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12월 31일에 인스타에 '사진을 가장 안 찍은 해였는데, 그럴수록 더 소중한 순간들만 사진첩에 남아 있는게 우습다'고 썼었는데 올해는 사진도 대충대충 많이 찍고 사람들도 많이 만난 해였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예전의 나는 뭐가 그리 못마땅한게 많고 힘들었나 싶다. (지금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나라는 인간을 이루는 생각의 틀이라는 게 있다면 올해 가장 달라진 것은...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고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의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을 했을 때 비로소 자립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수많은 점들이 이어지듯이 지금의 나는 수많은 의존들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 확고해진 생각은... 그냥 지금 눈앞의 문제들을 최선을 다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누군가는 눈앞의 문제에 급급해선 안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멀리 앞을 내다볼 수 있는 훌륭한 인간이 아니기에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결국 눈앞의 문제에 급급하는 것이다. 그렇게 뭐라도 하다 보면 조금씩 앞으로 가고, 친구나 동료들의 신뢰 내지는 동정을 얻게 되고, 그 크레딧으로 더 갈 수 있게 되는 게 결국 살아가는 것 아닌가 한다. 올해의 달리기 가장 꾸준히 달린 한해였다. 처음으로 풀코스 완주도 했다. 특별히 어려운 부상도 없었다. 더 빨리/더 오래/더 많이 뛰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올해는 정말 ‘그냥’ 뛰었다. 뛰는 것 자체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6월에 부상은 아니고 장염+위염을 크게 앓았는데 그때 제외하고는 아침마다 별 일 없으면 나가서 뛰었다. 뛰는 게 그냥 하는 행위, 일상이 되니 뛸 때마다 스토리에 인증한다는 이상한 강박도 사라졌다. 뛰기 위해 일부러 더 일찍 일어나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차피 3k~5k 정도 15분~30분 정도 뛰는 정도라 그냥 망설임이나 잔동작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뛸 시간은 충분했다. 아침 달리기를 시작한 초반 2~3개월에는 출근 후 오전 시간 컨디션이 부쩍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 상태에 몸이 금방 적응 되어 지금은 뛰었을 때 좋다는 느낌보다 뛰지 않은 날 뭔가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든다. 다시 말하면 뛰었을 때 좋아진다는 느낌보다는 나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느낌이 더 크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올해 들어 달리기는 나에게 일종의 영적 행위 같은 것이 되었다. 독실한 신자가 아침에 기도를 올리듯 그냥 뛰는 거다. 종교는 잘 모르지만 매일 기도하는 사람이 매일 다른 뭔가를 바라고 기도하진 않을 것 같은데(아닌가...) 내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달리는 행위 자체로 매일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한다기 보다 그냥 하는 거다. 그게 내 마음이 더 편하니까. 그래서 얼마나 더 빨리/오래/많이 뛰는지는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냥 뛰었나/안 뛰었나만 의미가 있다. 올해 가장 좋았던 러닝 코스는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따라 송정해수욕장까지 갔다 돌아오는 10k 코스다. 이날 8월 17일이어서 정말 매우... 개같이... 더웠는데 그래도 새벽에 일어나서 뛴 보람이 있을 정도로 좋았고, 11월 지스타 출장가서도 새 회사 동료인 지만님과 같은 코스를 한번 더 뛰었다. (그만큼 좋았다) 올해의 독서 올해 비교적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꼼꼼하게 씹어 읽는 편이 아니라서 사실 읽고도 금방 휘발되어 버리는데, 그게 좀 아깝게 느껴져서 대충 뭘 읽었는지 적어두기라도 하자 싶어서 올해 읽은 책들은 노션에 기록했다. 그래서 더 많이 읽은 것처럼 느낀 것일 수도 있다. 판교로 출근하는 동안 지하철에서, 퇴근 후 스마트폰을 보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는데 그것의 산출물일 수도 있겠고... 사실 위의 리스트만 보더라도 목적이나 방향 없는 책 읽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하반기 부터는 하루키를 많이 읽었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하면 내심 하루키지 않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읽은 책이 별로 없었다는 걸 깨달아서다. 부모님 집에 가서 고등학교때 읽던 하루키 책들도 다시 가져와서 읽었다. 이게 이런 내용이었다고?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노르웨이의 숲(구. 상실의 시대)>도 정말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기억속에서 편집된 부분들이 많았다. 노션 문서를 펼쳐보면 간단한 감상을 적어두는데... 진짜 '감상'일 뿐이다. 책을 읽는다고 해서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실존적인 반례가 나다(...) 올해 안에 하루키 저서들 다 읽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진 못했다. 그래도 장편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정도만 남았다. 하나하나 읽어가며 진짜 지독하게 꾸준한 인간이고 위대한 작가라는 걸 새삼 느꼈다. (책을 정말 꾸준히 많이 내는데... 이렇게 좋다니...) 올해 중요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이정표가 된 책은 조수용님의 <일의 감각>이었다. 예전에 쓴 글의 일부를 가져왔는데... 일하면서 2, 3 항목이 침해받거나, 내가 잘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면 빠르게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TMI지만 전 직장 대표님이 이 책을 아주 좋아하셨는데, 나는 재직 기간 내내 2.를 느껴본 적이 없었고, 3.의 이유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올해의 선택 아무래도 이직이 아닐까 한다. 처음 판교를 떠나고 싶다 했을 때 친구들에게서 도파민 중독자 취급을 받았었는데...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전 직장이 몇가지만 잘 눈감거나 견디면 몸만 왔다갔다 하면서 원화를 채굴할 수 있는 곳이었고, 모르는 사람들이나 어른들에게 여기 다닌다고 하면 회사 이름을 되묻지 않고 다들 그런가보다 하는 훌륭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그런 곳만 다녀본 분들은 이게 얼마나 큰 체감인지 모르시겠지만... 나는 사실 그런 직장을 가져본 게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