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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구 저쩌구
인플루언서와 커뮤니티: 존 리비 <당신을 초대합니다>
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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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이중인격이 아닌 이상). 물론 여러 사람이 모였다고 무조건 커뮤니티라고 말하지도 않죠. 그 사람들이 모인 이유, 목적, 방식 등 다양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비로소 커뮤니티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다수의 사람’은 커뮤니티의 필요조건인 셈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커뮤니티는 사람들을 초대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커뮤니티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그들을 데려오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렇게 데려온 이들을 계속 머물게 하려면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요? 그래서 우린 커뮤니티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존 리비의 『당신을 초대합니다』를 읽었습니다. 위 질문들에 대한 가장 모범적인 대답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커뮤니티 기본서로 추천할 만한 책입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인플루언서와 커뮤니티의 관계를 중점으로 리뷰했습니다.
존 리비는 영향력, 인간관계,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행동과학자입니다. 다양한 업계의 리더들을 모은 ‘인플루언서 디너’를 운영했죠. 『당신을 초대합니다』는 그런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책입니다. 사람들을 모으려면 어떤 부분을 건드려야 할지,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각자의 목표 달성을 위해 커뮤니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려줍니다.
아주 솔직히 말하면 이 책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지만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띠지에서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 CEO, 노벨상 수상자, 할리우드 스타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한 저자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은 저와 너무 먼 이야기거든요. ‘그들이 사는 세상’이 뭐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고요. 성공한 사람이 성공을 거머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전하는 성공담은 평범한 제게 매우 제한된 통찰만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아래 대목을 살펴보고 ‘속는 셈 치고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나는 수백 번의 저녁식사에 수천 명의 사람들을 초대했으며, 참석자들에게 서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깊고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또 IT기업에는 개별 커뮤니티를 만들어 주었고, 일반 기업에는 보다 건강한 기업문화를 조성해 주었으며, 스타트업에는 고객들과 의미 있고 지속적인 관계를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세일즈 프로세스를 만들어 주었다. 비영리재단의 경우는 대의에 충실한 후원자 모임을 구성하여 지원했다.
- 존 리비,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하 같은 책)
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진술입니다. 책을 통해 소개하는 것은 특정한 조건을 갖춘 누군가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적당히 응용해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는 얘기죠. 단순히 자기 인맥 자랑하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정작 저에게는 별 도움도 안 될 흰소리만 늘어 놓을 것 같진 않다는 신뢰감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 그는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할 만한 인플루언서들을 네 그룹으로 분류한 다음,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룹이 어딘지 철저히 따져볼 것을 주문합니다. 그들을 만나는 방법이나 유의미한 관계를 맺는 방법은 그 다음 단계의 고민이라는 것이죠.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유명인이나 거물들과 어울리면 멋지고 근사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런 관계는 대부분 당신의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삶의 질을 개선시켜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한 관계를 개발하고 싶다면 마크 저커버그를 알아 봐야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경우엔 학교 학과장이나 교육 지도자 같은 커뮤니티 인플루언서와 사귀는 편이 훨씬 유익하다. 즉, 오피니언 인플루언서나 커뮤니티 인플루언서보다 글로벌 인플루언서를 사귀는 것이 반드시 더 좋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무조건 다른 그룹보다 우위인 그룹은 없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인생과 커리어, 사업체를 위해 당신이 무엇을 원하느냐이다.
존 리비는 인플루언서들을 아래와 같이 나눴습니다.
1.
글로벌 인플루언서 Global Influencers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엘리자베스 여왕, 미국 대통령,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 빌 게이츠, 비욘세 등.
2.
오피니언 인플루언서 Industry Influencers
자신이 속한 업계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있는 사람들. 글로벌 인플루언서와 달리 업계 밖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3.
커뮤니티 인플루언서 Community Influencers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 영향력을 갖는 사람들. 기업의 부사장, 일정한 팬덤을 가진 창작자, 종교인 등 문화적 커뮤니티의 강사 등.
4.
퍼스널 인플루언서 Personal Influecers
우리와 양방향적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의 사람들. 친한 친구, 가족, 직장 동료, 담당 미용사, 트레이너, 학교 선생님 등.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등 SNS 팔로워 숫자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혹은 그 이상에 달하는 팔로워를 보유한 메가 인플루언서부터 수천 명(1K) 단위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까지 다양하죠. 심지어 팔로워 수백 명 단위의 이용자에게도 나노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 방법론적인 접근입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같은 예산을 한 사람에게 몰아 넣을지, 여러 명에게 쪼개 넣을지 선택하는 데 쓰는 기준표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적절한 인플루언서와 함께하는 것에도 마케팅 효과에 대한 기대가 반영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이때 인플루언서는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고 그에 대한 금전적 수익을 받아가는 계약 관계의 일방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인플루언서 역시 커뮤니티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자신이 기여한 만큼 특별한 가치를 얻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커뮤니티가 팬 미팅이나 강연 등과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고요. 당연히 이때의 가치란 비금전적 보상을 뜻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자가 ‘오피니언 인플루언서와 만나는 방법’을 소개한 단락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들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글로벌 인플루언서를 만나기 위한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는 데다가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들 자신이 굉장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특정 업계로 한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깔 있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글로벌 인플루언서보다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오피니언 인플루언서들의 관심을 붙들어 두고 그들을 유인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4가지 속성으로 인심(generosity), 참신함(novelty), 큐레이션(curation), 경외감(awe)을 꼽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심에 대해서는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드 교수의 연구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랜트 교수는 특정 그룹 내에서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기버(giver, 관대한 사람)와 테이커(taker, 받기를 원하는 사람), 매처(matcher, 기버에게는 주고 테이커에게는 안 주는 사람)로 나누고 이들의 성공률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성공적인 사람들’과 ‘가장 성공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기버인 것으로 드러났죠. 왜 그럴까요? 그랜트 교수는 기버가 성공과 실패로 갈리는 지점이 ‘어디에 선을 그을지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있다고 합니다. 헌신하다 헌신짝 되지 말고 자신도 잘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그들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도 챙기는 균형적인 인심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제안입니다. 즉 커뮤니티를 만들고 운영하는 자기 스스로 성공적인 기버가 돼야 한다는 얘기죠. 오피니언 인플루언서를 ‘모시기 위해’ 아낌없이 주기만 하지 말고 그들 또한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인연을 맺으며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거기서 가치를 느끼도록 제안하는 담대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소속감을 느끼며 유대감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종류의 인심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신뢰의 기반을 조성하는 방법이며, 거기에서 사람들은 기대 이상으로 만족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애초부터 기버로서 성공한 오피니언 인플루언서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오피니언 인플루언서도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1/N의 기여를 해야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이나 그로부터 비롯되는 아우라 등을 고려해보면 현실적으로 그의 기여가 1/N에 그칠 가능성은 극히 낮으니까요.
물론 담대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 혹은 기버로서 성공한 사람을 설득하려면 우리에게도 믿을 구석이 필요할 겁니다. 커뮤니티 형식과 주제 및 활동 등에서 느껴지는 참신함,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성할지 결정하는 큐레이션, 모든 경험을 강렬하게 만들어줄 단 한 번의 경외감 등을 고민해야 합니다. 커뮤니티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으로서 철저한 기획이 필요한 영역이죠. 그리고 이것은 인플루언서를 만나고 데려오는 것을 넘어 그들이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사람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일과도 연결됩니다.
커뮤니티 구성원이 될 멤버들을 데려올 때도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인플루언서를 데려 왔다고 일반 멤버들이 절로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국 인플루언서를 커뮤니티가 아니라 단순 마케팅 수단으로 여긴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인플루언서만큼 멤버를 위한 기획도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2부에서 작성해보려고 합니다.
존 리비는 네 가지 유형의 인플루언서 각각의 특징과 이들을 만나는 방법을 설명하는 데 꽤 긴 분량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충분히 실용적인지에 대한 판단은 읽기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무작정 따라하기' 정도는 아니지만 관련된 실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데 쏠쏠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각각의 방법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굳이 대상을 분리해서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엔 글로벌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방법과 오피니언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고, 커뮤니티 인플루언서와 퍼스널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방법이 많은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글로벌&오피니언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방법과 커뮤니티&퍼스널 인플루언서를 만나는 방법은 전체 커뮤니티의 기획 측면에서 통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고요. 저자가 강조하는 내용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보고 응용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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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연
앞으로 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OO로서의 XX'라는 표현을 쓰려면 OO과 XX가 이질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에 오류가 날 수도 있다. 예컨대 누군가 "음식으로서의 김치찌개"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내 되물을 것이다. "그럼 김치찌개가 음식이지, 뭔데?" 마치 음식과 김치찌개가 전혀 다른 부류인 듯 얘기하는 데서 어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쓰임은 보통 이렇다. "음식으로서의 애벌레" 또는 "어린 날 추억으로서의 김치찌개" 딱 봐도 '대체 뭔 소리야?' 궁금해지지 않는가.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떠신지. 하루키는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각 직업에서의 영역 배타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소설가만큼 넓은 마음을 갖고 포용력을 보이는 인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소설 따위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일의 기본적인 양상"일 뿐이라는 변명을 덧붙이면서도 기본적으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기는 태도를 유지한다. ​ 하지만 제목에서 예고하고 있듯 하루키는 소설가를 엄연한 직업으로 분류한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소설가에게는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시각화도 언어화도 안 되는 종류의 것"으로서 직접 겪은 이들만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재능과는 다른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 자신 소설가로 수십 년을 살아온 하루키가 푸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가가 된 계기, 문학상, 오리지낼리티, 소설 쓰는 법, 체력, 학교와 교육, 해외 진출 등에 대한 생각을 덤덤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방점까지 확실히 찍어가며 전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꿈꾸는 이는 물론 소설가가 아닌 일하는 사람 모두가 나름의 통찰을 얻을 수 있게 쓰였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누가 공감하지 못할까. ​ 하루키는 1949년에 태어났다. 68년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71년에 결혼했다. 74년에 개업한 재즈바는 79년 등단하고도 2년 더 운영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데뷔 40주년(2019)을 훌쩍 넘긴 올해에도 새로운 장편소설을 출간한다. 한 인간의 수십 년은 아득한 우주의 시간만큼이나 경이롭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대가의 권위는 시간에서 나온다는 점을 부인할 명분이 없다. 앞으로 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고민했다. 눈앞의 문제 따윈 가소로워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밑줄 그은 문장을 보려면? 아래 박스를 클릭!
병연
널 위한 희생: 증국상 <소년시절의 너>
학교는 시험만 잘 보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엄마는 시험만 잘 보면 우리 인생도 달라질 거라며 기대한다. 우등생인 첸니엔에게 시험으로 가는 길은 양옆에 절벽을 둔 외길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겨도 꾹 참아야만 한다. 시험을 못 보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니까. 반면 시험만 잘 보면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첸니엔이 배운, 평범한 삶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희생뿐이다. 샤오 베이의 삶은 이미 밑바닥이다.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할 수 없기에 목적도 없다. 그런 그에게 첸니엔이라는 목적이 나타난다. 이제 샤오 베이의 목적은 ‘첸니엔의 목적 달성’이 된다. 평범한 삶을 얻으려는 첸니엔을 위해 샤오 베이가 할 수 있는 건 희생뿐이다. 그의 계산으로 그건 해볼 만한 거래다. 왜? 자기 삶은 이미 밑바닥이니까. 뭔가 더 해줄 수 없을 때 인간은 대부분 비슷한 선택을 한다. 내가 가진 전부를 주자. 하지만 첸니엔은 샤오 베이의 전부를 딛고 일어설 만큼 잔인하지 않다. 오히려 샤오 베이의 삶이 더 나아지길 바란다. 사실 첸니엔은 알고 있었을 테다. 시험이라는 관문과 평범한 삶이라는 대가는 허상이었다는 것을. 샤오 베이와 자신의 삶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허상임을 알면서도 단지 매달릴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러나 샤오 베이는 첸니엔이라는 현실에 매달렸다. 그를 보며 첸니엔은 깨달았을 테다. 자신 또한 허상이 아닌 현실에 매달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현실은 다름 아닌 샤오 베이라는 것을. 이제 둘은 상대방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자기 삶이 나아지기 위한 조건으로 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들이 목적 달성을 위해 쓸 수 있는 수단은 희생밖에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게 스스로를 희생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은 상대방이 생각하는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 위한 조건을 해치는 것과 같다. 아직 어린 그들은 이처럼 슬픈 역설을 빠져나갈 방법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것이 역설이라는 것조차 알지 못한 채 위태롭게 전진한다. 바로 앞이 절벽이 아니길 바라면서. 여기까지. 위기를 세팅하는 과정만으로도 사회상 고발이라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을 너무 쉬운 방법으로 풀어냈다는 것과 그렇게 다다른 곳이 뻔한 공익적 결말이라는 점은 다소 아쉽다. 왜 그렇게까지 그들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냐는 말에 "둘은 너무 어리잖아요"라며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해내는 어른의 존재는 차라리 판타지에 가깝지 않은가.
병연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사이먼 쿠퍼 <옥스퍼드 초엘리트>
<옥스퍼드 초엘리트>의 내용을 요약하면 ‘지들끼리 지지고 볶고 난리치더니 결국 사고쳤네’ 정도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표현이 좀 경박한가? 내 한계다. 죄송하다. 다행히 책은 그렇게 쓰이지 않았다. 명확한 문제의식과 고유의 관점, 탄탄한 취재, 잘 훈련된 저널리스트의 깔끔한 문장이라는 여러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훌륭한 논픽션이다. 부제를 같이 보자. 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클리셰 짙은 단어들의 집합에 심드렁하다가도 뭐가 이리 거창한가 싶어 따져보면 책 내용에 충실한 제목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멋진 제목은 카피라이팅의 영역이지만 독서 후에 와 닿는 제목은 한줄평의 영역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를 선호한다. 왠지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다시 한번 읽어보자. 옥스퍼드 초엘리트 -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 저자인 사이먼 쿠퍼는 ‘영국을 지배하는 이너서클’로 ‘옥스퍼드 출신(그 중에서도 일부 그룹)’을 지목하고 그들의 ‘습관, 약점, 그리고 악행’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엘리트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저자인 사이먼 쿠퍼 역시 옥스퍼드 출신이기에 가능했던 저술일 테다. 그나저나 ‘초’는 왜 붙을까? 엘리트가 아니라 초엘리트인 이유 말이다. 그 연유를 설명하기 위한 기나긴 논증이 이 책의 알파요, 오메가다. 조금만 읽어봐도 옥스퍼드 출신이면서 현재 영국의 정치인 혹은 언론인 등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은 시간 인터뷰한 것이 느껴진다. 좀 스포하면 저자는 이들 엘리트들이 엘리트로 추대되는 것이 능력이나 전문성 등과 별 상관없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Chums’다. ‘chum’은 ‘친구’라는 뜻인데 우리가 익히 아는 ‘friend’에 비해 비격식적이고 남성중심적 단어라고 한다. 나는 이쪽이 좀 더 함축적인 제목이고, 그래서 카피라이팅의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어쨌건 ‘Chums’는 영국 사회 지도층이 이권 카르텔 같은 게 아니라 꽤 많은 걸 공유하며 끈적하게 엮여 있는 관계라는 사실을 은근하게 암시한다. ‘그사세’라고나 할까. 사립학교를 나와 옥스퍼드에 입학하고 옥스퍼드 유니언(동아리)에서 활동하다 졸업 후에 정치인 혹은 언론인이 되는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브렉시트’는 당연한 결과다. 이것을 내 식대로 요약한 게 이 글의 맨 첫 부분에 쓴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이 놀라운 점은 그것을 이해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되게 쓰였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독서 경험인 만큼 직접 겪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세한 내용은 생략. 📚 사이먼 쿠퍼 <옥스퍼드 초엘리트> 밑줄 그은 문장을 보려면? 아래 박스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