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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내 것이 되지 않았어

과거가 남긴 우울 미래가 보낸 불안

저자
김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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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에 접어들면 훨씬 더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런데 감정은 저절로 분화하거나 알아서 발달하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하는 감정이 수용되고 인정받을 때 다음 단계의 감정을 느낄 수 있지요. 여기서 바로 우리가 우울한지 불안한지 모르고 그저 ‘ 불쾌하다(나쁘다)’는 하나의 감정만을 인식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감정이 세분화되지 못했거나 특정 감정만이 강화되고 강조된 상황이라면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 못해 쾌 혹은 불쾌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것이지요.
인생은 언제나 불확실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삶을 확실하게 예측하고 싶어 하지요. 여기서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 부족intolerance of uncertainty’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는 불확실성이 내포한 부정적인 결과의 가능성을 위협적으로 지각하고 견디지 못하는 특성을 말합니다.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력이 부족한 사람은 불확실성을 피하기 위해 과거의 부정적인 사건에 근거해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이러했으니 미래도 이럴 것이다’라고 확신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과거가 부정적이었으니 미래도 부정적일 것이다’라는 예측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쉽게 설명하면 과거에 머무는 시선이 미래를 부정적으로 예측하게 만들어 결국 우울로 이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렇듯 우울의 핵심은 반추입니다. 반추는 부정적인 사건과 연관된 감정을 되짚어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에 빠져 있도록 만드는 사고입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반추라는 대처 방식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울을 겪을 가능성이 큽니다.
겨울잠은 동물들이 먹이가 없는 추운 겨울을 이겨 내려 선택한 생존 전략입니다. 개구리는 체액을 부동액 형태로 만들어 심장을 멈춘 뒤 먹지 않고 잠을 자고, 곰은 체온을 낮추고 심장 박동 수를 낮춘 후 굶으며 잠에 듭니다. 즉 에너지를 비축하고 몸의 상태를 환경에 맞추어 추위를 이겨 냅니다. 인간인 우리도 마음의 겨울을 맞이할 때 겨울잠에 빠지는 양상을 보이는 듯합니다. 동물들이 혹독한 추위에 맞서 겨울잠에 들듯 사람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우울을 경험할 때 오랜 시간 잠에 드는 게 아닐까요?
그런데 오랫동안 우울에 잠식된 사람은 즐거움을 느끼는 활동을 찾아내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과거에 좋아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면 좋습니다.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불안했던 마음이 줄어들었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은데…’, ‘초록빛 식물들 사이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아’하고 말입니다.
저는 상담 현장에 있다 보니 심각하게 자살 기도를 한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그럴 때면 저는 아주 조심스럽게 무엇이 그들을 다시 살게 했는지를 물어봅니다. 모두가 답변을 해 주지는 않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답은 이랬습니다.
”그 순간 문득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그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 혹은 그저 인사하며 지나갔던 옆집 누군가이기도 했습니다.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자신을 살린 것은 ‘그저 누군가’라는 하나의 존재였다는 말이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를 살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닙니다. 그저 내 옆에 있는 누군가 한 명, 나를 생각해 주는 누군가, 혹은 내가 지켜야 하는 누군가 그 존재만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한 곳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처럼 화가 나고 불안해지는 이유는 대중교통에서 누군가가 시끄럽게 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규칙과 규율 때문일 수 있습니다.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돼’, ‘실수해서는 안 돼’,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돼’,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야 해’, ‘거짓말을 하면 안 돼’,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해’처럼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 같은 규칙과 규율은 우리를 사회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런 규칙이 마음속에 너무 많이 자리 잡은 사람은 불안과 화를 더 쉽게 경험합니다. 지킬 규칙이 많다 보니 지키지 못할까 봐 불안하고 지키지 못하면 화가 나는 것이지요. 완벽주의를 가진 사람은 지켜야 할 규칙이 많습니다. 그들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고, 모든 영역에서 좋은 사람이고 싶기 때문에 마음속의 규칙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공황의 생리적인 부분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심리적인 부분을 다루겠습니다. 저는 공황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공황은 마음에 과부하가 걸려 몸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과부하란 ‘정해진 범위를 넘어서 버티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실제 나는 심리적으로 부담이 너무 커서 버티지 못하는 상황인데, 스스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몸이 경고해 주는 것이 공황입니다. “지금 간당간당한 상태이니 조심해. 스트레스를 줄이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날 거야!” 하고 말입니다. 만약 이유 없이 어떤 신체적인 증상이 지속되거나 강렬한 불안을 느낀다면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기 바랍니다. 오직 나만이 내 마음의 역치를 알아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지 행동 치료의 최신 흐름인 수용 전념 치료는 내담자의 심리적 수용과 유연성을 증진시키는 접근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 기억 같은 내적 경험을 바꾸려 하기보다 사람들이 경험에 반응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의 인지 행동 치료와 차이가 있습니다. 경험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고 통제하려 노력하기보다 행동 변화 과정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때문이지요. 쉽게 말해 고통스러운 부정적 감정에 저항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이를 기꺼이 수용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가치와 목표를 실현하는 데 전념하도록 만드는 것이 치료의 핵심입니다.
“주님,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화로운 마음을 주시고,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그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주시며, 또한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 혹은 라인 홀트 니버의 말로 알려진 기도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일들에 이런 지혜와 용기, 평화로운 마음이 생긴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이 기도문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유전학자인 클로드 로버트 클로닌저와 동료들이 심리 생물학적 인성 모델을 기반으로 개발한 ‘기질 및 성격 검사TCI’를 소개할 때 자주 사용되는 문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에는 우리의 생각에 따라 익숙하게 움직이는 회로가 있습니다. 생각이 자동적으로 그 방향으로 흐르는 특정한 길, 즉 마음의 길이 있지요. 새 물길을 만들려면 물길이 난 흙을 고르게 마녀 모든 흙이 물을 골고루 흡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처럼 균형 잡힌 건강은 생각을 가지고 싶다면 생각의 회로에 난 마음의 길도 고르게 만져 주어야 합니다. 즉 뇌에 다양한 회로를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우울한 사람들은 뇌의 부정 회로가 선명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하지요. 우울은 뇌의 부정 편향을 만들어 냅니다. 부정 편향은 또 부정적인 기분 편향을 만들어 내 더욱 강화됩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부정 편향의 뇌를 가진 사람이라면 시들시들해지지요. 부정 편향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긍정 회로를 의식적으로 돌려야 합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부정회로를 따라 흘러가려고 할 때 잠깐 멈춰 ‘다른 길로 가야지!’ 하며 일부러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길은 어느 방향으로 나 있나요? 부정적인 생각들로 마음의 길이 깊게 나 있어 어떤 상황에서든 마음이 그 길을 따라 자동적으로 흐르지는 않나요? 혹은 나도 모르게 생각의 흐름이 불안으로 흘러가고 있지는 않나요? 흙 속 물길을 다져 주듯, 내 마음의 길을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꾸어 줍시다. 긍정적인 자기 충족적 예언이 이를 도와줄 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예언은 결국 현실에서 실현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다행히도 애착은 회복이 가능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애착의 유형이 바뀔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월린은 안정 애착이 형성되는 세가지 경우를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 부모와 좋은 경험을 했을 때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다행히 어린 시절의 경험을 통해 안정 애착을 가진 분도 있겟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많을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었으니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성장하면서 안전 기지 역할을 해 주는 제2의 애착 대상을 만났을 때입니다. 성장하며 경험하는 관계를 통해 다시금 안정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내가 달려가 안심하고 머무를 수 있는, 나의 마음을 안전하게 나누며 재충전해 주는 존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대상으로는 친구나 연인, 배우자나 상담가가 대표적이지요.
혹시나 그런 사람이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사람만 애착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 나에게 그런 사람이 없다면 안전 기지가 될 만한 일이나 취미를 찾아 안정을 취하면 됩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운동을 하거나 영화관에 가는 사람들, 꽃을 보러 가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안전 기지를 만드는 중입니다.
저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기 어려운 순간에는 식물이 가득한 꽃시장에 갑니다. 이곳은 언제든지 나를 환영해 주고 내 마음을 안심시켜주며 나를 재충전해 주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애착 대상은 가까운 사람이어도, 일이어도, 동물이나 식물이어도, 물건이어도, 혹은 나 자신이어도 좋습니다. 내가 나에게 안전 기지가 되어 주면 나와의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과 신뢰를 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 번째 방법입니다. 안정 애착은 스스로 정신화 과정을 훈련할 때 형성됩니다. 정신화는 나와 타인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는 능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정서, 욕구 같은 마음 상태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해석하는 힘입니다. 우리는 정신화 과정을 통해 내 마음 상태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도 이해하고, 현와 과거, 미래의 경험까지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마음과 과거의 경험을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 바로 정신화 과정입니다. 정신분석가 포나기는 초기의 애착 경험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성찰하는 정신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 정신화 능력을 키우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커져서 안정형의 사람이 되어 간다는 것이지요.
나를 보호하는 과정은 경계를 세우는 일로 시작합니다. 나를 해치는 관계를 잠시 멀리하는 단계부터 망리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내가 경계를 세우고 관계를 멀리하면 관계가 끊어질까 봐 걱정합니다. 때로는 누군가를 거절하고 미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경계를 침범한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애써 봐도 미워하는 마음이 깊이 남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충분히 미워해야 다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보호하면서 내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고 마음에 여유를 찾아야 합니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경계를 허물어 상대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관계에서 상대의 반응을 신경 쓰면서 상대방의 반응까지 통제하고 싶어 합니다. 즉 상대의 반응까지 고려해 내 행동을 조절하려 하지요. 이런 사람들은 나연 씨처럼 배려심이 깊고 사회적인 감수성이 높습니다. 평화롭고 조화롭게 오래오래 핑퐁 게임을 하려는 사람들이지요. 그런데 이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관계라는 탁구대에서 지치지 않고 게임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는 오직 핑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퐁은 내가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없습니다. 즉 내가 핑을 잘 보냈다고 해서 퐁이 잘 돌아오리라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나의 핑에 분노나 짜증, 무시로 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나의 핑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요. 혹은 상대가 성심껏 받아친 퐁을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나연 씨는 어떻게 해야 상대가 공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을지도 고민해서 아주 성의껏 핑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핑을 할 때도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들겠지요. 이렇게 상대의 퐁까지 고려해서 성심성의껏 핑을 보냈는데 퐁이 잘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핑을 잘 보내도 퐁을 잘 전달해 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물론 퐁이 잘 돌아오지 않을 때는 속상할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훈련이 바로 ‘나에게 집중하기’입니다. 상대방의 퐁에 집중하기 보다는 나의 핑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나는 내 핑만 잘 쳐 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연습입니다. 또 다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데 그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 받았다면 이것은 잘못된 행동인가요? 마찬가지로 누군가 악의를 가지고 행동했지만 상대방이 이익을 얻었다면 이것은 좋은 행동일까요? 사실 결과는 내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이미 내 손을 떠났으니 내 몫이 아니지요. 내가 오롯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의도뿐입니다. 나의 ‘의도’가 아니라 ‘나의’ 의도 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선한 결과를 위해, 타인과의 관계를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혹시 관계에서 내 기대만큼 따뜻한 퐁이 돌아오지 않아 속상한가요? 더 나아가 마음이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졌나요? 그렇다면 한 가지를 기억하세요. 바로 관계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핑을 던지는 여러분 덕분에 세상이 따뜻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여러분의 손을 떠난 공이 어떻게 돌아올지, 어떤 결과가 여러분을 찾아올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계속해서 나의 핑을 잘 던져 봅시다. 나의 핑을 받은 누군가가 같은 마음으로 퐁을 잘 던져 줄 때를 기분 좋게 기대하며 말이지요.
‘나’는 여러 정체성으로 구성됩니다. 어느 회사의 직원이라는 정체성, 사회 구성원이라는 정체성, 남편이라는 정체성, 아빠라는 정체성, 어머니의 아들이라는 정체성, 여동생의 오빠라는 정체성, 대학 동창 모임의 총무라는 정체성, 중고등학교 동창의 친구라는 정체성, 등산 동호회 회원이라는 정체성 등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나의 정체성에 ‘어느 회사의 직원’이라는 모양만 있다면 은퇴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나라는 사람 전체를 상실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모양으로 나를 규정해야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려도 다른 정체성들이 나를 튼튼히 보호하도록, 아빠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려도 누군가의 친구라는 정체성이 나를 보호하도록 말입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제가 희망을 품고 말하면 종종 저와 이야기 나누던 내담자들도 삶의 희망을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시작으로 내담자 스스로가 끝끝내 사랑과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며 삶을 기대하는 순간까지 바라보곤 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을 쏟아내는 풍경을 마주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가 상라가는 세상이 슬픈 세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러분이 이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들을 던져 내기 바랍니다.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경험해싸는 거세 의미를 두며, 계속해서 미래를 기대하고 희망을 품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저는 제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슬픈 세상에서 기쁜 말을 계속 던져 주세요. 슬픈 세상 속에서 우리가 던져 내는 기쁨들로 가득한 풍경을 만들어 봅시다.
우리는 과거에 머무는 시선을 현재로, 그리고 미래에 떠도는 시선을 현재로 옮기는 방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냥 본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여러분은 고개를 들어 마음의 시선을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이 순간을 느끼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평온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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