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주변의 많은 창작자 친구들은 오프라인 모임을 열 때마다 만족도는 늘 최고였지만, 결과는 항상 적자였다. 그래서 이런 질문이 생겼다. 이 사람들이 계속 사람을 만나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객과 운영을 대신해줄 수는 없을까? 그 질문은 자연스럽게, 대학교 복도에서 봤던 각기 다른 이름의 동아리실들을 떠올리게 했다. 사진, 문학, 영화, 밴드, 연극 등 누군가의 '성장'을 내세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람을 모으던 커뮤니티들. 전공 수업이 끝나고 찾던 편안한 동아리방. 당시 있던 모임들은 대부분 강남과 비즈니스 중심이었고,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어서 나는 그 반대의 장면을 상상했던 것 같고, 그 상상이 지금의 넷플연가의 가장 초기 형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