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곳엔 바람 소리와 그녀의 숨소리만 존재한다. 하얀 입김과 함께 그 사람의 얼굴이 스치듯 떠오른다.
이제는, 더 이상 그를 챙길 필요가 없다. 매일 상처 위의 거즈를 벗겨내고, 약을 바르고, 다시 덮어주는 일도 끝났다. 그가 좌절하지 않도록 애써 장난을 치거나, 억지로 웃어줄 필요도 없다. 그는 나 없이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 없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나는 사라져도 그의 삶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온 마음으로 그의 고통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그 고통이 사라지자, 나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눈은 조용히 내리고,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잠깐 동안만 따뜻하길 바랐다. 마지막으로 한 번, 살아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