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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11수_삼상23:15-29_니 손에 걔를 넘길 일은 없어!

[Holy-PT] [20241211수_삼상23:15-29]_니 손에 걔를 넘길 일은 없어!
🖋️
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1)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20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21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2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23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2)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24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1)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25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27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8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3)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29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
오늘 본문은 사울이 어떤 자인지, 그 본질을 한 구절로 폭로하며 시작한다. 사울은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이다. 다윗으로 대표되는, 여호와의 영인, 성령님이 함께하는 생명이 그의 적이다.
○ 다시 등장한 요나단
아버지인 왕 사울은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섰고, 이에 아들 요나단 역시 일어났다. 그 둘이 찾으려는 대상은 같다. 다윗이다. 하지만 다윗을 찾는 목적은 정반대이다. 아버지 서울은 생명을 죽으러 나왔고, 아들 요나단은 생명을 살리러 일어났다! 무엇이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만들어낸 것일까? 어떤 기준, 어떤 관점이 한 명은 죽음으로, 한 명은 생명으로 나아가게 만든 것일까?
사울의 기준은 ‘자기를 위하여(15:12)’였고, 관점은 ‘나의 이익’이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달랐다. 그의 기준은 ‘하나님’이고, 관점 오직 ‘구원’이라, 그의 모든 관심은 온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큰 구원(19:5)’을 향해 있었다.
큰 구원의 핵심은 모든 생명을 건지고, 모든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요나단은 아버지이자 왕인 사울의 명령과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아버지가 범죄를 범하지 않게 막고, 아버지와 다윗의 생명 모두를 건져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명한 ‘세속사’의 굽은 길을 버리고, 큰 구원으로 향해 가는 ‘구속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요나단은 이렇게 말한다.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23:17)
요나단은 지금 ‘다윗, 네가 결국 왕이 될 것을 사울도 알고, 나도 알아’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 앞에서, 사울은 자기를 위해 ‘생명을 빼앗는 자의 삶’을 택했고, 요나단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위해 ‘생명을 살리는 자의 삶’을 택한 것이다.
요나단 역시 여호와의 영이 임한 자였다. 여호와의 영이 임한 자만이 사람을 하나님의 영-생명으로 볼 수 있다. 성령님이 씌워 주신 ‘구속사-큰구원’의 안경을 써야지만 사람이 나의 이익, 야망을 위해 죽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생명, 살려야 할 생명으로 보인다. 그래서 요나단은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23:16)
○ 배신과 음모의 추격전이 시작되다
이렇게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으로 또 한 번 생명을 빼앗기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19절부터 위기가 찾아온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사람을 죽여 생명을 빼앗으려는 자의 계획은 철저하고, 집요하게 전 과정을 확인하며 준비한다. 생명을 뺏으려 달려들 때, 자기도 몰랐던 ‘똑똑한-악’이 터져 나온다.
당신들은 그가 숨을 만한 모든 은신처를 자세히 살펴본 다음에, 틀림없는 정보를 가지고 나를 찾아오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들과 함께 가겠소. 그가 이 나라 안에 있기만 하면, 내가 유다의 마을들을 남김없이 다 뒤져서라도 그를 찾아내고야 말겠소." (23:23, 새번역)
그리고 이 계획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추격전이 마온 광야에서 시작된다. 말 그대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사울과 그의 부하들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을 잡으려고 포위했다. 그토록 원했던 생명을 빼앗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27절)
생명을 빼앗으려 온 내 뒤에, 내 생명을 빼앗으려 온 사건이 닥친 것이다. 사울은 그토록 빼앗고 싶었던 생명을 바로 눈앞에 두고, 내 생명을 빼앗길까 봐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간다. 다윗은 다시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다. 이번에는 요나단도 없는데, 누가 다윗의 생명을 건져 지킨 것일까?
○ 네 손에 걔를 넘길 일은 없어!
오늘 본문은 15절에서 시작했고, 어제 본문은 14절에서 이렇게 끝났다. 14절에 ‘누가 다윗의 생명을 건져 지킨 것일까?’에 대한 답이 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14절)
성경은 이 전쟁을 ‘사울 vs 다윗’으로 설정하지 않는다. 성경은 이 전쟁을 ‘사울 vs 하나님’으로 설정한다. 사울은 매일 찾지만,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신 것이다! 사울이 빼앗으려는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고, 하나님은 절대 그 생명을, 세상-악에 넘기지 않으신다! 다윗에게 약속하겠기 때문이다. 다윗을 통해 이루어 나가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큰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울 같은 자가, 사울 같은 사건이 올 때, 나의 대응은 하나다! 사울에게 맞서 ‘내가 옳다!’ 외치며 돌격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을 추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요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오호, 네가 나의 사울이었구나!
아들 윤호는 고3이다. 미대를 준비한다. 얼마 전 수능을 봤고, 지금은 미술 학원에서 열심히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윤호의 입시를 함께하며, 오히려 지금 중1인 지오를 생각했다. 그리고 또 내 나이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말.
나, 한참 더 벌어야 하는구나!
나, 좀더 벌고 싶어!
젊었을 때 나는 삶의 안정은 나이 듦과 정비례할 거라 생각했다. 완만하게라도 말이다. 이상하게(?) 내 주변의 어른들의 삶은 그래 보였다. 그런데 그게 이상한(?) 거였다. 더 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여기서 건강하게(!) 생각이 멈추고, 지금 주신 일에 감사하며 또 하루를 살면 되는데,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또 한 살 먹을 나이, 또 한 단계 떨어질 체력이 자동적으로 생각나며 ‘근심’이 자리한다.
이 근심은 나를 추격한다. 내 ‘영-생명’을 빼앗으려고! 곧 졸업을 앞두고 주의 길을 모색하는 나를 추격한다. 탄두에 ‘돈’이라고 써져 있는 미사일을 쏜다. 그 미사일로 나를 격추하려고 한다. 그 미사일이 터지면, 실체 없는 ‘돈-(걱정)-가스’가 퍼지며 영의 신경이 마비된다. 그 사울 전투기는 스텔스 기능까지 갖춰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두렵다.
그런 나에게 오늘 말씀이 임했다. 기억하라고 하신다. 나는 안전하다는 사실, 내 생명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사실을 기억하고 일상의 전투를 하루하루 잘 치르라고 하신다. 마치 다윗이 주님이 주신 온힘 다해, 사울에 대응하고, 피하고, 숨고 했던 것처럼! 그렇게 가야 할 곳으로,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함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구절에 등장한 ‘엔게디 요새’처럼 때마다 요새를 공급하실 것도 약속하시면서 내게 다시 말씀하신다.
큰 구원을 생각해, 세규야.
큰 구원을 위해 기도해, 세규야.
그래야 생명으로 지금-여기를 살 수 있어.
그래야 생명되어 생명을 살릴 수 수 있어.
맞다!
근심이 나를 매일 찾되 하나님은 나를 그 세상 근심에 넘기지 아니하실것이다!
나는 안전하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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