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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설교😌
[충실하지만 얽매이지 않다] *잠깐묵상 | 여호수아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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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수 13:1)
여호수아가 늙었습니다. 할일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첫발을 딛을 때만 하더라도 여호수아는 자기 생애동안 정복 전쟁을 완수할 수 있을 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매우 많이 남았습니다. 그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혼신을 다했지만 미수복지역이 남은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을까요? 무리하지 않았을까요? 욕심 부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 왕국 건설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라도 이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 또한 크지 않았을까요?
모세도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분노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대신에 다음 세대를 위해 신명기를 남겼습니다.
다윗도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성전 건축을 막으셨을 때,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들 솔로몬이 그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건축 자재를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일이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명으로 주신 일이라도 완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없든, 힘이 없든 최선을 다했지만 마무리할 여건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꼭 내가 거두어야 할까요? 내 기도의 응답을 꼭 내가 확인해야 할까요? 100여년 전에 한국 땅에 와서 복음의 씨앗을 뿌린 수많은 젊은 선교사님들 대부분은 열매를 얼마 보지 못하고 순교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후대 사람들이 그 열매의 풍성함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시간 관념이 달라지는 경험입니다. 일생을 사는 사람은 일평생 자기 소원 성취에 목을 매겠지만, 영생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꿈을 함께 꿉니다. 욕심이 아닌 열심을 낼 줄 알고, 충실하지만 얽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기신 일과 내가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을 잘 구분합니다. 은혜가 족한 줄 압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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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내리기 전에 던진 질문] *잠깐묵상 | 여호수아 22장
가나안 땅은 요단강 서쪽입니다. 그런데 요단강 동쪽에 이미 자리를 잡은 지파들이 있었습니다. 르우벤과 갓, 므낫세의 반 지파입니다. 이 세 지파는 다른 지파들이 가나안 땅 정복전쟁을 치르는 동안 요단강 서쪽으로 넘어와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리고 정복전쟁이 끝난 후 다시 자기네 땅으로 돌아갑니다. 이때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염려 섞인 당부를 합니다. 그 땅에 가서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고 힘을 다해 계명을 지키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모습이 여호수아 22장 초반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요단을 건너 돌아간지 얼마나 되었을까요? 이상한 소문이 들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수 22:11-12) 요단 동쪽 사람들이 우상의 제단을 쌓았다는 뉴스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단 분노부터 하고 봅니다. 순식간에 온 회중이 집결할 정도로 그들의 분노는 맹렬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라 그런지 이해보다는 오해가 빠릅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쉽게 진단해버리고, 타인의 언행을 내 방식으로 해석하며, 사회적 현상을 읽어내는 자신만의 프레임이 각자에게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 중심성을 정당화 해줄 명분을 신앙 안에서까지 찾는다는 것입니다. 분노하며 실로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자기들 생각이 맞다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민족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인 하나님의 거룩한 군대라고 여겼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으며 기도생활을 하는 이유는 내 생각을 강화시켜줄 근거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함입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매일 기도하는 삶의 축복이란 섣부른 판단을 잠시 유보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행히도 강 동쪽 지파들에 대한 오해가 풀렸습니다. 칼을 꺼내기 전에 질문을 꺼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판단이 이미 섰더라도 잠시 미뤄두고 한 번 더 물어본다고 나쁠 것 없습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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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절충안이 아닙니다] *잠깐묵상 | 여호수아 19장
땅을 누가 어디까지 소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 역사에 있어 변함 없는 핫이슈입니다. 특정 지역을 두고 나라와 나라는 끊임 없이 다투고 있고, 한 국가 안에서도 부동산 정책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땅에 대한 이슈를 다루고 있는 여호수아서는 19장 51절을 끝으로 땅 분배에 관한 대단원의 막이 내립니다.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수 19:51) 드디어 가나안의 토지 분배가 마무리 된 것입니다. 분배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언제나 제비를 뽑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데 제비를 뽑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땅을 분배하는 일을 각 지파의 리더들이 모여 회의를 통해 결정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회의가 끝이 나기나 했을지 의문입니다. 좋은 땅 차지하겠다고 서로 싸우다가 자멸하지는 않았을까요? 결정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끼리 세력을 규합하여 투쟁하지는 않았을까요?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당을 지어 여론을 몰아가던 광야의 습관이 어디 갔겠습니까? 하나님은 가나안 땅 분배가 인간의 정치적 결과물이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정치란 개인과 집단이 가진 이기심들의 절충안입니다. 그런데 욕심은 절충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땅을 분배하는 모든 과정에서 제비를 뽑게 하셨습니다. 제비를 뽑는다는 것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내 욕심과 계산과 판단을 완전히 접겠다는 자기 부인이자 신앙고백이 바로 제비 뽑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부인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 나라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비의 결과가 어떠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십자가를 지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절충안도 늘 불만입니다. 천국은 회의하고 절충하여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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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걸고 싸우다] *잠깐묵상 | 여호수아 15장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수 15:16) 기럇 세벨은 '책들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곳이 어떤 성이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도시의 이름으로부터 당시 가나안 땅의 지식과 정보가 집약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반드시 정복해야 하는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기럇 세벨 정복을 갈렙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구절이 여호수아 15장 16절입니다. 자기 딸의 혼사를 걸면서까지 기럇 세벨 정복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앞서 14절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수 15:14) 기럇 세벨에 도달하기 직전에 치렀던 전투가 기럇 아르바 전투인데, 이 기럇 아르바는 아낙 자손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아낙 자손이 누구입니까? 40년 전, 출애굽 1세대의 기를 꺾어 놓았던 거인족입니다. 가나안 정탐꾼 10명은 아낙 자손의 장대함을 보고 나서 자신들이 메뚜기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좌절을 맛보게 한 사람들이 아낙 족속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갈렙이 아낙 자손을 무찌른 일은 상징적이고도 기념비적인 사건입니다. 이 승전보는 가나안 땅 곳곳에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던 다른 형제들에게 전해졌을 것입니다. ‘아낙 자손과 싸워서 이겼다’ 이 한마디가 모든 전쟁의 흐름을 바꾸어 놓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충천했습니다. 이 기세 그대로 몰아서 기럇 세벨로 돌진해도 됐을텐데, 갈렙은 굳이 딸의 혼사를 겁니다. 이것이 갈렙이 가나안 땅 전쟁에 임하는 자세였습니다. 그는 매순간이 최선이었습니다. 자기가 걸 수 있는 모든 것을 걸고 싸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감나무 아래 누워 입을 벌리고 있으면 감이 저절로 입 안으로 떨어지는 것을 은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은혜라기보다 요행입니다. 진정한 은혜란 감이 열매맺고 익기까지 내가 땀흘리며 수고하고도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진짜 은혜를 알면 요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답기 위하여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합니다. 갈렙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잠깐묵상 #ShortMessageService #성경통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