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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적 일상
일할 때 '~하지 말 것' 리스트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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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때 지키려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하지 말 것’이라는 부정어 형태를 취한다. 왜냐면 그 기준을 넘겼다고 성과로 여기진 않기 때문이다. 취미로 마라톤을 하는 사람에게 풀코스 완주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지만 프로 마라토너에겐 그렇지 않은 것과 비슷하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해냈다’며 소소한 성취감을 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그런 기준은 대개 지적 당한 상황을 숙고한 끝에 만들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지적이 그처럼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적 당하는 사람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지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주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여러 고민과 생각을 하고 많은 경험을 쌓은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은 운좋게 주어지는 환경에 가깝다.
한때는 내가 잘하는 걸 대신 발견해 이끌어주는 리더를 좋은 리더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르다. 좋은 리더란 내가 못 한 것인지 안 한 것인지 세심히 살피고 피드백 주는 리더다. 의외로 본인은 그걸 알기 어렵다. 플러스를 만들어 주기보단 마이너스를 없애주는 사람. 그렇게 다진 기반 위에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게 내 일이고 그게 소위 말하는 성장이었다.
피드백 수용성이 성장의 척도라고 한다면 나의 성장 곡선은 완만할 것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피드백 수용성이 높은 편은 아닌 듯하다. 좋게 말하면 내가 한 일에 대한 평가와 나라는 인간에 대한 평가를 잘 나누어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남의 말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한 번 찔리면 깊숙이 찔린다. 그렇게 생성된 기준들이다.
퀄리티 챙기느라 데드라인 놓치지 말 것
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첫 시간에 교수는 조를 이뤄서 간단한 글을 한 편 작성해 내라고 했다. 본 평가 때 빠진 점수를 보충할 수 있는 특별 점수를 걸었다. 우리 조가 어떤 글을 써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사실은 완성되지 않은 글을 제출했다는 것과 시간 내에 제출한 팀이 우리뿐이었다는 것. "그거 몇 초, 몇 분 더한다고 눈에 띄게 퀄리티가 높아지지도 않는다. 여러분은 지금 납기 맞추는 것부터 익혀야 할 레벨이다."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퀄리티보다 데드라인. 당연히 둘 다 챙겨야겠지만 내겐 데드라인을 가장 중요했다. 물론 이런 저런 경험을 쌓으며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하고 나자 퀄리티를 챙기기 위해 의사결정권자와 데드라인을 ‘협의’하는 선택지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데드라인 내에 처리한다는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앞으로도 그렇게 일할 작정이다. 최소한 내가 의사결정권자가 돼 데드라인을 지정하는 역할을 맡을 때까지는 말이다.
메일을 메시지처럼 쓰지 말 것
섭외나 제안이 많은 업무 특성상 먼저 메일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답장을 못 받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온갖 불안과 자조에 휩싸인다. ‘내가 제안한 내용이 흥미를 돋구지 못 했나?’, ‘내용을 쉽게 풀지 않아서 읽다가 꺼버렸나?’,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가 별로였나?’ 등등등. “나라면 이렇게 안 보냈을 것 같다”는 피드백을 듣거나 ‘메일 쓰는 법’을 다룬 책을 받았을 때의 절망감이란. 첫 직장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축적된 모든 불안과 자조가 업데이트의 동력이 됐다.
지금도 많은 메일을 뜯어본다. 형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목은 어떻게 쓰는지, 인사는 어떻게 하며 수신자를 뭐라고 부르는지, 스몰토크는 어느 관계에서 하는지, 문단은 어디서 나눌지, 어떤 순서로 내용을 짤지, 마무리 인사는 뭐라고 할지, 심지어 ‘감사합니다.’와 ‘정병연 드림.’ 사이 한 줄을 띄울지. 메일은 단 한 명의 독자를 위한 글. 유일한 타깃의 액션을 못 끌어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받는 이에겐 그 메일이 단순 메시지가 아닌 나의 포트폴리오라는 생각을 늘 한다.
의사결정권자에게 주관식으로 묻지 말 것
“'어떻게 할까요?’로 끝내지 말고 대안도 같이 가져오면 제가 의사결정하기 편합니다.” 팀장에게 동일한 피드백을 두 번 듣고 나서 겨우 습관이 됐다. 마침 바로 앞자리에 앉은 동료가 이 습관을 잘 형성해 두고 있었다. 정확히 내가 들었던 피드백 그대로 실천했다. 지금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면 그 동료가 문제 상황을 팀장에게 공유하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금 이런 문제가 생겼다. 제 생각에 이렇게 대응하는 방법과 저렇게 대응하는 방법이 있다. 이유는 어쩌고저쩌고.”
작은 조직에서는 의사결정권자도 나와 같은 실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니 나 또한 함께 뛰는 동료로서 그가 의사결정에 들이는 수고를 덜어주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의사결정권자를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의 결정을 바탕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남의 일을 분담해주는 게 결국 나의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하는 것과 같은 셈. 그렇게 발생하는 생산성은 우리의 것이다. 이게 진정한 의미의 ‘수평적’ 조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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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삼총사는 없다
유딩 때는 어쩐지 친구들이 좀 시시하게 느껴졌다. 아마 빠른 년생을 향한 갖은 구박과 핍박에 시달리며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똑같이 여서 일곱 살에 불과한 애들이 시도 때도 없이 형, 누나라고 부르라며 약을 올리니 열이 받아, 안 받아? 아, 진짜 유치하게 왜 저래. 물론 유딩이 유치한 걸 이상하게 여길 이유는 없다. 그래도 그때의 나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거의 확실할 것이다) 유치원에 친구가 별로 없었다. 파랑반 선생님이 제일 친한 친구였다. ​ 그나마 어울렸던 친구가 둘 있다. 걔들과는 주로 ‘지구용사 벡터맨’ 놀이를 했다. 유치원 뒷마당에서 우리는 영웅처럼 활약했다. 난 ‘벡터맨 베어’를 맡았다. 사실 난 베어를 별로 안 좋아했다. 변신 전 베어의 꼬불머리가 되게 별로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세 번째로 소개된다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대장이나 다름없는 ‘벡터맨 타이거’나 2인자 특유의 멋짐이 폭발하는 ‘벡터맨 이글’을 좋아했지만, 그건 다른 둘의 역할이었다. 은근히 짜증났다. 어린이에게 삼총사 중 3번이란 화룡점정보단 쫄병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 십 년쯤 지나 중딩이 됐지만 나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았다. 뚱뚱해서 뚱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딱히 유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쯤 ‘캬캬캬’ 하고 웃어 넘길 줄 아는 아이로 자랐다.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가 스펀지밥 ‘뚱이’인 이유도 그 별명 때문이다. 어쨌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 교실, 저 교실 쏘다니며 다른 반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보지 않아도 안다. 생활기록부엔 이렇게 쓰여 있을 것이다. “교우관계가 원만함.” 내 사춘기는 어쩌면 유딩 때 왔다 간 게 아닐까 싶다. ​ 그러던 어느 날 시험 공부를 하러 갔던 시립 도서관에서 우연히 타이거와 이글을 만났다. 우리는 유치원을 졸업하며 각기 다른 초등학교로 진학했고 당연히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타이거와 이글은 같은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 6년 만에 다시 만난 이들은 함께 시험 공부를 (핑계로 밤 늦게까지 놀러) 다닐 정도로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걔들은 반가워하며 내 핸드폰 번호를 받아갔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가끔 상상한다. 나도 타이거와 이글이 다녔던 중학교에 배정 받았다면 유년기의 우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그 관계에서 내가 얻어갈 수 있었을 만한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봤다. 즐거움, 위로, 공감, 의지 같은 것들. 그런데 꼭 마지막에는 찝찝한 기분이 남았다. 나도 타이거나 이글 역할을 맡고 싶었지만 삼총사가 되려면 베어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다. 나와 나머지 둘 사이의 은근한 거리감도. 그 관계는 오히려 아득한 유년기에만 머물러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 그러니까 아무래도 셋은 좀 불안하다. 혼자는 확실히 외롭고 둘은 그보다 좀 덜 외롭지만 셋은 경우의 수를 갖기 때문이다. 온전히 셋으로 존재하거나, 셋 중 둘에 속하거나, 셋 중 하나에 속하거나. 온전한 셋은 지나치게 이상적이니까 패스. 먼저 셋 중 하나일 때를 보자. 이때는 확실히 외롭다. 혼자서 하나일 때보다 더 외롭다. 왜냐면 인간은 보통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 때문에 괴로워지니까. '희망고문'이라는 단어가 그 모순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널리 쓰이는 이유가 있지. 셋 중 하나의 입장에서 나머지 둘을 볼 때 느껴지는 무력함을 아는지? ​ 셋 중 둘이 마냥 편하단 건 아니다. 그냥 둘이면 몰라도 셋 중 둘이 되면 나머지 하나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신경 쓰지 않는 순간 그냥 둘이 된다). 비슷한 맥락으로 나는 해리포터와 헤르미온느와 론의 관계를 온전한 셋으로 보는 시각에 조심스레 반론을 제기한다. 셋 중 둘이 부부인데,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관계의 기울기에 따라 해리가 난처해질 수도 있고(누구 편을 들지?), 외로워질 수도 있다(그래도 지니가 있으니까). 자, 이제 당신도 ‘이러나 저러나 인간관계에 있어 셋이란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숫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병연
서울과 엄마와 나
90년대 중반 어느 겨울, 서울에서 김천으로 가는 고속버스 한 대는 총 세 번 휴게소에 들렀다. "원래는 한 번만 쉬는 노선인데 네가 하도 찡얼대니까 기사님이 애기 바람 좀 쐬게 하라고 글쎄 세 번이나 쉬었지 뭐니." 엄마는 '정병연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라는 주제가 대화에 오를 때면 언제나 이 얘기부터 꺼냈다. 그 다음에는 아마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를 대신 봐줬던 외할머니가 응급실에 입원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이어질 터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는 그 애기에 한 마디를 더 보태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널 몰라서 그랬던 것 같아." "뭘요?" "넌 멀미도 심하고 더위를 많이 타잖아." "그쵸." "근데 엄마는 멀미는 안 하고 더위보다 추위를 많이 타거든." "그것도 맞죠." "그래서 난 얘가 많이 추운가보다 싶어서 옷도 더 입히고 목도리도 둘러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계속 울길래 아직도 추운가 싶어서 모자도 씌우고 그랬지. 털모자로." "와. 진짜 끔찍하다."
병연
한 번 사는 인생이니까 더 걱정하고 고민할래
“운전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 어느 날,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운전하는 날 보고 이렇게 말했다. “별게 다 대단하대?”라며 웃어넘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 역시 면허를 따기 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처음 도로주행에 나섰을 때 손과 발을 극도의 긴장감이 휘감았었다. 운전을 해보지 않은 나에게, 운전석은 너무나 낯설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면허를 따자마자 ‘뭐, 별거 아니네.’라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인생의 관문이란, 넘고 나서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막상 그 앞에 섰을 땐 절대 넘을 수 없을 것처럼 높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친구 A가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취업 준비에 지친 A는 취준을 그만두고 카페에서 일하며 틈틈이 하고 싶었던 걸 하고,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웠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이런 삶이 좋고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무섭다고 말했다. 사는 것도 재밌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도 너무 좋은데, 그래서 불안하다고. 이것저것 하느라 한 주가 어떻게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지만, 영양가 없이 바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바쁨이 아닌 오직 현재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바쁨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특히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자신을 믿고 있을 부모님이 실망하시게 될까 봐 무섭다고 했다. 자기는 지금 정말 괜찮은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그야말로 답도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왔단다. A의 고민을 듣고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욜로(YOLO)!, 카르페디엠, 지금 네가 즐거운 거면 된 거야… 이런 말들을 위로로 건네면 될까. 평론가 황현산 역시 “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라고 했으니까. 오늘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하루인데, 내일을 빛내기 위해 불안한 오늘을 보내야 할 이유는 없지, 아무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란 보장도 없고. 그러니 현재를 즐기라고 말해주면 되려나.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건넬 수 없었다. A에겐 눈앞에 놓인 관문이 간단히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 아니라 하늘 높이 솟아 있는 벽처럼 보일 테니 말이다. 마치 운전대 앞에서 한껏 긴장했던, 면허를 따기 전의 나처럼. 그러니 A가 맞닥뜨린 벽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것은 사실 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무책임하게 “현재를 즐겨!”라고 말할 수 없었던 거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벽 앞에 서서 A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자신의 삶에 책임감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민하고 걱정하는 건데, 이런 고민과 걱정을 단순히 욜로 같은 말로 쓸 데 없는 취급해버릴 순 없었다. 삶을 온전히 감당하려는 인간이라면 불안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게 현재의 행복을 갉아먹을지라도 말이다. 이런 고민과 걱정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삶의 과정일 테다. 우리는 완벽하게 오늘만 살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 관문 한 관문 통과할 때마다 내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것만큼 이 관문이 높은 벽은 아니었구나, 깨닫는 것뿐. 남들은 욜로라지만, 한 번 밖에 살지 않으니까 나는 좀 더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짜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감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