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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을 찾지 않는 이유 | 인류 멸종 카운트다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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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고대 남성의 유골은 이제 전설 속의 거인처럼 보였다. 한때 강인했던 신체와 야성적인 에너지는 이제 누렇게 변색된 뼈 조직 속에나 남아 있는 화석이 되었다. 도시의 공기는 여전히 투명하고 달콤했지만, 그 속에는 보이지 않는 유령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플라스틱의 틈새에서 스며나온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 A, 그리고 수돗물을 타고 흐르는 미세한 에스트로겐 유사 물질들이 인류의 지도를 조용히 다시 그리고 있었다. 섀나 스완이 예고했던 '카운트다운'은 이미 0을 향해 가속도를 붙인 지 오래였다. 전 세계 남성들의 정자 수는 지난 수십 년간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급감했고, 이제 자연 수정은 박물관의 박제된 기록만큼이나 희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거리의 남성들은 더 이상 사냥꾼의 눈빛을 지니지 않았다. 그들의 어깨는 둥글게 굽어 있었고,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매끄러웠으며, 눈동자에서는 도파민과 테스토스테론이 만들어내던 날카로운 야망이 사라져 있었다. 레너드 삭스가 경고했던 '표류하는 소년들(Boys Adrift)'은 이제 성인이 되어 가상 세계의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이기적 유전자'는 더 이상 생존과 번식이라는 원초적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 유전자의 탈것인 육체 자체가 환경 호르몬의 공습으로 인해 그 정체성을 잃어갔기 때문이었다. 남성성은 더 이상 진화의 자산이 아니라 부끄러운 유물이자 억압의 상징으로 치부되었다. 수세기 동안 축적된 문명의 규범과 페미니즘의 정당한 요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생물학적 퇴행과 맞물리며 예기치 못한 종말의 풍경을 빚어냈다.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범주는 사회적으로 해체됨과 동시에 생리적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엘레나는 이 '부드러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인류가 수천 년간 갈망해온 진정한 평등과 자율을 손에 넣었다. 그녀의 직업적 성취는 눈부셨고, 그 어떤 남성의 보호나 경제적 지원 없이도 완벽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사회학적 결핍이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진화의 과정을 거치며 형성된 뇌의 심부에서 울려 퍼지는 생물학적 경보였다.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이 분석했듯, 여성의 잠재의식 속에는 여전히 자원을 보호하고 역경을 돌파할 수 있는 강인한 배우자에 대한 유전적 갈망이 화석처럼 박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남성들은 '에스트로제너레이션(Estrogeneration)'의 파도에 휩쓸려 그 원형을 잃어버렸다.
그녀가 만나는 남성들은 친절하고 섬세했으며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에게서는 생의 의지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돌진하는 '투쟁' 반응의 불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로버트 새폴스키가 연구했던 스트레스와 호르몬의 역학 관계는 이제 남성들에게서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들의 코르티솔 수치는 만성적으로 높았고, 테스토스테론은 바닥을 쳤다. 그들은 더 이상 갈등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위축되었다. 엘레나는 세련된 대화 속에서도 문득문득 역겨움을 느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자신의 본능이 요구하는 남성적 에너지가 거세된 환경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이었다.
도시의 산부인과는 이제 거대한 정자 은행이자 유전자 조작실로 변모했다. 자연스러운 사랑의 행위는 사라졌고, 여성들은 카탈로그에서 '가장 남성적이었던 시절'의 냉동 유전자를 골라 수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배아들은 환경의 저주를 이기지 못하고 빈번히 탈락했다. 불임은 이제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인류라는 종의 기본값이 되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원했던 '남성으로부터의 해방'이 '남성이라는 존재의 소멸'로 이어졌을 때 닥쳐오는 차가운 고독을 예견하지 못했다. 보호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는 역설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절망적인 고립으로 변질되었다.
어느 날 엘레나는 박물관 깊숙한 곳에서 고대 수렵 채집인들의 발자국 화석을 보았다. 그들은 짐승을 쫓아 수십 킬로미터를 달렸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으며, 거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피터 매칼리스터가 묘사했던 그 '위대한 조상들'에 비하면, 지금의 인류는 얼마나 초라한 퇴화의 산물인가. 환경 오염이라는 보이지 않는 칼날은 남성의 생식기를 위축시켰고, 사회적 억압과 성 역할의 혼란은 그들의 정신적 척추를 꺾어놓았다. 여성들은 승리했지만, 그 승리의 전리품은 오직 정적만이 감도는 적막한 교실과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놀이터였다.
사랑의 시도들은 점점 더 연극적으로 변해갔다. 남성화된 여성들과 여성화된 남성들 사이의 결합은 생물학적 불꽃을 일으키지 못했다. 인간의 성적 욕구와 유대감은 뇌의 아주 오래된 부위에서 발생하지만, 현대인들의 뇌는 환경 호르몬과 사회적 가공에 의해 그 회로가 뒤엉켜버렸다. 엘레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지적이고 독립적인 현대 여성의 자부심 대신, 멸종해가는 종의 마지막 생존자가 느끼는 근원적인 슬픔이 서려 있었다.
진화는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리처드 도킨스가 묘사했던 그 화려한 '지상 최대의 쇼'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었다. 눈 먼 시계공이 실수로 떨어뜨린 부품처럼, Y염색체는 서서히 부서져 가루가 되었다. 여성들은 이제 홀로 남겨진 지구 위에서 자신들을 지탱해주던 그 '거칠고 무모하며 냄새나던' 반쪽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플라스틱 병 속에 갇힌 문명은 스스로를 거세했고, 인류는 그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운 멸종의 길로 걸어 들어갔다. 그것은 비명 소리 하나 없는, 가장 우아하고도 비참한 종말이었다. 엘레나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노을은 그 어느 때보다 붉었지만, 그 빛 아래로 지나가는 남성들의 그림자는 희미하기만 했다. 그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이미 사라진 별의 잔광과 같았다. 여성들의 왕국은 마침내 완성되었으나, 그곳에 남은 것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생물학적 허기와 차갑게 식어가는 유전자의 무덤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