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OO로서의 XX'라는 표현을 쓰려면 OO과 XX가 이질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통에 오류가 날 수도 있다. 예컨대 누군가 "음식으로서의 김치찌개"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내 되물을 것이다. "그럼 김치찌개가 음식이지, 뭔데?" 마치 음식과 김치찌개가 전혀 다른 부류인 듯 얘기하는 데서 어색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쓰임은 보통 이렇다. "음식으로서의 애벌레" 또는 "어린 날 추억으로서의 김치찌개" 딱 봐도 '대체 뭔 소리야?' 궁금해지지 않는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떠신지. 하루키는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각 직업에서의 영역 배타성이라는 점"에서 보면 "소설가만큼 넓은 마음을 갖고 포용력을 보이는 인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소설 따위 쓰려고 마음만 먹으면 거의 누구라도 쓸 수 있"다고 얘기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일의 기본적인 양상"일 뿐이라는 변명을 덧붙이면서도 기본적으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영역으로 여기는 태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제목에서 예고하고 있듯 하루키는 소설가를 엄연한 직업으로 분류한다. "소설 한두 편을 써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소설을 오래 지속적으로 써내는 것, 소설로 먹고사는 것, 소설가로서 살아남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소설가에게는 "어떤 종류의 '자격' 같은 것이 요구"되는데, 그것은 "시각화도 언어화도 안 되는 종류의 것"으로서 직접 겪은 이들만이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재능과는 다른 좀 더 크고 영속적인 자질.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그 자신 소설가로 수십 년을 살아온 하루키가 푸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가가 된 계기, 문학상, 오리지낼리티, 소설 쓰는 법, 체력, 학교와 교육, 해외 진출 등에 대한 생각을 덤덤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방점까지 확실히 찍어가며 전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꿈꾸는 이는 물론 소설가가 아닌 일하는 사람 모두가 나름의 통찰을 얻을 수 있게 쓰였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오랫동안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에 어느 누가 공감하지 못할까. 하루키는 1949년에 태어났다. 68년에 대학교에 입학했고 71년에 결혼했다. 74년에 개업한 재즈바는 79년 등단하고도 2년 더 운영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으며 데뷔 40주년(2019)을 훌쩍 넘긴 올해에도 새로운 장편소설을 출간한다. 한 인간의 수십 년은 아득한 우주의 시간만큼이나 경이롭다. 이 책을 읽으며 느꼈다. 대가의 권위는 시간에서 나온다는 점을 부인할 명분이 없다. 앞으로 난 어떤 시간을 쌓아갈지 고민했다. 눈앞의 문제 따윈 가소로워졌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밑줄 그은 문장을 보려면? 아래 박스를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