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은 내 시간을 들여 읽는 동안엔 콘텐츠이고 적당한 자리에 알맞은 양을 꽂거나 세우거나 쌓아두면 오브제이다. 둘 중 어느 것도 되지 못한다면 처치 곤란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짐짝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금 내 책들이 그렇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전자책으로 바꿔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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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다음에 커피나 한 잔 해요.” “좋죠. 확실히 해두는데, 저는 진짜 한 잔 해요.” “네?” “저는 이런 거 진짜 연락한다고요. 커피 한 잔 하자고.”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적당히 어색한 두 사람의 대화에 마침표를 찍을 때 안성맞춤이다. 가끔은 이런 인사치레를 역이용한다. 예상이 빗나가는 경험을 줄 때 상대에게 호기심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고 싶은 사람인 경우에만 던지는 회심의 일격. 물론 어떤 반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건 베팅이기도 하다.
사실 보통 인간관계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순간에는 누구라도 선을 넘어야 진전이 생기는 법. 선 밖에서 맴돌기만 하면 기억 안 나는, 이름은 들어본 듯한, 얼굴만 아는 사이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은 선을 넘는 방법 중에서도 가장 가볍다. 시도해볼 만하고 허용해줄 만하다. 그래.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시작되는 거다. 커피 한 잔이 밥 한 끼가 되고, 밥 한 끼가 술 한 잔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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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30년 전, 이사 갈 집 좁으니 턴테이블이며 LP판이며 버리자고 성질 부렸던 엄마와 거기에 못이겨 턴테이블은 버리면서 LP판들은 꿋꿋하게 이고 지고 살았던 아빠는 품목만 바꿔가며 똑같이 살고 있다. 버리는 자와 모으는 자. 미니멀리스트와 맥시멀리스트. 두 사람이 타협한 결과물인 이 LP판들은 이제 내 것이 됐다. 한 시절의 추억을 물려받은 기분이 꽤나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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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이를테면 절 같은 곳 말이다. 비는 마음이 드러나는 공간에 서면 늘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사람들이 정말 별의별 희한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빈다). 내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구나. 진짜 중요하고 거대한 것은 운이 뒷받침 돼야 한 걸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구나. 그렇기에 인간은 아주 옛날부터 지구 곳곳에서 무언가를 빌어왔겠지. 전인류가 힘을 모아 증명한 결과 앞에 한없이 작아질 뿐이다. 그러니 내 선택의 결과에 실망하지 말자.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생각과 다짐처럼 느껴지겠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보내는 시간 대부분이 무의미로 가득하지 않은가? 괜히 변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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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사이먼 쿠퍼의 <옥스퍼드 초엘리트>
현재까지 정병연이 젤 재밌게 읽은 올해의 책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 (1/3쯤 읽음). 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문장이라는 조건들이 동시에 충족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다.
tmi1: 박찬용 에디터님의 서평을 읽고 담아둔 책 중 하나임 tmi2: 사실 야망계급론>이라는 책을 더 기대하고 있긴 했음 tmi3: <옥스퍼드 초엘리트는> 밀리의서재에 있길래 먼저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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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더 많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제 다 컸으니까, 사람 겪을 만큼 겪어봤으니까, 내 사람 챙길 시간도 부족하니까. 그러니까 지금 내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에게 집중하겠다며 타인을 향해 나 있는 문에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길 원한다. 죽기 직전까지 한 명씩 천천히,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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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유료 미디어가 유료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미디어(=콘텐츠 소비)'에 초점을 맞추고 요금을 내던 고객은 얼마나 될까(=얼마나 고려해야 할까). 왜냐면 그 과정에서 (비현실적이지만 일단은) 여전히 같은 수준의 콘텐츠를 같은 양으로 제공하더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제는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것 같다. 설사 콘텐츠 외 서비스에 별도 요금을 책정해도 마찬가지다. 왜냐면 미디어를 운영하는 이들이 그만큼 리소스를 다른 데 쓰고 있다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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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훌륭한 분을 인터뷰한 콘텐츠를 낼 때는 그가 겪은 고난을 어떻게 서술할지 특별히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 인터뷰이의 인생곡선을 잘 드러내면서도 그것이 혹여나 독자로 하여금 '너의 고난은 작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걸 해내야 하는 것이다. '적당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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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우니의끼니'는 먹방 유튜브 채널이다. 채널주인 우니는 적당히 잘 먹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영상에는 남편인 갱저씨가 함께 나온다. 현재 구독자 수 24.8만명. 조회 수는 평균적으로 10만 중반대가 나온다. 잘 모르지만 알짜배기 아닌가 싶다.
메뉴 영감을 받고 싶을 때 찾아서 보긴 하는데, 보통은 자기 전에 딱히 볼 게 없거나 집에서 술 한 잔 할 때 본다. 그냥 틀어 놓는 것에 가까워서 딱히 골라서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니의끼니는 이런 용도에 최적화 돼 있는 채널이었다.
2018년 6월에 시작해 이제 만 6년이 넘었다. 업로드 된 영상 개수는 383개. 분량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다. 그런데 놀랍게도 극초기 영상 몇 개를 제외하면 업로드 시점을 정확히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영상들이 비슷하다. 촬영 구도나 편집 스타일 등은 물론, 우니와 갱저씨의 생김새나 패션, 집안 인테리어, 사용하는 도구들까지 모두 그대로다(다른 건 우니의 머리 길이뿐).
의도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꾸준히 영상을 쌓아온 지금은 아무거나 그냥 틀어놓기에 최적인 채널의 조건을 갖춰버리고 만 것이다. 일관성이란...대체 뭘까...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록은 아예 남기지 않는 편이 사실은 스스로에게도 이롭다. 왜냐면 보통 그런 기록은 자기도 보기 싫거나 보면 힘든 것이거든.
그럼에도 '기록하는 행위'의 효험을 믿는다면 훗날 그 자신도 다시 볼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병 속에 넣어 강이나 바다에 던진다든지(이건 환경 파괴라 보류)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다든지(이건 국가안보 위협이니 보류)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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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옆집에 과일을 좀 드렸다. 이사온 지 얼마 안 된 만큼 우리 집 문 앞엔 자주 택배 박스가 쌓인다. 그런데 간혹 큰 물건일 경우 그것들이 옆집 분들의 통행에 불편을 준다. 각 집의 출입구가 직각 형태로 붙은 구조이기 때문이다. 마침 본가에서 자두와 복숭아를 보내왔고 선물 받은 메론도 몇 통 있었다. 양해도 구하고 인사도 드리면 좋을 듯했다.
과일을 봉투에 담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옆집인데요. 과일을 좀 드리고 싶어서요." "아, 안 주셔도 괜찮은데...잠시만요!" 선한 인상의 부부가 나왔다. "젊은 분이시네...아, 정말 안 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이사 왔는데 인사도 드리려고요." 그렇게 다시 들어왔는데 불과 몇 분 뒤 우리집 초인종이 울린다. 남편 분이 머쓱하게 각 티슈 4상자를 들고 계셨다. 하핫...그 잠깐 사이에 뭐라도 줄 거 없나 찾아보셨을 두 분을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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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중고딩 때 유행하던 노래를 듣는 것은 '듣던 노래만 듣는 것'이지만 아예 더 옛날로 가버리면 '취향'으로 포지셔닝 할 수 있다. 외국이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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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내 상사는 일을 너무 못한다고 징징거리는(냉정한 척 말해도 본질은 징징임) 사람 중에 그 자신이 일 잘하는 상사가 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자신이 처해 있는 복잡한 상황은 매우 잘 이해하면서 타인의 그것은 단순하게 판단하는 사람들이 그 습관을 못 버리고 일터에 나오면 그런 모습을 보인다.
누굴 까려는 건 아니고 '일 잘하는 상사'는 진짜 되기 어려운 거 아닌가 싶어서. 만약 그런 상사를 만난다면 큰 행운이라 여기고 최대한 많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우 드문 경우니까. 내 상사가 일 잘하는 상사가 아니라면? 징징거릴 게 아니라 그냥 같이 열심히 하면 된다. 갈라서거나.
그게 평범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다. 나는 '일 못하는 상사'는 '일 잘하는 상사'만큼이나 드문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머지는 고만고만하게 뛰어나고 고만고만하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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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현) 직장 동료와 사적인 관계를 맺는 일은 거의 없다. 그에 대해 알고 싶은 건 직장에서 그의 역할과 일, 딱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와 나 둘 중 누군가의 퇴사로 (전) 직장 동료가 되면 우리는 우리를 알지만 알지 못 하는 사이가 된다.
그때부턴 새 친구를 사귀는 자세로 관계에 임하게 되는데 오히려 이로 인해 더 재밌는 경험을 하곤 한다. 직장 아닌 곳에서의 그에 대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와, 전혀 몰랐어요. 이런 얘기를 갖고 계셨다니.‘ 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을 자주 맞닥뜨린다.
이를테면 이런 영상. 댄서가 아니면서 댄서라는 직업과 시장에 관심 갖고 자기가 할 줄 아는 툴과 돈을 들고 직접 씬에 들어가는 게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한때 나와 같은 배를 탔으나 이제는 자유롭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그 자체로 영감이다.
일관적이지 않고 통일성 없는 커리어는 내 가장 큰 골칫거리다. 하지만 그 덕분에 문자 그대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전) 직장 동료라는 적당히 거리의 관계로 이어갈 수 있다. 다 지나고 나면 골칫거리는 증발하고 관계는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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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이두를 쓰면 삼두도 쓰게 되고 가슴을 쓰면 등도 쓰게 된다. 거꾸로 뒤집어도 마찬가지다. 그것들이 서로 붙어 있는 근육이라서 그렇다.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있기 때문에 번갈아 늘었다 줄었다 하며 단련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지 않는 일도 그렇다. 둘은 이두와 삼두, 가슴과 등 같은 관계다. 무언가를 쉽게, 깊게, 오래 좋아할 줄 아는 사람은 한편으로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능숙하게 해낸다. 열렬한 사랑과 깨끗한 단념은 사실 한 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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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라식과 전기차의 공통점은? 경험자는 매우 만족하며 지내는데 정작 경험도 안 해본 사람들이 부작용과 불편함을 지적하며 한 마디씩 보탠다. 이를 주제로 글 한 편 쓸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한두 가지에 그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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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결혼 기념 전시회를 기획한다면 주제는 '숙제'로 하고 싶다. 결혼을 앞둔 사람, 이미 해본 사람, 별 생각 없는 사람, 비혼주의자 등 누구라도 결혼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인류에게 결혼은 단순한 짝짓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오랜 기간 '축하'하고 '기념'해왔다. 이와 같은 종 차원의 습관 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개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혼을 어떤 맥락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나는 '숙제'라는 단어 중심을 풀어보고 싶다. 인류에게 결혼은 숙제였다. 단지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지속적인 변화가 진행돼 왔을 뿐이다. 예컨대 주체나 시기나 방식 같은 것들. 그 변화는 어떤 경우에는 축소였고 어떤 경우에는 확장이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무엇보다도 해석의 폭이 넓을 수 있는 주제인 것이다.
사진전을 하면 좋겠다, 는 생각에서 시작됐지만 점점 욕심이 생긴다. 큰일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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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강자와 약자 사이 경계를 부순 다음 그들을 한 곳으로 몰아 넣는다. 이들이 생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은 ‘소통’뿐. 그러나 소통은 끝없이 이어지는 오해의 반복을 묵묵히 통과한 뒤 얻은 부분적인 이해를 통해 비로소 이뤄지는 것. 김초엽 소설의 주인공은 무수히 다른 상황 속에 처하지만 모두 이 사실을 배우기 위한 과정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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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A: 독일문학이나 러시아문학이나 여타 해외문학을 읽고 얘기하면 비교적 그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 메시지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문학은 달라요. 호불호부터 이야기하고 나서거든요. 쉽게 말해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건 별로인 작품인 거죠.
여기서 ‘별로’라는 말에는 개인적인 취향뿐만 아니라 완성도에 대한 은근한 평가도 담겨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이 책을 선정한 사람이나 (만족했든 불만족했든) 제대로 읽은 사람은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어적인 논리를 펼 수밖에 없고, 그런 호불호 층위의 대화를 어떻게든 작품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에 대한 대화로 끌어오려고 하지만 자주 실패해요.
뭐,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에 실제로 세계문학보다는 한국문학을 읽을 때 별로인 작품을 만날 확률이 더 높긴 하지만... 여튼 그러한 이유로 한국문학으로 독서모임 하는 게 참 힘들어요.
나: 에세이는 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문보영 시인 에세이로 독서모임 했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A: 문보영 시인이 프랑스 사람이면 안 그랬을 거예요. 문 시인 글이 프랑스 쪽에서는 그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형태의 글이거든요. 아무래도 한국 독자에게는 좀 낯설죠.
나: 그러니까요. 그 낯선 것에서 재미를 느끼든지 아니면... 이게 뭐야? 이것도 출판이 돼? 하는 분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어려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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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1.
뷰티풀너드가 구축한 맨스티어는 한국 힙합에 있어 일종의 하방 저지선 역할을 했음.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음. 개인적으로는 없었다에 한 표.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됨.
2.
사실 니즈(?)는 꾸준히 존재했음. ‘어느새부터 힙합은 안 멋져(이찬혁)’, ‘증오는 빼는 편이야 가사에서 질리는 맛이기에(김하온)’ 같은 라인이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가 있음.
3.
맨스티어는 좀 더 본격적이었음. 촘촘한 세계관 기반의 장편 콘텐츠로 서사를 쌓았음. 심지어 랩도 꽤 잘하고 곡도 괜찮았음. 무엇보다 대중이 반응했음. 현실과 연결돼 버림.
4.
그런데 풍자를 기반으로 한 하방 저지는 당사자 의도와 상관없이(특히 대중의 반응을 얻을 경우) 결국 디스리스펙으로 흐를 수밖에 없음. 그 선을 영원히 넘지 않는 건 매우 어려움.
5.
ph-1은 그 부분을 짚음. 풍자가 디스리스펙으로 넘어가는 그 선을 넘지 말아라(어디까지 허락되는 거야 풍자?). 맨스티어 정밀 타깃이 아님. 이쯤에서 다 같이 환기를 하자는 거임.
6.
그걸 ‘긁’이라고 하면, 맞음. 긁힌 거임. 근데 그게 게 문젠가? 원래 특정 집단에 덧씌워진 멸칭은 대개 그 멸칭이 묘사하기 어려운 사람부터 타격함. 국개의원, 떡검, 견찰, 기레기 등등등.
7.
그런 점에서 이센스의 급발진은 좀 아쉬움. 이해는 감. 다만 불필요한 발언을 너무 많이 쏟아냄. “진지하게 하는 사람 기분 개좆같게”라고 했는데, 그건 ph-1도 마찬가지였을 거임.
8.
이와중에 스카이민혁이 참전하며 릴리즈한 곡이 일품임.
9.
“도망가지 않고 보여줘 / 성숙한 우리 문화 / 리스너도 포함 / 보여주자 우리만의 8마일 영화 / 우리나라의 5만명의 래퍼들 / 흔들리지 말고 자기 꽃을 피워줘 / 다시 만날 때는 / 모든 사람들이 우릴 존중하게 만들자”
10.
몇 번째 말하지만 뷰티풀너드가 어디까지 의도(상상)했는지는 모름. 하지만 한국힙합에 거대한 전환이 될 수도 있는 계기를 던졌음. 아니, 스스로 계기가 됐음. 대중들의 반응을 등에 업고.
11.
더콰이엇이 그랬음. “스타가 안 나온다는 것은 이 시대가 그걸 안 원한다는 거”라고. 근데 최근 한국 힙합에서 등장한 새로운 스타가 엉뚱하게 맨스티어라는 건 모두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임.
12.
나 힙합 진짜 좋아함. 뭐 엄청난 하드코어 팬은 아니지만 적어도 좋아하는 음악을 장르로 꼽으면 늘 힙합임. 그것도 한국 힙합. 한국 힙합이 이번 기회를 잘 살려서 더 나아지면 좋겠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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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트레바리 [요즘이슈-커뮤니티] 클럽을 마무리했다. 한 시즌만에 끝낼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예상과 달랐던 점도 있었고 파트너로서 미흡하기도 했다. 때론 혼자 읽어야 더 좋은 책 혹은 그런 시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배우는 기회였다. 충분한 내공이 쌓이면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는 날도 다시 오겠지.
여러 사람이 떠오른다. 같이 모임했던 멤버들, 모임 끌어줬던 파트너와 클럽장들, 그 경험으로 취업한 문토에서 만난 동료들, 거기서 섭외한 리더들, 기어코(?) 트레바리로 이직해 함께 일한 동료들, 훌륭한 클럽장들. 지금도 연락하는 혹은 인스타로 접하는 또는 소식이 끊긴 사람들. 와. 진짜 많은 사람이 있었다.
5년 전에는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사실은 인천 부평)에 살면서 이러다간 외로워서 죽겠다 싶었다. 주말마다 대전으로 김천으로 다녔다. 앞으로 어떡하냐 걱정했다. 트레바리는 그런 내게 돌파구가 됐다. 적어도 정병연의 외로움만큼은 이 회사가 기가 막히게 풀어낸 것이다. 오랫동안 신나게 했다. 트레바리 화이팅!
최근엔 글쓰기 모임 ‘다함께 글쓰계’에 참여 중이다. 진짜 오랜만에 기획자나 운영자가 아니라 순수 멤버로. 일정 때문에 첫 모임을 못 갔다. 아마 마지막 모임도 못 갈 거 같다. 어쨌건 두 번째 모임을 마칠 때 이렇게 말했다. “아, 모임에 대한 책임감을 이렇게 낮춘 채로 하니까 재밌네요. 역시 소비자가 최고야.”
재밌는 건 ’다함께 글쓰계‘는 문토에 다닐 때 만든 모임이라는 점이다(재미없나?)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지금 운영진이 당시의 멤버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3년을 돌아 바뀐 처지에 놓인 셈(이건 재밌지 않나?). 역시 세상 일은 모르고 사람들한텐 잘해야 된다. 음...어쩌면 그게 커뮤니티의 본질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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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5년 전 첫 출근을 하루 앞둔 그 날은 월요일이었다. 내 자취방은 회사로부터 편도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곳에 있었다. 동선과 시간을 체크할 겸 아침에 집을 나섰다. 회사 앞에 도착하니 딱 출근 시간. 내일부터는 저 건물로 들어가야 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흠. 첫 날엔 좀 일찍 와야겠지? 내일은 20분 정도 빨리 나서야겠다.
별 생각없이 들어갔던 첫 회사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좋은 경험을 하고 재밌는 관계를 쌓았다. 단지 신입이었다는 이유를 제외하고서라도 내 커리어의 가장 보잘 것 없는 시절이었지만, 그동안의 커리어가 모조리 다 거기서 시작됐다는 것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다. 여전히 뚝딱거리지만 그럭저럭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이 됐으니 참 다행이다.
한때는 지하철역 이름만 들어도 거기까지 가는 데 대충 얼마나 걸릴지 가늠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는데, 이젠 내가 탄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이쪽으로 가면 어느 도로와 만나고 저쪽으로 가면 어떤 동네가 나오는지 머릿속에 그려진다. 물론 여전히 낯선 곳이 많지만 이정도면 서울에도 나름 적응한 듯해서 뿌듯. 5년 전 생각하면 신기하다. 이게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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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불광동 쭈꾸미는 몇 달 전에 개업한 식당이다. 원형 테이블 다섯 개가 간신히 들어가는 규모로 사장님이 혼자 운영하신다. 그 자리에는 원래 고깃집이 있었다. 지나다니면서 얼핏 봤을 때 크게 잘 되진 않았던 것 같다. 불광동 쭈꾸미는 그 집이 폐업하고 얼마 뒤에 들어섰다. 식당 시설이야 적당히 값을 치르고 물려받으면 됐을 테니 간판만 바꿔 달면 바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엔 그저 그런 동네 식당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막연하게 ’여기도 오래 가진 못하겠지‘ 여겼던 게 전부였다. 어느 날에는 가게 문에 ’평일 점심 특선 개시‘라는 문구가 프린트 된 종이가 붙은 걸 봤다. 그래. 식당이 수익을 내려면 점심 장사는 기본이지. 딱 그정도 생각하고 지나갔다. 번화가는커녕 유동인구가 많지도 않은 오래된 주택가에서 평범한 식당이 눈에 띄긴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언젠가부터 식당 앞을 지나가며 슬쩍 내부를 들여다볼 때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아닌가. 물론 북적여봤자 테이블 다섯 개지만, ’풀캐파‘ 아닌가.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을 쉴 새 없이 돌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들 아실 테다. 이 작은 동네에서 이정도 흥행을 이렇게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거라면 정착에 성공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제야 궁금증이 생겼다.
예전에 친구가 불광천에서 가장 좋아하는 카페를 소개해줬다.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커피가 맛있고 사장님이 친절하기 때문이란다. 가게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 불광동 쭈꾸미도 그랬다. 음식이 맛있고 사장님이 친절했다. 아무래도 주꾸미란 맵게 먹는 게 보통이라 맵찔이인 내가 그 맛을 온전히 즐기진 못하겠지만 순한맛도 충분히 맛있었다. 이름만 순한맛이 아니라 진짜 순했는데도.
주꾸미 자체를 자주 찾진 않기 때문에 불광동 쭈꾸미에 몇 번이나 다시 갈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동네에 살면서 주꾸미가 생각난다면 굳이 다른 선택지를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음식이 맛있고 사장님이 친절한 식당이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가 표준어라는 사실을 사장님은 알고 계실까? 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떨까. 맛있고 친절하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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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틈틈이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경험을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생일은 매우 뜻깊은 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인공. 그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유의미하다. 1월에 태어난 덕분에 이 날 받은 마음들을 쪼개 먹으며 한 해를 나곤 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일마다 은혜 갚는 심정으로 축하를 건넸다.
그런데 축하를 잘 건네고 있나?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적당한 금액의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었다. 축하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그냥 내가 들일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산 것에 불과했다. 생일을 확인하고 선물을 골라서 보내는 게 전부 카톡 안에서 기계적으로 이뤄졌다.
예전에는 꽤 긴 메시지로 내 마음을 양껏 담아 전했다.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좀 낯부끄러울 수 있지만, 그의 생일이라는 것은 그런 단어들을 건네기에 좋은 핑계였다. 또 그 메시지는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해서 스스로 만족한 메시지인 경우 저장해두기도 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저장한 것은...2018년이다.
안 주려면 안 받기부터 해야 한다. 선물 안 받겠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건 좀 나대는(?) 일인 듯해 피했다(사실 애초에 그렇게 많이 받지도 않는다ㅋㅋ).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틈틈이 여러 사람에게 축하를 받는 단 하루의 경험이 매우 중독적이다. 카톡에서 내 생일 알림을 지우는 선택지에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지웠다. 해린이가 누구보다 꽉 채워서 축하해주니 용기가 났다. 이번 기회에 올해부터는 다시 예전처럼 생일 축하를 해볼까 싶다. 다사다난했던 지난해 미처 생일을 챙기지 못한 사람이 많다. 치킨이나 커피가 아니라 내 마음을 잘 표현하기 위해 충분히 들인 시간과 노력을 선물할 것이다. 반품은?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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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약 30년 동안 제주도에 네 번 갔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 가족여행 두 번, 숙소에서 친구들과 논 기억만 남은 수학여행 한 번, 면접에서 다 떨어지고 홀로 훌쩍 떠난 도피성 여행 한 번.
해린이랑 제주도에 다녀온 건 벌써 다섯 번이다. 오래된 의미부여 중독자로서 이건 분명 특기할 만한 일이다. 지난 30년을 따라잡는 데 고작 2년 걸렸다. 놀라워라. 이러다 제주도 가서 살겠어,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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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삶의 어느 시기마다 스페셜땡쓰투의 주인공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은 고이지 않고 흘러가지. 한때의 주인공은 그렇게 점차 조연의 자리로 옮겨간다.
자리가 중요한가. 지금도 여전히 머물러 준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내 삶의 한 시절에 대한 증인들. 덕분에 나의 기억은 흐려지지 않고 매번 또렷해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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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미결 상태를 못 견디는 편이다. 카드 결제일이 되기 전에 굳이 즉시결제를 해버리는 사람. 분명 기다리는 것이 이득인 상황에서도 기회비용을 감수하며 애써 종결시킨다. 그래. 눈 앞의 마시멜로는 먹어치워야 하는 인간인 것이다. 아예 먹지 않을 거면 몰라도.
크리스마스 다음날부터 새해 첫 날에 이르는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는 늘 고민이었다. 한 해가 끝난 거나 다름없지만 엄밀히 말하면 끝난 것은 아닌, 12월 시작과 동시에 새해 준비를 했던 탓에 벌써 새해인 것 같지만 실제로 새해는 아닌. 애매한 시간. 미결의 시간.
이번엔 제주에 머물렀다. 26일 밤에 도착했고 1일 아침에 돌아가는 일정이다. 이 여행이 끝나면 곧바로 새해. 덕분에 나는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올해도 끝났구나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꼬박 일주일 묵힌 연말 인사인 셈이다. 해피뉴이어.
한두 살 먹을수록 나보다 주변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 많다는 것. 그럼에도 계속해서 친구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더더욱 고맙다. 내년에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을까? 내가 잘해야지. 다들 행운 가득한 한 해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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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기록은 아예 남기지 않는 편이 사실은 스스로에게도 이롭다. 왜냐면 보통 그런 기록은 자기도 보기 싫거나 보면 힘든 것이거든.
그럼에도 '기록하는 행위'의 효험을 믿는다면 훗날 그 자신도 다시 볼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 병 속에 넣어 강이나 바다에 던진다든지(이건 환경 파괴라 보류) 풍선에 매달아 날려보낸다든지(이건 국가안보 위협이니 보류) 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