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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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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디올-우리가 할일, 오직 기도
비즈니스를 할 줄 모르는 우리는 두 달 동안 정말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사업을 홍보하는 것도 쉽지 않아 매일 좌절하는 상황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저희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더디고 서로의 소통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진정(경진, 은정) 부부와 디올(디마, 올랴) 부부는 매주 한 번씩 만나 기도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매주 주일 저녁, 함께 저녁을 먹으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지를 나누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서로에게 큰 힘이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친절하게 응답하시는지, 기도하면 바로 예약이 들어옵니다. 우리들이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며 신실하게 따르도록 한 걸음 한 걸음 가르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초보 비즈니스맨인 우리가 걸을 수 있도록 우리의 두 손을 친히 붙잡고 걸음마를 가르치십니다. 그렇게 진정디올은 한 발짝씩 떼고 있습니다. 그의 마을에서… Jinjung Diol in Hisville.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바라보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발걸음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여정에 많은 기도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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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맡기신 시간속에서 순종하며 가는 길-사명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품고 가는 길 11월 4일은 올랴 선교사님의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는 날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아이가 나오면 엄마의 품에 안고 하늘로 보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였습니다. 맡겨진 시간까지 아이를 기다리며 품고 있는 선교사님 부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느 날은 아이의 움직임이 잘 느껴지지 않아 춘천에 있는 병원에 가서 심장 소리를 듣고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어 급히 서울 아산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입원 절차를 밟으면서 병원 측은 이미 아이가 사망했음을 확인해 주었고, 결국 사산과 화장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아이를 보냈습니다. 사랑으로 품고 기다렸던 아이 올랴 선교사님 부부는 주님이 맡겨주신 생명을 온 마음으로 품고 9개월을 보냈습니다.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맡기신 대로 순종하며 그 여정을 지켜냈습니다. 그 깊은 믿음은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믿음이란 단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모습으로 지켜지고 다져지는 것임을 그들의 모습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한 생명을 사랑으로 품고 지키며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긴 그들의 결단과 성숙한 믿음을 보며,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서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기도와 위로를 전하며 이후에 이어질 일들 가운데 올랴 선교사님이 몸과 마음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이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곁에서 함께하며, 그 믿음의 길을 같이 걸어가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과 그들의 인생에 함께하실 것을 믿으며, 그들이 겪는 고통 속에서도 주님의 따뜻한 위로가 느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 올랴 선교사님 부부의 모습을 기억하며, 저 또한 그 믿음을 본받아 흔들림 없이 걸어갈 수 있기를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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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이 독립하다!
2019년, 추운 겨울날. 짐 하나를 들고 갑자기 우리 집에 나타난 명명이. 부모도 없이,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아 어느 나라에도 존재이력 조차 없던 그 아이는 중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넘어와 우리 집에 맡겨졌습니다. 이제 함께 지낸 지 6년째가 되었습니다. 명명이와의 첫 만남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된 전쟁 같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릴 때 겪은 큰 사건들로 인해 깊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던 그 아이와 함께하는 삶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을 함께 겪으며, 서로 많은 갈등과 어려움을 맞닥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극복해왔습니다. 이제 명명이는 고3 졸업을 앞두고 취업도 하여 서울로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어와 한국어 두 가지 언어에 능통한 덕분에 취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동안 함께한 과정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그 아이의 마음속 상처와 아픔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때로는 주님의 사랑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때때로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아이를 길러낸 것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 아이가 성인이 되어 이제 자기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은혜가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었음을 깊이 깨닫습니다. [5년간 명명이와의 추억 포토스토리] 11월, 큰 딸도 결혼하여 독립하고 명명이도 취업해서 독립하게 됩니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많았지만, 이렇게 한 걸음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시원섭섭한 감정이 밀려옵니다. 남편이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한 그 한마디에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명명아, 너의 앞날에 무엇이든 펼쳐지길 기도할게. 네가 언제든지 힘들고 지칠 때, 너의 부모로서 작은 언덕이 되어줄 테니 언제든 연락해. 너의 길을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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