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늦은 밤, 씁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산책을 나섰던 날 사랑에 대한 자문자답을 나누던 중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오 나쁘지 않은데? 하고 메모장에 적어놓았었다...)
1.
사랑은 칼로리가 높다.
2.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번지는 것이다.
사랑은 칼로리가 높다
사랑은 칼로리가 높다는 말은 어쩌면 정론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시작하면 실제로 살이 찌기도 하지만 오래 사랑하고 많이 사랑할수록 그 사랑을 덜어내는 데에도 오랜 시간과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먹었던 음식과 자주 걷던 거리, 무심코 건넸던 말과 습관처럼 반복되던 연락까지.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니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그동안 쌓인 마음까지 단숨에 사라질 리 없다. 많이 사랑한 만큼 남은 것도 많고, 다시 가벼워지기까지도 제법 긴 시간이 걸린다.
역시 사랑은 칼로리가 높은 축에 속한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 아니라 번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 '빠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이 돌아서는 순간에는 사랑이 '빠지는' 수순을 밟는다고 여긴다. 마치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처럼.
하지만 나는 사랑이 빠지는 것보다는 번지는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흰 한지 위에 검은 먹 한 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떠올려본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순간이나 연애의 초창기에는 사랑의 티가 유난히 많이 난다.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한 순간이나 연애의 초창기에는 사랑의 티가 유난히 많이 난다. 온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고, 별것 아닌 말에도 마음이 출렁인다.
흰 종이 위에 막 떨어진 검은 먹 한 방울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먹은 천천히 종이 위로 번져간다.
처음처럼 짙고 선명하지는 않지만, 먹이 차지하는 면적은 오히려 더 넓어진다. 어느 한곳에 또렷하게 맺혀 있던 사랑이 일상과 습관, 말투와 표정, 삶을 바라보는 방식 곳곳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티가 덜 난다고 해서 사랑이 줄어든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 처음보다 희미해 보일 뿐, 사실은 삶의 더 많은 부분에 넓게 깔려 있는 것일지도.
그렇게 사랑하다가 먹이 너무 멀리까지 번져 서로의 색을 알아보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면, 헤어지기도 한다.
사랑이 끝난 뒤 한껏 번졌던 먹의 자국이 남은 종이는 이전의 흰 종이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그 자국을 상처라고 부르기도 하고, 추억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마음 위에는 또 다른 먹 한 방울이 떨어져 새로운 모양으로 번질 것이고, 또 누군가의 마음 한편에서는 아직 마르지 않은 먹이 여전히 천천히 번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또 한 방울이 떨어지고, 번지고, 희미해지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한 방울이 더해진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랑이란 깨끗한 종이 위에서 매번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흔적이 남은 마음 위에 또 다른 색이 천천히 스며드는 일인 것 같다.
언젠가 겹겹이 덮여 이전의 흔적을 알아보기 어려워지더라도 한 때 서로에게 선명한 한 방울이었다는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이 아님에 감사하며 함께 그려낸 무늬가 따뜻했던 장면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오하림 작가의 《일본광고 카피도감》을 읽다가 37페이지에서 사랑이라는 주제가 떠올라 사랑에 관한 생각을 구구절절 적어보았다.
책에 소개된 JR큐슈의 광고 카피를 남기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 사랑이라든지, 용기라든지, 보이지 않는 것도 함께 타고 있다. - JR큐슈(철도)
Breakwater - You Know I Love You Jenevieve - Baby Powder Earth, Wind & Fire - That's the Way of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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