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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07 김서율 서평문집

시 감상 서평
서율이
아이들이 없어진 학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꽃잎들 어디 갔나요 가을바람 꼬리 아래 들춰 보아도 작은 발자국 하나 남아 있지 않네요 용궁에 들었을까 은하수로 올랐을까 상자 속에 갇혔나 시계 안에 숨었나 어깨 겯고 곧은 금에 발끝 맞추던 이슬 닮은 눈망울 그리워집니다 찬비 맞아 가을별 울 너머 가버리고 달빛 아래 하얀 눈 홀로 외로워도 남풍 싣고 올 새 봄 기다립니다 겨우내 간직해 온 씨앗 뿌리듯 마당 가득 꽃가루 촘촘히 담아 내어 하얀 금 곧고 바르게 그으면 푸른 물 열고 이 가슴에 달려올 동그란 초록 함성 기다립니다 이 시는 현상길의 '꿈꾸는 운동장'이라는 시이다. 이 시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시기에 학생들을 기다리는 교사의 모습을 그려낸다. 꽃잎은 아이들을 뜻하고 그런 꽃잎들이 없는 지금을 겨울에 꽃잎이 많은 봄을 기다린다고 얘기하며 학생을 기다리는 모습을 표현한다. 시에서 사용하는 시어와 표현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꽃잎으로 비유하고 아이가 있는 계절을 봄, 그렇지 못한 계절을 겨울로 표현한 것이 너무 와닿았다. 학생들이 항상 예쁘기만 할 수 없지만 학생이 없는 학교는 교사에게 의미 없는 겨울처럼 쓸쓸하고 춥고 학생들이 온 학교는 교사에게 봄처럼 따스한 시간이라는 것이 잘 느껴졌다. 그리고 아이들이 없어서 어디갔지하고 의문을 갖는 곳에서 용궁에 들었을까 은하수로 올랐을까라고 표현한 것이 예쁘다. 그냥 어디갔어!가 아니라 용궁, 은하수처럼 아름답고 또 신비로운 곳으로 갔냐고 말하는 것에서 작가가 보는 아이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였다. 또 동그란 초록 함성이라는 말이 너무 예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치는 함성이 듣기 싫은 뾰족하고 각진 소리가 아니라 동그랗게 듣기 거리낌없고 초록이라는 색으로 신선하고 생기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가 더 와닿았던 것은 지금 상황에 더욱 적합해져서라고 생각한다. 2015년엔 892만 명이던 학령인구 수가 현재 2024년에는 714.1만 명으로 180만명 가까이 감소하였다. 당장 초등학교만 가봐도 이것을 바로 느낄 수 있다. 2018년-2019년에는 한 반에 30명 가까이 되던 학생 수가 현재는 20명도 못 넘긴다. 출산율 또한 2015년 1.24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아이도 낳지 않아 미래에 학생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출산률이 줄어드는 것에는 경쟁 심화, 가치관 변화, 물가 상승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국가에서 양육비지원이나 출산장려금을 지급하고 있음에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고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에는 그러한 금전적인 지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양육에 대한 부담감이 크고 자신의 아이는 경쟁 등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또 자녀를 위한 부모의 희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예전 세대와 달리 자신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말로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제일 필요한 점은 경쟁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시골 아이는 한 마을해서 정말로 효과가 있는 해결책은 무엇이 있을까. 제일 필요한 점은 경쟁 완화도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있다. 아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정이 아니라 속한 사회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예전에는 한 아이를 마을 어른들 전체가 키웠다. 이렇듯 아이에 대해서 불만, 거리낌 없이 다같이 아이를 키우고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 늘면서 아이들이 떠들고 뛰어다니고 장난치면 안좋은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런 일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수는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아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들을 좋은 눈으로 보지는 못해도 차라리 아무 관심을 주지 않으면 부모의 부담감은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많아지고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바뀔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서율이
지는 해 - 정유경
친구와 싸워 진 날 저녁 지는 해를 보았네. 나는 분한데 붉게 지는 해는 아름다웠네. 지는 해는 왜 아름답냐? 지는 해 앞에 멈춰 서서 나는 생각했네. 지는 것에 대해서. 친구와의 싸움에서 지고 분해 하는데 지는 해를 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 마지막에 '지는 것에 대해서'의 부분이 해가 지는 것이 아니라 싸움에서 지는 것에 대하여 생각한다는 것 같아서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 시를 고르게 되었다. 자세히 얘기하기 전에 먼저 시에서 생각한 '지는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과연 지는 것은 무엇인가. 지는 것이 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지는 것이 분한 것이 아니라 양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상대와 의미 없는 싸움을 하지 않지 위해서 나의 의견을 조금 뒤로 보내고 상대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라면 양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는 친구와의 다툼 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쟁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경쟁에서 매번 이기려고 하기 때문에 또 다른 싸움이 생기게 된다. 무조건 이기는 게 좋은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다들 이기려고 노력한다. 이기기 위해 다투다가 심지어는 같은 편의 동료와도 싸우곤 한다. 그러나 해는 어떤가. 해는 짐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드리고 져물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남에게 양보하고 지며 하늘에 붉은 노을을 만들며 아름답게 진다. 이렇게 양보하고 지는 것을 받아드린 해는 아름답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끝까지 싸우고 졌다는 것을 받아드리지 못한 '나'는 분하기만 한다. 물론 그냥 다 져주는게 아름답다는 소리는 아닐 것이다. 꼭 이겨야하는 경쟁에서는 이겨야하지만 무조건 이기지 않아도 되는 경쟁,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 같은 것에서는 자존심부리며 이기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친구와 싸울 때 이렇게 싸울 일인가 잠시 생각하고 자신이 잘못한 점을 먼저 사과하면 상대도 사과하며 평화롭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평화롭게 해결된 모습을 작가는 붉게 지는 해가 아름다운 것에 빗대어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사람들이 지는 것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분한 것이 아니라 양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아득바득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모습을 봤다. 자존심이 상한다는 이유로 그럴 필요도 없는 싸움을 길게 끌고 가고 크게 만든다. 대부분은 이 다툼이 이렇게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먼저 사과하는 것은 지는 것이고 그건 자존심이 상하고 분한 일이기 때문에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더 깊어져만 간다. 그럼 이럴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생각해봤다. 먼저 다투는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지금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어쩌다가 지금 이렇게 싸우게 되었고 이 싸움이 지금까지 이어질 일인가 사과할 수 있었음에도 내가 자존심을 부리며 사과를 미루고 있진 않은가 생각해봐야한다. 그러고나서 이런 상황과 상대를 보고 무작정 화내지 말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일이 일어나는 원인의 사건에서 정말 내가 잘못한 것은 없었는가? 다투는 중에 내가 상대한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생각해보면 내가 미처 놓친 나의 잘못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대에게 사과를 하자. 이 일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고 내가 잘못한 부분도 있다면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를 하자.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만 잘못한게 아닌데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 생각을 잠시 미뤄두고 내가 잘못한 점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사과를 해야한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고들 말한다. 한 번 이렇게 사과하고 나면 다음에도 다투는 일이 생겼을 때 사과하기 쉽다. 그럼 다른 사람과 불필요한 다툼을 없애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싸웠을 때 이 시를 생각해보고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과해보는 건 어떨까?
서율이
식구 - 유병록
매일 함께 하는 식구들 얼굴에서 삼시 세끼 대하는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떄마다 비슷한 변변찮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간장에 절인 깻잎 젓가락으로 집는데 두 장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아 다시금 놓자니 눈치가 보이고 한번에 먹자 하니 입 속이 먼저 짜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데 나머지 한 장을 떼내어 주려고 젓가락 몇 쌍이 한꺼번에 달려든다 이런 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 가족 중 한 명이 깻잎을 못 떼어내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모두 이를 도와주기 위해서 젓가락을 들고 달려드는 모습이 나온다. 이것이 마치 크든 작든 어떠한 어려움이 생기면 무조건적으로 도와주려하는 가족을 표현할 것이라 느껴졌는데 그것이 인상깊어서 이 시를 선택했다. 1연에 '식구들 얼굴에서', '변변찮은 반찬에서', '새로이 찾아내는 맛이 있다.' 라는 부분이 있다. 처음에는 그냥 반찬에서 새로 찾아내는 맛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반찬 뿐만 아니라 식구들의 얼굴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고 읽혔다. 가족이라는 것이 매일 보고 항상 곁에 있으니 가족들에 대해서 정말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수록 알지 못했던 가족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해도 오빠는 나에게 항상 장난만 치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이였다. 하지만 내가 진로나 입시에 대해서 고민을 가지고 있다면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지고 조언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였다. 이렇게 내가 원래 가족에 대해 알지 못한 모습일수도 또는 시간이 지나 바꾼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매일 보는 가족에게서도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다. 2연에서 깻잎 2장이 붙어서 놓지도 그렇다고 먹지도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화자에게 젓가락 몇 쌍이 도와주려 달려든다. 몇 쌍이라고 말한 것을 보니 가족 전체가 화자를 도와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3연에서 '이런게 식구이겠거니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내 식구들의 얼굴이겠거니'라며 이런 모습이 식구의 모습이라고 한다. 가족이란 정말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간이 딱 맞게 즉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나에게 맞추어 나를 도와주는 그런 모습이 식구의 모습이지 않을까. 어려움이 있을 때 주저없이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식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런 식구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다. 언제나 내편일 거라는 생각에 쉽게 말하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 어려움이 있으면 언제나 날 도와주니까 그렇게 대해도 날 봐줄 거라는 생각에 막 대하기도 한다. 가족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내가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권리도 가족들이 나에게 상처를 받을 권리도 없다. 이 시를 읽고 나서 혹시 나는 이런 이유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한 번쯤은 가족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