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창업기 - 넷플연가, 동행

AI 시대, 사람들이 연결되는 더 나은 방식을 찾고 글로벌 프로덕트를 만드는 목표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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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만든 지 10년, 함께 버틴 공동창업자에게 쓰는 편지
병만님, 10년 후 남아있는 스타트업은 10개 중 1개 정도라고 합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냈고, 의미 있는 매출도 내고 있고, 더 확장 가능한 모델도 준비되었고, 유의미한 카테고리까지 선점한- 앞으로 상승할 일이 더 많이 남은 회사를 만들었고, 또 망하지 않게 해왔으니 이 정도면 저희, 잘 한거 맞죠? 저희는 전생에 부부였거나, 전쟁 때문에 친해지지 못한 적군이었을까요? 농담입니다. 제가 잘 못하는 것을 병만님이 가지고 있고, 병만님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제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작되었고 지금도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전혀 다른 사람인데,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중요한 가치관이 비슷해서라고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저도 이런 관계는 처음이라, 나중에 이름 남는 그런 관계가 되도록 조금 더 노력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병만님을 '지난 십년간 가장 많이 본 사람'을 넘어 '가장 많이 신경 쓴 사람' 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경 쓴다는 말이 좋아한다는 말의 입구'라는 한 일본 가게의 유명한 카피를 빌리자면, 저는 병만님이 저와 같이한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해서 책임감을 가졌고, 그래서 망하지 않게 하려고 더 움직였던 것 같아요. 세븐픽쳐스, 넷플연가, 동행, 텐트, 버킷리스트 클럽, 문학자판기, 놐놐, 노션 이력서 소개팅 모두 병만님과 <팀을 유지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과 <어쩌다 제가 잘할 수 있겠다 생각한 기회의 영역> 그 사이에서 간절히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너무 늦어지지 않아 아직 함께할 수 있는 것 같아 참 다행입니다. 기다리고 버텨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십 년은 뿌린 씨앗을 거두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잘하는 팀들보다 더 잘하는 팀이 되고, 수십 년 이상 살아남아 누군가의 일상이 되는 고유한 브랜드가 되고, 고생의 결과로 운이 따라 돈도 많이 벌게 되고, 일은 계속하더라도 더 우리의 호흡대로 할 수 있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었으면 합니다. 믿어온 만큼,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쳤다면, 이제는 숨을 조금 고를 수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한 번 위대해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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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수영가기 : 재능 없는 사람이 확률을 높이는 법
내 첫 직업은 수영 선수였다. 8년 정도 했고, '놀토(노는 토요일)'가 있던 시절이라 주6일 팀과 새벽, 웨이트, 오후 수영을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새벽 여섯 시부터 하루 12시간 가까이 운동하는 일상이었다. 그런데 일요일이면 아빠를 따라 다시 수영장에 갔다. 아빠가 부탁해서 데려온 개인 코치도 가끔 있었고, 나는 청소년 수련관 같은 곳에서 혼자 정해진 훈련량을 채웠다. 토요일도 쉬지 않는데 일요일까지 수영장에 가야 한다는 게 별로 좋지 않았다. 어리기도 했고. 그래서 아빠와 자주 싸웠다. 돌아오는 길에 자주 햄버거를 사줬는데, 이게 꽤 나를 설득하는데 효과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매 주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8년짜리, 일종의 실험이었다. 대구 화원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다지 신체적으로 탁월하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 전국 1–2등을 하는 선수가 됐다. 과정에 대한 자부심은 있지만 결과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수영처럼 인기가 적은 종목은 아시아나 세계권을 넘보지 않는 이상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걸 알아서 8년을 하고도 그만뒀고, 지금은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당시에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기도 하고 어리기도 해서, 그 과정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회고해보면 두 가지 질문이 남는다. '토요일에 수영가기' 같은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아빠는 왜 나에게 그렇게까지 했을까 사실 9년 동안 그렇게 수영을 했지만 남은 건 나만 아는 메달뿐이다. 그럼 그 시간이 의미 없었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이런 것들을 배웠다. 지루한 왕복 훈련을 8년 동안 반복하는 일 같은 것을 매일 하며 한계를 시험하는 일 그 시간을 버티면서 했던 생각들 재능 없는 사람이 나중에 성과를 만드는 방식 그 때, 다른 사람들도 내가 선천적인 재능이 별로 없으니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았고, 나 자신도 사실 별로 안 믿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8년이란 시간을 꼬박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신기하게도 과정이 충실하면, 시간이 길어질지 몰라도 결과가 따라오는 경험을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사실 상관이 없었고, 그에 반해 그런 경험 전후로 개인은 내적으로 크게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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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동안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스타트업이 꿈꾸는 미래>
5년 내내 망했다 첫 직장이었던 아산나눔재단에서 1년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창업한지 1-2개월만에 프라이머에서 시드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한양대와 숭실대, 연세대에서 연달아 창업 대회에서 수상을 했으니 창업에 대한 꿈이 크게 없었던 나도 '혹시 재능이 있을지도?'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당연하지만 아주 큰 착각이었다. 두 개의 서비스(전시 공간 공유 중개 서비스, 창작 분야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를 3-4년에 걸쳐 말아먹고, 생활비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문학자판기는 도서관과 공공기관에 조금씩 팔리긴 했지만 그걸로는 스타트업이 마땅히 그려야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었다. 실행력이 좋은 것과, 사업을 잘하는 일은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나는 그렇게 내 창업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것 같았고 (심지어 나조차도) 5년 가까이 거의 매일 12시간 이상 일했지만, 사업이 넘어야 할 어떤 임계점을 넘기진 못했다. 되돌아보면, 이 한 문장을 이해하는 데 5년이 걸린 것 같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일이 사업이다. 내가 원하는 것 말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돈을 내는 세상이 오다니 패배감과 초연함이 뒤섞인 채로, 평소처럼 퇴근하고 자기 전 '요즘 꽤 핫하다'는 '넷플릭스'를 처음 켰다. 그게 2020년 무렵이었다. 새벽 3시까지 <블랙 미러>를 정주행하고 나서 두가지 감정이 남았다. 하나는, 이런 콘텐츠를 방구석에서 마음껏 볼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경이로움. 다른 하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외로움과 불안함이었다. 희망은 크지 않고, 무기력에 익숙해진 채 어쩌면 외로움마저 숨기며 '퇴근 후 혼자 넷플릭스 혼자 보다가 잠드는' 이 넷플릭스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참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넷플릭스 보고 나서, 이야기하면서 친구도 만들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마침, 2020년 전후로 소셜 살롱과 각종 모임 서비스들이 성황이었다. 몇몇 커뮤니티 서비스들은 몇십억 원 단위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신기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데, 몇십만 원의 돈을 내는 세상이 왔다는게. 이미 시장에는 앞서간 커뮤니티들이 수십 개는 있어 보였다. 사업으로 보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미 몇 개의 서비스를 함께 망친 동료에게 다시 해보자고 말하기엔 솔직히 민망했다. 그래서 일단, 혼자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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