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다. 혹시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라면 그럴지 몰라도 말이다.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과거의 이미지다. 그 이미지는 흔히 신화 못지 않게 고도의 구조를 가지며 선택적이다. 과거의 이미지와 상징적 구성물들은 거의 유전정보처럼 우리 감성에 새겨진다. 새로운 시대 각각은 앞선 시대를 묘사한 그림과 생생한 신화에 자신을 비춰 본다. 조지 스타이너, 『푸른 수염의 성(Blue beard's Castle)』(1971)
빈에서 겪은 과거는 내 뇌의 신경세포들에 어떻게 영구적인 흔적을 남겼을까? 내가 장난감 차를 몰고 다녔던 아파트의 복잡한 3차원 공간은 내 뇌가 가진 내 주위의 공간적 세계에 대한 내적 표상에 어떻게 얽혀 들었을까? 공포는 그때 우리 아파트의 문을 두드리던 소리를 내 뇌의 분자적·세포적 조직에 어떻게 각인시켰기에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도 나는 그 경험을 시각적·감각적으로 생생하고 상세하게 재생할 수 있는 것일까? 한 세대 전엥는 대답할 수 없었던 이런 질문들이 새로운 정신의 생물학에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분자생물학은 유전자가 대물림의 단위이며 진화론적 변화의 추진력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유전자가 만든 산물인 단백질이 세포 기능의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생명 과정의 근본 요소들을 탐구함으로써 모든 생명 형태들의 공통점을 밝혀냈다. 분자생물학은 20세기에 대혁명을 겪은 또 다른 과학 분야인 양자역학이나 우주론보다 더 강력하게 우리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왜냐하면 분자생물학은 우리의 일상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우리 정체성의 핵에,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의 핵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과 영성이 뇌라는 물질적인 기관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일부 사람들에게 낯설고 놀랍다. 그들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계산 기관이며, 어떤 신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기관 자체의 복잡성에 의해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 한다. 뇌의 불가사의한 능력은 신경세포들의 엄청난 개수와 다양성과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뇌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행동에 실험적 연구 방법들을 적용한다 해도 정신은 그 힘이나 아름다움을 전혀 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자들은 정신이 뇌의 구성 부분들과 활동들을 기술하는 환원주의적 분석에 의해 사소한 존재로 전락하리라는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생물학적 분석이 정신의 힘과 복잡성에 대한 우리의 존경심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실제로 행동주의 심리학과 인지심리학의 통합, 그리고 신경과학과 분자생물학의 통합에 의해 새로운 정신과학은 진지한 사상가들이 수천 년 동안 고민한 철학적 질문들을 다룰 수 있다. 정신은 세계에 대한 앎을 어떻게 얻는가? 정신은 얼마만큼 대물림되는가? 선천적인 정신 기능이 우리로 하여금 세계를 정해진 방식으로 경험하게 하는가? 우리가 학습하고 기억할 때 뇌에서 어떤 물리적 변화들이 일어나는가? 몇 분 동안 지속되는 경험이 어떻게 평생 유지되는 기억으로 전환되는가? 이런 질문들은 더이상 사변적 형이상학의 전유물이 아니다.그것들은 이제 생산적인 실험적 연구의 영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