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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걍밍경 씨 제가 보고 많이 배웁니다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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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칠 인스타그램에 쓴 콘텐츠입니다
‘걍밍경’은 연예인 브이로그 채널의 껍데기를 쓴 동기부여 연설가의 자기계발 채널이다. 그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다비치가 오랫동안 사랑 받을 수 있었던 것이 온전히 ‘뛰어난 노래 실력’과 ‘훌륭한 음악’에 기댄 결과가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비치’가 하나의 상품으로 굴러가도록 하는 비즈니스 마인드와 스킬을 적절하게 갖추고 있다는 것이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보컬 머신으로 살다 죽을 게 아니라면 그들 또한 수익화를 생각해야 한다는 자명한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걍밍경의 영상 속에 있다.
사실 그렇다. 어떤 직업이든 그 본분만 잘 해낸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가수가 노래만 잘 하면 되지, 목수가 나무만 잘 깎으면 되지, 마케터가 마케팅만 잘 하면 되지, 디자이너가 디자인만 잘 하면 되지, 개발자가 개발만 잘 하면 되지, 학생이 공부만 잘 하면 되지…과연 그랬나? 정말로 그것만 잘 하면 됐었나? 아니다. 본분은 그러한 정체성을 인정받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최소한의 조건이며 그래서 시작점이다. 게다가 한 사람의 삶에 여러 직업이 교차하는 게 예삿일인 세상이지 않나. 그러니까 자기계발?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지, 뭐.
걍밍경은 보면 볼수록 동기부여가 된다. 특히 다비치 활동으로 전국을 누비며 찍은 ‘차밥열끼’는 내 최애다. 여유롭게 밥 먹을 시간 내기도 어려울 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구나, 물 들어올 때 제대로 노 젓네, 그래도 잘 챙겨먹긴 한다, 역시 먹어야 일하지, 심지어 그것도 콘텐츠로 만드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뿐이랴. 아비에무아 대표로 일하는 모습이 슬쩍슬쩍 나올 때면 저렇게 바쁜데 브랜드 운영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싶다. 그리고 이 모든 걸 하면서 유튜브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아, 참 대단하다. 전체 시간을 밀도 있게 쓰면서 각각의 일을 100% 소화해내는 모습. 제가 보고 많이 배웁니다. 걍밍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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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 아이스버거는 혁신인가 [풀칠 186호]
*풀칠 뉴스레터(링크)에 쓴 콘텐츠입니다 알 듯 말 듯 해, 혁신 ‘이제 곧 초복이군.’ 10년 전 이맘때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먹은 짬밥이 ‘초복 특식’ 삼계탕이었던 탓에 매해 이맘때면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된다. 하지만 난 초복을 챙기지 않는다. 여름이면 기운이 떨어지기 때문에 꼭 보양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아니다. ‘이제 곧 초복이군’ 하게 되는 것과 내 라이프스타일은 별 관계가 없다. 그건 뭐랄까…꼭 한 시절의 상흔으로 마음에 남았을 뿐이다. 중복과 말복은 언젠지도 모르고 지나간다는 게 증거다. ‘이제 곧 초복이군’이라는 생각은 한동안 일상 속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회의 중 쉬는 시간에, 점심 먹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퇴근 후 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옆 사람에게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제 곧 초복이네요…삼계탕이라도 한 그릇 먹어야지요. 그러나 대개 말만으로 그친다. 나는 초복을 챙기지 않기 때문이다. 삼계탕을 먹을 수 있지만 그 이유는 ‘초복이라서’가 아니라 ‘먹고 싶으니까’다. 내 선택의 근거를 외주 주지 않으리. 그러거나 말거나 많은 사람이 초복에 삼계탕을 먹는다. 중복도, 말복도 놓치지 않는다. 삼계탕집 주인은 삼복 시즌이면 더 많은 재료를 확보해 둘 것이다. 올림픽 같은 이벤트를 앞두고 스포츠 브랜드가 물량 갖추기에 들어가듯이. 연말이면 베이커리에서 각양각색 신상 케이크를 내놓듯이. 아주 작은 습관이라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시장이 형성된다. 역시 습관이야말로 가장 큰 상품이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 말도 안 되는 습관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도 더운 날에 뜨거운 음식을 먹어 더위를 이겨내겠다는 발상을 최초로 했던 사람은 누굴까. 직관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걸 주장하고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누군지 몰라도 덕분에 800만 삼계탕인이 여름에도 밥 먹고 산다. 아니지, 밥 팔고 산다. 다른 게 혁신이 아니다. 이런 게 혁신이지. 다음 혁신은 ‘겨울에 냉면 먹는 날 만들기’ 정도 되려나. 친구와 냉면을 먹다가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식초와 겨자를 골고루 뿌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지. 그건 너무 1차원적이잖아.” “그럼? 네가 생각하는 다음 혁신은 뭔데?”
병연
안물안궁? 이 책에는 그런 게 없다
*풀칠 인스타그램에 쓴 콘텐츠입니다 박찬용은 ‘아레나 옴므 플러스’ 피처 디렉터다.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뭐냐면, ‘블랙칼라 워커를 위한 국내 최초의 남성 패션지‘다. 그러니까 박찬용은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온 잡지 에디터다. “잡지의 사생활”은 그가 쓴 직업 에세이다. 부제는 이렇다. “미감과 호기심, 대화와 물건으로 이루어진 매체를 서울에서 만드는 일에 대하여” 안물안궁이라고? 박찬용의 책에는 바로 그런 게 없다. 스스로에겐 유의미할지 몰라도 타인이 듣기엔 심드렁할 수 있는 에피소드 말이다. ’그 일을 하게 된 우연한 계기‘로 시작해 ’피나는 노력과 성취, 자기만족‘을 지나 ’번아웃 극복기‘로 이어지는 글에는 대개 악의 없는 나르시시즘이 묻어난다. 그런 건 SNS에서 읽는 걸로 족하다. 직업 에세이의 미덕은 ‘작가의 렌즈화’다. 즉 '직업'을 통해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직업'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잡지의 사생활”은 훌륭한 직업 에세이다. 박찬용은 묵묵히 잡지 에디터의 본질을 탐구한다. 자신이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한다. 쓸 수 없지만 필요한 것은 물어본 뒤 쓴다. 참 믿음직하다. 잡지 에디터를 꿈꾼다면 그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될 듯하다. 잡지 에디터를 꿈꾸지 않아도 자기 커리어를 돌아보고 싶다면 큰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직업을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를 이보다 잘 담아낸 책도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 잘 쓴 문장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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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교사는 없다 [풀칠 1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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