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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6수_삼상3:1~1_아는 걸로 안돼, 만나자, 세규야!

[Holy-PT] [20241106수_삼상3:1~1]_아는 걸로 안돼, 만나자, 세규야!
🖋️
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11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15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17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8 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19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 드디어 영화가 시작된다
오늘 본문 사무엘상 3장은, 총 55장으로 구성된 <사무엘상·하>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張)이다. 왜냐하면 본격적으로, 영화 같은, <사무엘상·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은 이런 ‘전형(典型)’을 가지고 있다. 구시대가 가고 새 시대가 온다. 옛사람이 가고 새사람이 온다. 어둠이 가도 빛이 오며, 그렇게 선이 악을 이긴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에는 항상 문제가 드러난다. 문제의 본질은 죄이고, 그 죄가 잉태한 악이다. 그러니 영화의 시작은 항상 어두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작이 어둡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시작이 어두울수록 영화는 결국 끝에서 더 밝아질 테니까!
○ 이게 없는 게 진짜 어둠이야
오늘 본문은 3장 전체이다. 1~3절이, 어둠의 시작이라면, 끝인 19절은 밝음의 절정이다. 3장은 어둠에서 빛 되신 말씀으로 나아가며, 새 시대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리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당시 세상은 ‘보이지 않았더라’의 세상이었다! 주인공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 여호와의 말씀은 희귀하였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 구시대의 영적 지도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다서 잘 보이 못하는 그때(2절)’가 바로 이때였다. 이 시대는 어두웠는데, 어두웠던 이유는 다름 아닌 말씀이 없어서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보이지 않는 시대가, 성경이 정의하는 ‘어둠’의 시대다.
훗날 선지가 아모스는 이 어둠의 시대를 마치 이렇게 회고한 것 같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 말씀을 만나야만 오는 새 시대
오늘 이야기의 중심에는 사무엘이 새 시대, 새사람으로 부름받는 이야기(4~14절)가 있다. 하나님은 무려 세 번이나 사무엘의 이름을 부르셨다. 하지만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사무엘은 엘리가 부른 줄 알고 그에게도 달려갔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7절)
사무엘이 어리기는 했지만,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어렸을 때부터 엘리 제사장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을 텐데? 이게 말이 되나? 7절에 중요한 단서가 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나타나다’이다. 이 동사는 인격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배워 아는 것, 그래서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사무엘은, 하나님은 ‘알았지만’ 아직 하나님을 말씀으로 만나지는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로 부르실 때는, 여호와께서 음성만이 아닌 직접 ‘임하여’ ‘서서’ 부르신다. 끝내 만나 주신 것이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임하시고, 서서, 부르시며, 사무엘로 말씀이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열심과 엘리의 가르침과 사무엘의 각성을 통해, 말씀을 만나는 은혜가 마침내 사무엘에게 임했다!
말씀이 임하며 빛이 왔고, 어둠에서 사무엘은 새사람이 되었다. 말씀을 ‘만나-본’ 영적 지도자 된 것이다.
○ 나는 주님을 잘 알아요, 그런데...
얼마 전 강도사 고시 원서를 준비하며 노회의 고시 위원장을 맡고 계신 목사님과 대화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 목사님은 2년 전, 내가 전도사 고시를 볼 때 나를 면접한 분이셨다.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기도 안 하는 얘로. 당시 기도가 그렇게 부족해서 어떡하니,라며 대놓고(?) 염려를 드러내셨다. 하지만 그 염려가 책망보다는, 애통으로 느껴져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었다. 아무튼 당시 그런 말씀을 들었다고 없던 개념(?)이 막 생겨나지는 않았다. 순수한(?) 얼굴로 ‘때가 되면 하겠죠?’라고 말씀드려 목사님을 더 놀라게(!) 한 기억이 있다. 이번에 만난 그 목사님은 그런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그리고 바로 물으셨다.
-얘, 이제 기도는 좀 하니?
-네, 목사님, 기도하고 있어요. 기도가 신대원이 저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에요.
목사님은 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어떤 기도를 드리냐고 묻지 않으셨는데, 나는 내 기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주님을 잘 알아요. 그런데 정말 주님을 만나고 싶어요.
그 말을 왜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 말은 그냥 내 입에서 나왔다. 말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 말씀을 드리고 있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말이 내 가슴에서 빠져나갈 때 내 마음은 시원했다. 그리고 새삼 나 역시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기도를 드리고 있구나. 내가 주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는구나.
생각해 보면, 이런 갈증과 다급함, 그리고 간절함이 나를 <봉독>으로도 이끈 것 같다. 나는 믿음의 계보로는 4대인 모태 신앙인 50살이라, 예수를 너무 잘 안다. 그래, 살면서 힐끗 만난 적도 있을 것이다. 그런 만남과 그 만남 속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에 이렇게 있지도 못할 테니까. 그런데 나는 예수를, 말씀을, 전면적으로 만나고 싶다. 얼굴과 얼굴로. 가슴과 가슴으로. 포옹하고 싶다. 안기고 싶고 안고 싶다.
○ 세규야, 세규야, 세규야
마침내 하나님의 은혜로 사무엘은 임하여 서서 부르시는, ‘살아 있는 말씀’을 듣고, 만난다! 비로소 말씀과 이상이 그에게 보인다! 사무엘은 엘리에게 임한 말씀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17절)’한다. 역전되었다! 새 지도자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말씀이 없는 구시대에 마침표를 찍고, 말씀이 빛된 새 시대가 시작된다.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 말씀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차오르기 시작한다.
오늘 말씀을 묵상할 때 사무엘을 찾아 주신 하나님을 통해, 요즘 여러 모습과 형태로 나를 찾아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목사님과의 대화를 통해서도 나를 찾아 주시고, 도전을 주셨다. 계속 말씀과 기도, 예배로 구하라는 도전을 주셨다. 이미 만났고, 지금 만나고 있고, 다시 만날 것이고, 계속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확증해 주신다.
세규야, 세규야, 세규야,
네 안의 옛사람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만나줄 거야.
세규야, 세규야, 세규야,
아는 말씀을, 만나게 해 줄 거야.
그 말씀이 빛이 되게, 생명 되게 해 줄 거야.
있어야 할 곳에, 허락한 모습으로 세워 줄 거야.
세규야, 세규야, 세규야,
새 세상이 오고 있어.
새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어, 본격적으로.
뭔가 새로운 게 시작되고 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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