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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감상문
(위는 이전에 제가 쓴 감상문 링크입니다. 이번 감상문에서는 위에 적은 내용은 빼고 작성했습니다.)
사실 저는 이전에 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감상문도 썼어요. 올해 우리 모임의 첫번째 글이었던 저의 앵두꽃과 같은, 한국풍 흡혈귀 선비 앤솔로지에 실린 글이었기 때문이죠. 다른 작품들은 원본 글이 사라져서 다른 분들의 글이 포함된 pdf를 공유드릴 수 없어 아쉽지만, 트위터(현 X)에서 유명한 글숨봇님이 주최하신 앤솔로지였어서 아마 우리 모임에 계신 분들 중에서도 이 온라인 회지의 글을 감상해보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특히나 N극성님의 글인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는 당시 메인 표지로 들어가있어서 작품의 감성이나 분위기가 뇌리에 더 진하게 박혀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N극성님이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셨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트위터에서 간간이 소식을 접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사연을 알고 있습니다만, 절필 생각까지 하고 계신 줄은 몰랐어요. 왜냐하면 제가 느끼기에 극성님은 누구보다도 더 이야기를 사랑하고 글쓰기에 열정이 있는 분이셨거든요. 물론 그게 언제나 글쓰기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주지 않는다는 건 같은 글 창작자로서 정말 잘 알고 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막연하게 그리고 가볍게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하잖아요.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절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구나. 그러니까 뭐랄까요… 세계적인 인기 작가가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하면 왜? 그 사람 글 잘 쓰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요. (모임장으로서 사적인 감정을 자꾸만 드러내서 죄송합니다.)
맞습니다. 저는 지금 투정을 부리고 있어요. 극성님이 계속 글을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극성님만의 이야기를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는 다시 읽어도 심각하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뒷이야기가 궁금하고 이 장의 끝을 붙잡고 놓아주고 싶지 않고 더 달라고 애원하고 싶으니까요. 이미 애원하고 있지만요. 글 그만두지 말고 계속 써달라는 요구에만 거의 600자를 쓰는게 무슨 감상문인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여기까지만 하고 이제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의 재감상 후기를 써보겠습니다. 이전 감상문에서 인물의 심리 분석 위주였으니 이번에는 문체와 표현 위주로요.
1.
도입부
N극성님의 글은 도입부에서부터 읽는 이를 등장인물들의 세계 속으로 확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과하지 않을 정도의 정보값을 제공하죠. 이번 참가 작품인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 말고 지난 번에 참가했던 〈시스터 그레텔은 어머니의 처음을 가져갔다〉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두 작품의 도입부는 표현 방식이 다르긴 합니다. 이전 작품은 편지글로 시작했었고, 이번 작품은 두 사람을 관찰하는 시점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얼핏 보기엔 무척이나 다르게 느껴지는 이 작품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작품의 내용과 분위기에 걸맞는 방식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적절한 도입부를 쓰는 것은 분명한 재능이지요. 많은 분들이 매력적인 도입부를 쓰는 데에 오래도록 고심을 하곤 하니까요. 심지어는 모든 글이 완성된 이후에도 첫 문장을 어떻게 써야할까 고민하기도 하고요.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는 달빛이 비추는 담장 아래 입을 맞추는 두 사람을 조명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내가 그 두 사람의 밀회를 훔쳐보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키죠.
신윤복의 월하정인이라는 그림을 아시나요? 아마 너무 유명한 그림이라서 조선 미술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은 보셨을 거예요. 희미한 달빛이 어린 담장 아래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등불을 손에 든 선비 하나가 은밀하게 만나는 그 그림이요. 그 그림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죠.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월침침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 달빛 흐린 밤 삼경에,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이 안다는 뜻입니다. 월하정인은 후대 사람들에게서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불륜일 것이다, 여인은 기생이다, 아니다 기생은 아니고 그냥 밤 늦게 만나야 하니 은밀히 만날 것이다…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의 도입부를 봤을 때 저는 월하정인을 떠올렸어요. 그러나 이 글의 도입부가 좀 더 매혹적이고,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좀 더 서늘하며 위험한 느낌이 듭니다.
여름, 장마철, 밤, 비, 달빛, 능소화. 얼핏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때맞춰 나타난 정혼자와 당황은커녕 선비를 연모한다며 당당히 파혼을 입에 올리는 소혜. 상황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질적이고도 도발적이죠. 비가 와서 소리가 묻히면서도 한밤중에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정혼자인 욱재의 모습은 또렷이 보일 정도로 달은 밝습니다. 뒤이어 나오는 장면을 보면 독자는 욱재의 현장 목격이 소혜의 의도였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쩐지 월하정인의 글귀가 떠오르더라고요.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
2.
구성과 표현
물론 이 정도의 도입부를 쓰려면 뒷받침되어야하는게 있죠. 구성과 표현입니다. 네? 그냥 완벽하다고 얘기하라고요? 아잇 그렇긴 한데요… 일단 들어보세요. 표현 쪽이 좀더 가볍게 끝나니까 거기부터.

여기서 저는 N극성님의 글이 무작정 탐미적이라거나 만연체라거나 하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간략하고 호흡도 긴 편은 아니죠. 제가 여기에서 말하려는 점은 N극성님이 장르에 걸맞는 표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같은 사람이 쓴 글인데도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와 〈시스터 그레텔은 어머니의 처음을 가져갔다〉는 각각 N극성님 글 특유의 감각적인 분위기나 관찰력은 살아있으면서 세밀한 단어나 어미, 표현 등이 확 다르죠.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은근히 그런 걸 잘 못 하는 분들이 많거든요. 두 작품 모두 일반적인 장르가 아니라 더더욱요. 뭐라고 말하는 게 제일 적합할까요… 쫀득하다? 입에, 아니 눈에 착착 감긴다? 감칠맛이 있다?
다음으로 구성에 대해 이야기해볼까요. 이렇게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단편 분량 이상의 소설은 독자와 정이 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도입부의 매력과는 별개로, 전체적인 구성으로 볼 때 초반에 그냥 정보를 풀어주는 건 소설이 아니라 기사문이죠.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글을 쓸 때 참 어렵고 난감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소설이라고 하는 건 내가 머릿속에서 그려낸 장면과 내가 짜둔 방대한 양의 설정을 필요한 부분만 카메라로 찍어서 관객에게 보여주듯 글로 표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결말까지 모든 것을 설계하고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과하지 않은 속도로 풀어내면서 긴장감은 놓치지 않도록, 그러니까 이 뒤의 이야기가 궁금하도록 하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는 항상 이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너무 다 풀어놓으면 이게 소설인가 싶고, 그렇다고 너무 감추면 작가 혼자만 알고 세상 사람들은 다 모르는 얘기를 쓰게 되니까요. N극성님은 그 중간을 딱 잘 찾아서 글을 구성해주셔서 글이 탄탄하게 느껴집니다.
3.
소재와 장치
N극성님은 소재나 장치를 참 잘 활용하십니다. 여기서 잘 활용한다는 말은, 막 전면에 드러내놓고 이것이 상징! 이것이 두 사람의 무언가를 암시하는 소재! 세상 사람들 여기 보세요! 여기가 중요한 포인트예요!! 하고 외치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은은하게 배치해두고 글을 다시 읽어보거나 인물들의 심정을 파악했을 때서야 비로소 독자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끔 하였다는 뜻입니다.
위의 구성 부분하고도 이어지는 점인데요.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너무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면 왠지 읽기 싫어지죠. 〈선비는 능소화를 아는가〉는 그렇지 않아요. 일단 스토리가 재밌습니다. 어쨌든 소설은 재미가 있어야하니까요.(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개그, 코미디에서 오는 그 깔깔거리고 웃게 되는 배꼽 빠지는 뭐 그런 부류 그런 게 아니라 그…아시죠?)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소재나 장치도 챙겼다는 점이 중요한 거예요. 인물의 양상이나 상징, 소재에 글이 잡아먹힌 게 아니라 읽을 때 너무 즐거웠는데 왜 그랬지 다시 읽어보니 와, 이렇게 촘촘하다고? 싶어지는 그런 거 말이에요. 주변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모르셨을 수도 있는데, 이거 꽤 어렵습니다. 그 말은 뭐다? N극성님은 그걸 다 해내고 계셨다~!
후루룩 쓴 감상문이라서 두서 없게 느껴지고 제가 말하려는 바가 잘 전달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아니겠지요?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디 글을 계속 써주세요. 힘들면 조금 쉬셔도 좋지만, 아니 그래도 너무 오래 쉬지는 마시고…(?) ㅎㅎ 농담입니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언제고 펜을 잠시 내려두는 것도 괜찮죠. 그렇지만 여기 작가님의 글을 사랑하는 독자가 있다고,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주시면 좋겠어요. 다시 한번 잘 읽었습니다.
(노션에서 글을 복사해 붙여넣기 했더니 서식이 망가져서 글을 수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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