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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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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상문
빗방울이 땅을 추적이는 계절이 왔습니다. 이럴 때면 세상의 소리도, 향기도 평소보다 짙어지곤 하죠. 그 감각에 몸을 맡기고 있자면 몸이 나른해지기도 합니다.
오늘의 꿈에는 이 작품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앵두꽃》
이 세글자로 이루어진 꿈에서 깨고 나면, 아마 울먹이고 싶어지겠죠. 그래도 가능한 한 만나고 싶습니다. 잊지 못할 만큼 퍽 아름다운 꿈이 될 테니까요.
[유려한 문장: 과감하게 뻗은 꽃가지.]
《앵두꽃》은 소설이나, 그 갈래를 '수묵화'로 규정해도 좋을 만큼 유려한 작품입니다. 절도있게 뻗은 문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눈이 즐겁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죠. 즉, 문어체의 미학을 극대화 시킨 작품이지요.
잘 갈아놓은 먹에 붓을 푹 찍어, 화선지를 힘차게 가로지른 자국. 그것이 스러기님의 소설 《앵두꽃》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전기수를 닮은 문체: 가슴에서 부서져 내리는 꽃내음]
그러나 《앵두꽃의》 대단한 점은, 문어체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도 구어체의 흥겨움을 함께 가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옛적, 장마당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책을 이야기를 들려주던 직업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전기수. 지금으로 따지면 오디오북 낭독자, 어쩌면 스탠딩 코미디언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곳저곳에 낭자한 전기수의 발자국을 따라가 보면, 그 중 하나는 앵두꽃 나무 아래 있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앵두꽃》을 들려주려는 목소리도 함께 말이에요.
소설 《앵두꽃》의 전기수는 참 신묘한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독자는 초아로, 독자의 곁에 있는 바람은 가령으로 만들어 주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독자가 기어이 가령의 무릎을 베고 잠들게 만듭니다. 앵두꽃이 두 어 송이쯤 피었을 때 감겼던 눈꺼풀은, 흐드러지는 꽃내음에 파들거리며 깨어날 것입니다.
마치, 한낮의 꿈처럼,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맙니다. 남은 것은 울컥이는 가슴과 이름 모를 이에게 질펀하게 짓밟힌, 앵두꽃 향기 뿐.
《앵두꽃》은 꼭 그러한 이야기였습니다.
솜씨 좋은 전기수가 들려준 이야기 덕분에, 저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고 꿈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아이처럼 울먹이고 싶어졌답니다.
[대사: 작지만 찬란하게 피어난 꽃송이]
《앵두꽃》의 대사들은 한 사람에게서 태어났으나,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초아에게서는 천진하면서도 현실적인 인간의 목소리를, 가령에게서는 성숙하면서도 몽환적인 흡혈귀의 목소리를 자아내지요.
저는 가령의 대사와 독백이 무척 좋았는데요.
"희란, 그대의 방에 다른 인간을 들였소."
라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삼키고 말았답니다.
가령의 대사는 하나하나가 씁쓸함과 갈등을 잘 보여주는데 이게 참 좋았어요. (현실에서 이전 연애에서 실패한 연상이 정말로 할 법한 고민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정말 특히 좋았습니다. 이건 아마 제가 GL을 좋아해서 더 그런 듯합니다.)
마지막에 '잔인함'에 관련하여, 희란과 가령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무척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직전 장면에서 가령이 무슨 결정을 했는지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연출이 포함되어 있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감정선에 대하여]
걱정하신 부분에 대해서도 유심히 살펴 보았습니다. 사실 저는 초아의 연심에 대해서는 급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령과 같은 비현실적인 미인을 만났으니 순식간에 빠져드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사랑이란 으레 그러하기도 하니까요.
다만, 가령의 연심에 관해서는 중간 단계가 더 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 가령의 감정은
호기심(신기함)
➡️당혹스러움
➡️수용
➡️애틋
➡️배신감
➡️애틋함"
으로 진행되고 있는데요.
당혹스러움과 수용 사이에, 가령이 내적으로 갈등하는 장면, 더불어 가령이 초아를 결정적으로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조금 더 들어간다면 더 멋진 감정선을 자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를 테면,
1️⃣ 글 중간중간 희란의 존재를 의식하는 복선
2️⃣ 초아의 행동을 보고 멈칫하거나 갈등하는 장면
3️⃣ 가령과 초아의 관계를 점화시킬 만한 사건 1~2개 추가(초아가 가령의 역린을 건드리는 포인트)
이런 점을 고려해 보시길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이러한 점은 단편이라는 분량의 한계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예상되며, 작가님께서는 단편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여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 의견은 그저 참고만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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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내음에 가슴이 아릿해지고 마는 소설 《앵두꽃》덕분에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작가님께서 계속 글쓰기를 이어 나가시길 고대하겠습니다.
N극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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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1)
앵두꽃은 벚꽃과 피어나는 시기가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승에서 범인들이 맺는 사랑은 벚꽃,
신선계 혹은 삼도천이라는 경계를 두고 서로를 끌어안고자 하는 초아와 가령의 사랑은 앵두꽃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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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2)
아 참. 신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작품을 완독하고 출근행 전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스크린도어 앞에 이희란 시인의 시가 쓰여져 있지 뭐예요? 제가 희란이를 사랑하게 된 건 또 어떻게 아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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