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철학 에세이

minseok
미디엄에서 보낸 에세이 https://blog.medium.com/maybe-what-youre-feeling-is-automation-anxiety-2b230440a385 에서 이런 댓글을 봤어.
The consciousness just is, and the border between AI and humans is just an illusion, though helpful. However, humans can observe an everlasting oscillation between a code and a matter.
의식은 그저 '있는 것'이다. AI와 인간 사이의 경계는 사실 환상이지만, 유용한 환상이라는 거야. 하지만 인간은 코드와 물질 사이의 영원한 진동/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이 댓글을 읽고 메를로 퐁티의 살 존재론이 떠올랐어. 메를로 퐁티가 말한 '살'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개념이잖아.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이 서로 얽혀있고, 그 사이에서 계속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거지. 그러면 이 댓글에서 말하는 '코드와 물질의 진동'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 AI(코드)와 인간(물질)을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보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변화하는 하나의 '살' 같은 존재로 보는 거지. 특히 "border between AI and humans is just an illusion" 이라는 부분이 메를로 퐁티의 관점이랑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실제로는 없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2016년에 alpha-go가, go 선수인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둘때, 결국 alpha-go가 이겼던 그 첫 날에 철학과 강의실에 있었거든. 컴퓨터공학 학생이 철학과 복수전공을 하며 철학과 수업을 듣고 있던 거야. 의미심장하게도 윤리학 수업 중이었지. 수업이 시작할 때 교수님이 오늘 알파고와 이세돌9단의 대국이 있다면서, 아주 큰 사건이라고했지. 어느 쪽이 이길것인가에 대해서.
그리고 수업을 한참하고 쉬는시간이었어.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학생들이 한 둘 교실로 돌아오고, 수업을 시작하려는 무렵에 한 학생이 교수님에게 말했어.
'교수님.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나는 그 순간 강의실에 느껴지던 그 공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 아마 내가 지금 기술 철학을 공부하고, 사회혁신과 기술을 잇는 일을 하게 된 건 그때의 공기 때문일지도 몰라. 그 때의 공기는 뭐랄까. 두려움, 불안함. 항상 무표정이시던 교수님도 그 학생이 소식을 전했을 때 잠깐 흔들리는 표정이 보이기도 했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는 어떻게 변해갈까? 하는 그 마음.

며칠 전에 바둑 방송을 즐겨보는 아빠 옆에서 바둑 중계 방송을 봤는데, '인공지능 수 대로 잘 두고 있네요.' 와 같은 해설이 들려오더라.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로, 2022년 ChatGPT이후로 분명히 변해가는 상황 속에서, 내가 원하는 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변화에 휩쓸려가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그 기술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더 많이 그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우리는 어떤 기술을 만들고 있을까? 이 기술이 가져오는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까? 아니 미래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기술로 지금의 나를, 현재의 우리를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그 영향력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그 책임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 하는 것들.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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