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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쓰는 일기

연휴 때 한 2가지 생각

류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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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멋진 공간에 대한 확고한 생각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케이비에스>라는 카페였다. 달성공원과 서문시장이라는 오래된 명소 근처에 있는 재즈를 들을 수 있는 카페라는 것 정도만 알고 도착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 근처 길은 알아보기 어려웠고 주소를 자세히 보니 아파트 상가에 입주해 있는 카페였기 때문이다. 상가 안쪽을 뒤지다 길가에 간판 없는 카페를 발견했다. '여긴가보네' 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밖으로 나와 말을 건넨다.
"대화 없이 음악 듣는 음악감상실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자세히 보니 어닝에 작게 적혀 있는 KBS라는 상호. 대화 없는 음악감상실이라니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바 테이블에 3자리, 바를 바라보고 앉을 수 있는 2자리, 마주 보고 앉을 수 있는 2자리가 2개로 넓진 않았다. 다행히 바 자리가 비어 바에 앉았다. 사장님은 바에서 연신 바쁘게 움직였다. 오디오테크니카 턴테이블이랑 작은 스테레오 스피커 한 세트에서 굉장히 좋은 소리가 났다. 커피와 호지차를 주문하고 음악에 집중했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사장님은 수전에서 나는 물 소리 조차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목감기 증세가 점점 심상치 않아지는 가운데 3시간을 운전해서 온 피로가 소리에 씻기는 기분이었다. 커피도 좋았고 음악도 좋았다. 마침 가져간 책도 미국 비트족들의 이야기인 <길위에서>여서 음악과 소설 속 시대는 약간 맞지 않지만 어쨌든 재즈 들으면서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고 생각했다. 선희는 피곤했는지 엎드려 곧 잠들었다.
냅킨에 적힌 이용 안내를 읽어보며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3인 이상의 손님, 아이와 동물, 외부 음식, 노인이 들어올 수 없는 배제의 공간이 되는 동안 여러가지 험한 일들이 있었겠지(대구라서 더 그랬을 것 같다). 나는 배제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손님의 신분이고, 아이나 동물을 키우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다행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성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결국 내 입장에 맞게 '표백'된 공간인가, '사회적 표백'이라는 담론을 개인 업장의 운영 방침에도 들여 놓고 양심적인 가책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돈을 지불했으니 불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생각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도 금전으로 환산할 수 있다는 감각이 강해지며 나타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깊게 침투하기 전인 1970년대에는 이런 태도가 지금만큼 당연시되지 않았다. 급속한 근대화 과정에서 이런 사고가 빠르게 내면화됐다. ‘당연함’이라는 것은 시대적 맥락에서 용인되는 것이지, 이게 반드시 옳다는 의미는 아니란 점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집으로 돌아와 카페 KBS 인스타를 팔로우하고 거기에 있는 공지(위의 캡처)를 읽자마자 골치 아픈 생각 그만두기로 했다. 브랜딩은 결국 구분짓기의 언어이고, 공간도 마찬가지다. 모두를 적당히 만족시키는 공간보다 원하는 사람에게 미친 만족을 주는 공간, 제품, 브랜드가 내 기준에서 훨씬 멋진 공간이다. 옆 사람의 전화 통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아이가 울고 개가 짖고 무례한 노인네가 호통치는 공간에서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카페 문을 나서는 것보다 오롯이 음악에만, 내가 집중하고 싶은 만큼 집중하다 나올 수 있는 공간이 PC하진 않더라도 훨씬 멋지고 귀하다. 난 어떤 공간을 만들어야 할까. 업장이든 사적인 공간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내 공간에 들이며 사는 삶, 혹은 싫어하는 것을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배제하며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삶의 목표가 생긴 기분이 들었다.
결론 : 다음에 대구에 가게 된다면 목적은 이곳에 방문하는 것이고, 올해 안에 또 갈거다.

2. 명절의 신기함에 대한 생각

최악의 타이밍에 목감기에 걸린 덕분에, 기차 예매 기간을 까맣게 잊은 덕분에 이번 명절은 선희와 차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말은 거의 나누지 않았다. 제천에 들렀다 간 하룻밤 사이에 감기 몸살은 급격히 악화되어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목이 아팠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와서도 아예 말할 기운이 없어 내내 누워만 있었다. 동생이 영화도 예매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저히 응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유해진이 연기 차력쇼를 펼치는 2시간 동안 리클라이너 영화관의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히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사실 금~토 이틀 일정으로 잠깐 들렀다 일~수요일까지 이어진 연휴를 여유롭게 보내려고 했던 애초 계획대로 움직였더라면 어땠을까 계속 생각이 들어 어색한 집안 공기가 아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튿날 오전에는 기적적으로 몸을 일으켜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외할머니는 드물게 내가 좋아하는 어른인데(나는 기본적으로 노인과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올해 90세시지만 내가 하는 농담을 좋아하고 온 국민이 모두 싫어하던 카카오톡 피드로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는 세련된 분이다. 독실한 교인이지만 여느 교인들과는 달리 예전부터 손자인 나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은 점도 내가 외할머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다.
가끔 대구에 오더라도 외할머니 뵙지 않고 그냥 가던 시기도 있었는데, 얼마 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되도록 잠깐이라도 뵙고 가려고 한다. 그렇다고 가서 많은 말을 하는 편도 아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할머니 동호수를 아이폰 메모장에서 확인하고, ATM기에서 드릴 용돈을 뽑고, 근처 적당한 빵 가게(뚜레주르나 파리바게트 같은)에서 롤케익을 사서 전해드리고, 적당히 밥 먹고 1시간 정도 동안 열마디 남짓 이야기 하고 돌아오는 게 전부다.
매번 가족이나 친척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난 정말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그들도 내가 옮긴 직장은 재미있는지, 요즘 식사는 하고 다니는지, 부모님은 건강하신지가 정말 진정으로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니겠지만 난 그런 게 정말 1만큼도 궁금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할 말이 없다. 쥐어짜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엔 목도 너무 아팠다.
정작 나도 외할머니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우리가 사간 롤케익을 사이에 두고 마치 자기 할머니처럼 살갑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선희를 보면서 나와 참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신기해서 먹던 포크를 내려놓고 두 사람을 한참동안 지켜보고 있었다. 저 두 사람은 어떻게 이날 마주보며 롤케익을 먹고 있는 것일까? 두 개의 세계가 대나무 돗자리 위에 작은 소반을 두고 대화하는 이상한 모습을 보며 '명절의 신기함'에 대해 생각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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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은색 안개
이런 질문을 다시 던져보고 싶습니다. ‘길에 있는 가게’가 공간 주인의 철저한 계산안에서 굴러가는 공간일 수 있을까요? 예약제로 받지 않고 지나가다가 ‘들러볼 수’있는 곳이라면 정말 그가 의도한대로 기능하게끔 하는 것이 적합한 운영 방식일까요? 이런 공간이 비가 와서 잠시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맞을까요 .. 그는 진심으로 물 한잔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일까요… PC함과는 별개로 그의 가치관과 가게의 위치성이 부딪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이 가게가 2층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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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은색 안개
쓰고나니 공공 도서관에서 일하는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는데, 가게라는 것이 “공공 장소”는 아니니까… 개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운영하겠다는건 이해하는데, ‘비 피할때 물 한잔 내어줄 수 있는 마음’과 ‘No xx 를 지향하는 마음(아무리 기나긴 사연이 있다 할지라도)’이 부딪히는 것 같아서 괜히 심통난듯도 해요. 암튼 내가 운영하고 싶은 방식과 그 위치성&공간(동네, 층수, 가게 문의 무게, 열리는 방식, 통창이냐 아니냐 등)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참 중요할 것 같다는 혼자만의 깨달음으로 끝났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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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락
누군지 알거 같은데 댓글 감사합니다(ㅋㅋㅋ)
옳음/옳지않음과 동의함/동의하지 않음은 쌍으로 존재하는 개념일까요?
사유재산이라도 공공의 공간을 일정 부분 점유하니 어떠한 이유로 누군가를 배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저곳의 미감이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의도와 마음에 동의하는 것이고요
모든 공간이나 브랜드, 제품이 옳음을 잣대로 획일화되는 것보다 누군가의 기준이나 시선에서 조금은 옳지 않더라도 만든 사람의 소신이 투영되는 편이 더 멋진 것 같습니다… 옳지 않음의 정도에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는가도 각자의 몫이겠고요
활기찬 은색 안개
오.. 저 이 대댓글 안보고 이야기한건데 “옳음/옳지않음과 동의함/동의하지 않음은 쌍으로 존재하는 개념일까요?”이 질문에 답을 했었네요?! 저도 쓰면서 이 사례를 맞다 틀리다로 보기 보다는 ‘더 좋은 방식은 무엇일까‘를 고민할 수 있어서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창작물(공간)을 만나면서, 창작자의 가치관이나 표현을 어디까지 ‘내 기준에서’ 기쁘게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는 건, 내 기준이 뭔지 찾아가는 건!
결국 또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니까 재밌는것 같습니다 ㅎ 좋은 주제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유익한 블로그 글에 정진해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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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락
유익한 블로그 글 써달라고 하니까 갑자기 무익한 글만 쓰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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