면 상사에게 가졌던 불만은 대개 내용보다 그걸 전달하는 방식 쪽으로 향했다(생각보다 까라면 까는 스타일이다). 방금 중얼거려봤는데 “알겠는데…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 거?”라는 대사가 왠지 입에 익숙한 걸 보니 더욱더 확신이 든다. 이때 ‘전달하는 방식’은 단순히 싸가지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도 포함되긴 하지만 다양한 요소가 있다.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명했는지, 맥락을 충분히 공유했는지, 우선순위를 확실히 정해줬는지 등. 듣는 입장에서는 그런 게 왜 그렇게 잘 들렸는지, 말하는 상사는 이걸 모르는지, 대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않으리 다짐했다. 타산지석이니라. 저것만 피하면 중간은 가겠지. 그러나 반면교사는 없다. 사실 우리는 익숙한 것의 반대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허둥지둥하게 되고 허둥지둥하다 보면 익숙한 대로 하게 된다. 상사의 위치에서 커뮤니케이션 할 때 그제서야 혼자 몰래 수치심을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내 모습이 꼭 예전의 상사를 보는 것 같아서. 그 사람도 몰랐던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를 이해 못 했을지도 있겠구나. 이제야 깨달아요. 역시 직접 겪어봐야 안다. 자신이 혐오하던 모습을 다른 데도 아닌 스스로에게서 발견했을 때 마치 괴물이 된 것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리더십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 듯하다. ‘초보 팀장’을 겨냥한 콘텐츠가 잘 팔리는 배경도 짐작이 간다. 반면교사가 아닌 정면교사를 찾고 싶은 거겠지. 그저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서. 참 어렵다. 일을 잘하는 것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도.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모르겠다. 괴물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병연
걍밍경 씨 제가 보고 많이 배웁니다
*풀칠 인스타그램에 쓴 콘텐츠입니다 ‘걍밍경’은 연예인 브이로그 채널의 껍데기를 쓴 동기부여 연설가의 자기계발 채널이다. 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다비치가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온전히 ‘뛰어난 노래 실력’과 ‘훌륭한 음악’에 기댄 결과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비치’가 하나의 상품으로 굴러가도록 하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스킬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보컬 머신으로 살다 죽을 게 아니라면 그들 또한 수익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자명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걍밍경의 영상 속에 있다. 사실 그렇다. 어떤 직업이든 그 본분만 잘 해낸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가수가 노래만 잘 하면 되지, 목수가 나무만 잘 깎으면 되지, 마케터가 마케팅만 잘 하면 되지,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 하면 되지, 개발자가 개발만 잘 하면 되지, 학생이 공부만 잘 하면 되지…과연 그랬나? 정말로 그것만 잘 하면 됐었나? 아니다. 본분은 그러한 정체성을 인정받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최소한의 조건이며 그래서 시작점이다. 게다가 한 사람의 삶에 여러 직업이 교차하는 게 예삿일인 세상이지 않나. 그러니까 자기계발?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지, 뭐. 걍밍경은 보면 볼수록 동기부여가 된다. 특히 다비치 활동으로 전국을 누비며 찍은 ‘차밥열끼’는 내 최애다. 여유롭게 밥 먹을 시간 내기도 어려울 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구나,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젓네, 그래도 잘 챙겨먹긴 한다, 역시 먹어야 일하지, 심지어 그것도 콘텐츠로 만드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뿐이랴. 아비에무아 대표로 일하는 모습이 슬쩍슬쩍 나올 때면 저렇게 바쁜데 브랜드 운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면서 유튜브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 참 대단하다. 전체 시간을 밀도 있게 쓰면서 각각의 일을 100% 소화해내는 모습. 제가 보고 많이 배웁니다. 걍밍경 씨.
병연
📂 이력서 상시 오픈 시대 [풀칠 176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 최근 몇 달 링크드인 피드에 위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이 자주 보였다. 이미 읽은 글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끌올된 건가 싶어 게시 일자를 보면 방금 올라온 것인 경우가 많았다. 작성자들의 스펙은 다양하고 화려하다(적어도 ‘그럴 듯하게’ 보인다). 그리고 대개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가입만 해놓고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다가 다른 분들이 편하게 올리시는 걸 보고 용기를 얻어 일단 무엇이든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는 내용으로 채워진다. 이후 하나같이 그대로 마무리 되는 출사표형 게시글이다. 나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은 유독 링크드인에서만 포착된다. 예컨대 “브런치 작가가 됐습니다”라는 글은 브런치보다는 블로그나 인스타나 스레드 같은 데서도 종종 보인다. 그런데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은 다르다. 오직 링크드인에서만 보이는데 마치 거기가 링크드인이 아닌 다른 플랫폼인 것처럼 군다. 괜한 반항심에 나는 그냥 냅다 올렸다. 그런데 조금 써보니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링크드인이라는 플랫폼 특성에 매우 충실히 복무한 결과였다. 복잡해 보이는 온라인 공간이지만 결국 마이페이지와 게시판으로 요약 가능하다. 우리가 거기서 활동하는 모습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남기는 행위로 이뤄져 있다. 이 두 가지 행위에 어떤 가이드를 주는지에 따라 수많은 온라인 공간들이 갖는 독자적인 정체성이 결정됐다. 대표적인 가이드는 공개범위다. 두 가지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공개범위가 다른 각각의 온라인 공간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자신의 정보와 다양한 형태의 기록은 꾸준히 업데이트 된다. 정보와 기록은 오프라인의 경험에서 비롯되지만 반복적인 업데이트는 스스로를 빚어내는 자기담론으로 기능하며 ‘온라인 정체성'을 형성시킨다. 이러한 자기담론은 다시 우리의 현실 속 사회적・전문적 위치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반응에 반응하는 한편 오프라인으로 연결되는 다양한 층위의 네트워크를 쌓아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은 이제 꽤나 일반적인 루프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이 “링크드인에 첫 글을 썼습니다”라는 글을 링크드인에 올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네트워킹 파티에 참석해 건네는 첫 인사’였던 것이다. 사실 링크드인 자체가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모여 있다. 정확히 말하면 직장인 페르소나를 뒤집어 쓰고 온다(아마 그들도 인스타, 페북, 스레드, 엑스, 블로그, 브런치 등등등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말투를 쓸 테다). 게다가 나의 동료가 될 수도 있는 사람과 리크루터와 헤드헌터들이 득실거린다. 정중하게 인사부터 해야지. 아이고, 힘들다. 현재 소속된 회사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혹시 모를 가능성(그것이 이직이 됐건 업계 네트워크 형성이 됐건)을 위해 불특정 다수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별도로 해야 한다니. 물론 그것이 필수조건은 아닐 테다. 하지만 필수조건이 아닌 것을 필수조건인 것처럼 부추기는 것이 상품의 본령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품이 많아도 너무 많은 시대다. 링크드인 같은 온라인 서비스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세상엔 각종 강연, 모임 등 ‘회사 밖 활동’에 신경 쓰게 만드는 것들 천지다. 『커뮤니티 자본론』이라는 책에서는 지방의 일자리 경쟁력이 서울・수도권에 비해 떨어지는 배경으로 ‘성장 기회를 주는 커뮤니티 자본의 격차’를 지목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좋은 기업 한두 개 갖고 있는 것은 큰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즉 비슷한 수준의 좋은 기업들이 모여 있는 규모가 곧 커뮤니티 자본인 셈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요즘 청년’들에게 이직은 커리어 향상의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설사 실제로 이직을 하지 않더라도 가능성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온라인이고 오프라인이고 다들 ‘언제든지 이직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삶을 산다. 나도 그러한 상태를 유지해왔다. 이력서는 늘 최신으로 업데이트 하며 상시 오픈해둔다. 내 프로필을 조회한 사람의 커리어, 그가 속한 회사가 현재 채용 중인 포지션, 리크루터나 헤드헌터를 통해 들어온 구체적인 제안 등을 근거로 ‘타인의 관점으로 본 나의 커리어’를 그려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점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커리어지만 그렇게 해온 덕분에 여기까지 온 건 사실이다.
병연
🌊 나 파도처럼 살겠어 [풀칠 172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사방으로 산이 둘러싼 가운데 점처럼 찍힌 빨간색 구조물이 인상적인 곳이다.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는 본관도 무척 아름답다. 건축에 조예가 전혀 없는 나조차도 아름다움을 느끼는 걸 보니 그가 얼마나 대단한 건축가인지 여러모로 실감된다. 부드럽게 휘어진 벽면과 계단, 창문 등이 눈에 들어온다. 공간의 미적 가치란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곡선을 집어 넣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집과 사무실을 구성하는 직선들을 떠올려본다. 음, 그래도 활용성만큼은 나름 예술적이니까. 백남준관에 마련된 그의 작품에 유독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구조물 곳곳에 박혀있는 브라운관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멍하게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은 빠르고 깨끗하게 비워졌다. 어딘가에서 듣기로 먼 옛날 동굴 속에 피운 모닥불의 역할 중 하나는 그 일렁이는 움직임을 사람들에게 볼거리로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예전만 못하다고 해도 거실의 TV는 오랫동안 주요 가전 중 하나로 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오히려 먼 옛날의 관점에서는 동굴 속 모닥불이 지금까지 남은 셈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월급이 두 번 밀려도, 사업부가 통째로 날아가도,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해도. 그로 인해 직장인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잃어버려도 다시 어딘가로 솟아나곤 했으니. 물론 이런 식으로 이어온 경로가 이상적이었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이어왔다는 것만으로도 새삼 스스로가 대견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주변에 갓 육아를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동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행에 조금씩 흥미를 갖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싶다. 여행이란 애초에 비일상적 시간과 공간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라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불확실하다. 언제든 비상상황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다. 때문에 성공적인 여행이란 블로그와 유튜브를 섭렵하는 등 치밀한 사전 준비로 쟁취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져도 당황하지 않고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느긋한 표정으로 지금 볼 수 있는 걸 보고 먹을 수 있는 걸 먹고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에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여행의 태도. 파도처럼 살길 바란다. 그것은 지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켜온 존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거칠고 시끄럽게 또 어떤 때는 잔잔하고 부드럽게. 하지만 한결같이 철썩인다. 그래서 파도를 보고 돌아온 날이면 앞으로 조금 더 열심히 잘 살아봐야겠다고 다짐한다. 불확실성이 사방팔방 튀는 와중에도 붙들고 의지할 만한 단 하나의 확실성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딛고 나아갈 수 있다. 바로 그 확실성을 증명하고 조금씩 개선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이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나는 파도처럼 살고 싶다. 뮤지엄 내부를 둘러본 뒤 명상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 40분 정도 가벼운 스트레칭과 함께 진행되는 명상에 참가했다. 명상 고수들은 이곳의 명상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명상 초보인 내겐 이 공간을 즐기기에 최적화된 상태로 몸과 마음을 바꿔주는 의식처럼 느껴져 좋았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 계속 나아갈 힘이 길러지는 듯했다. 다음에 또 방문하면 시간표를 미리 확인해 명상을 먼저 한 다음 공간을 둘러보겠다고 다짐했다. 여긴 분명히 산 속인데 어디선가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병연
🫤 인싸놈들 또 시작이네 [풀칠 170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특정 이벤트가 있을 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여러 사람의 계정으로 비슷한 구도 또는 풍경의 사진과 영상이 집중적으로 올라온다. 여름이면 돌아오는 워터밤이나 흠뻑쇼가 대표적이다. 작년 이맘때엔 메타버스 기반 SNS인 본디가 그랬다. 지금은…음…어디 보자…인스타를 켜볼까? 어…요즘엔 데스커 라운지라는 데에 많이 가는 것 같다. 물론 각각의 이벤트에 반응하는 집단이 완전히 같진 않다. 워터밤이나 흠뻑쇼를 가는 이들과 데스커 라운지에 가는 이들의 교집합은 작다. 그럴 수 있지. 아무리 대중 이벤트처럼 보여도 누군가에겐 오늘의 운세나 날씨보다 가치가 낮은 정보일 수 있으니까. 아마 서로 다른 그 집단들의 평균이 나일 것이다. 내게는 그들 모습 중 일부가 담겨있다. 전부가 아닌 일부가 담겨있어서 문제다. 인스타에 전시되는 무언가가 오늘의 운세나 날씨보다 흥미롭지 않으면 상관없을 텐데, 대충 알긴 해서 부럽다. 제대로 알았다면 나도 이미 그들 중 하나였을 텐데, 그건 또 아니라 부러워만 한다. “나한테는 장들레가 그래미”라는 친구의 말에 자기 취향을 꾸준히 디깅하는 사실을 몰래 부러워했던 것처럼. 하지만 나는 내가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티내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부러워하는 마음을 오히려 그쪽으로 나아가는 동력으로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모르지. 나는 그저 숨기려 했을 뿐. 지금의 모습은 그 결과다. 어떻게 숨겼냐고?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인싸 놈들 또 시작이네.” 그렇게 나는 지속가능한 아싸가 돼 갔다. 인싸 놈들을 바라보는 나의 심정은 대체로 ‘아니꼬움’으로 요약되시겠다(물론 기저에는 부러움이 자리 잡고 있으나 그 위에 덮인 마음 또한 ‘찐’이긴 하다). 그들은 대개 무리지어 다니기 때문이다. 현대판 품앗이다. 스트리머들의 합방처럼 말이다. 호스트와 게스트의 역할만 다를 뿐 똑같은 사람들이 나오는 조금 다른 콘텐츠가 무한 증식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인싸 무리는 이너서클이 된다. 단순히 개개인의 합이 아니라 그 개개인을 지켜주는 하나의 울타리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너서클은 계속해서 크고 단단해진다. 그걸 보면 기분이 영 별로다. 조선시대 양반댁 담장 안쪽은 넘볼 수 없었지만 요즘 이너서클은 인스타 등 SNS를 통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벽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CES 참가가 과연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주제로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실은 기사를 읽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단락의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 매년 한국인들의 경쟁적인 CES 참가 열기로 인해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CES에 대한 FOMO(Fearing Of Missing Out) 현상까지 생겼다고 한다. CES에서 모여야만 소위 말하는 ‘인싸’가 된다는 것이다. (…)* *[쫌아는기자들] CES 혁신상의 이면, 김진환, 2024-01-19, 조선일보 한동안 SNS에 올라오던 인증샷들이 떠올랐다. 각자의 분야에서 한가락 하시는 분들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뭉쳤다. 모르긴 몰라도 난 그 인증샷이야말로 그들이 CES를 찾은 이유에 대한 복합적인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CES라는 공간에서 그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이 교류하다보면 얻는 것이 단지 인싸의 자격에 대한 확인뿐일까?. 글쎄. 친목도모에서 비롯되는 만족감은 물론 그 이상의 자극도 분명히 있었을 테다. 혁신과 성장의 씨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