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심에 대하여
요리를 밥벌이로 하는 내겐 밥이라는 게 어떤 마음이 담긴 물건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 마음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그러나 추억이 담긴 물건을 중고 마켓에 내놓았을 때의 찡한 마음과 비슷하다. 온 마음을 다해 요리에 다가가면 오히려 너무 과한 맛과 식감이 담긴다. 기껏 마음 한가득 담아 줬는데 ‘너무 과해’라는 말로 돌아오다니. 미운 생각이 들어 접시째로 비닐봉지에 쏟아 넣어 대충 묶어 버리고 싶어진다. 그러니 뭐든 적절한 것이 좋다. ‘모든 걸 주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가면 조화로운 맛과 잘 어우러진 식감을 가진 한 접시가 완성된다. 얼떨떨하지만 기분은 좋다. 몸을 한껏 웅크려 스스로를 꼭 안아주고 싶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요리들을 하나씩 완성해가다보면 그것이 꼭 ‘마음의 똥’ 같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도 나올 정도로 골몰했던 것이 한 접시로 정리돼 나오면 아주 오랫동안 참은 변비가 해결된 느낌이 든다. 요리들이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순간, ‘꼭 너의 역량을 다 해내고 사라져’라는 왠지 슬픈 작별 인사를 보낸다. 요리에 마음을 담는 정도를 조절하는 법에 익숙치 않았던 시절에는 자주 몸이 아팠다. 마치 뼈가 마시멜로로 변한 듯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웠다. 바쁜 점심 시간이 끝나면 온몸에 요리의 흔적이 남는다. 각종 재료를 끓이고 튀기고 굽는 과정을 증명하는 흔적이다. 그런 상태에서 마음을 놓아버리기라도 한다면 나의 체력도 떨어지고 요리의 맛도 미묘하게 달라진다. 요리에 담아내는 마음 하나로 12시간의 근무와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것이 욕심이었다. 늦느니 일찍, 부족하느니 여유 있게 임하는 성격으로, 마음을 덜하느니 더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 잘못이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늘 그러한 상황이 반복된다.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너무 행복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행복했던 순간들을 몇 번이고 복기를 한 탓에 온몸에 도파민이 퍼졌다. 자주 날밤을 샜다. 명상 영상이나 지루한 책들을 활용해보기도 했지만 이미 균형을 놓쳐버린 것을 되돌리기에는 쉽지 않았다. 어떤 날은 영상 기술을 배워보고 싶어 온라인 클래스들을 둘러보다 충동적으로 클래스와 영상 편집 프로그램 구독권을 샀다. 노트북도 애초 계획된 문서 작성용이 아닌 영상 편집용 노트북을 샀다. 한동안 통장에 찬바람이 불었지만 나는 지르는 용기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애써 변명했다. 연애 반대편에서 평형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노력했다. 하지만 기울어진 균형은 쉽사리 돌아오지 않았다. 기울어진 균형은 그것을 기울게 한 무언가를 향한 정반대의 마음을 통해 돌려놓을 수 있다. 나를 잠 못들게 했던 행복감과 도파민은 시간이 지나며 연애가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 들면서 자연스럽게 편안함이 되었다. 잠도 잘 자고 삼시 세끼도 잘 챙겨 먹게 됐다. 클래스와 영상 편집 프로그램은 손대지 않은 지 오래고 노트북으로는 문서 작성만 하고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다시 밥으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밥심’은 밥으로 얻는 힘일까, 밥을 향한 마음일까.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밥으로 신체의 에너지를 얻기도 하지만 나는 밥을 통해 마음의 방향과 정도를 가늠하기도 한다. 밥에 대한 마음을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다. 그리고 나아갈 힘을 얻는다. 밥 먹을 시간이다. 발행일 2023년 11월 29일 글 윰마토 *이 에세이는 풀칠 제 162호 : 🥙밥심에 대하여에 실렸습니다. 위 카드를 누르시면 다른 필진의 코멘트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