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22 정우중 서평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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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서평 <박돌의 죽음> 최서해
작가 소개 최서해 (1901~ 1932) 가난으로 소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그는, 『청춘』이나 『학지광』 같은 잡지를 읽으면서 독학으로 문학 수업을 하고 이들 잡지에 투고도 하는 등의 습작기를 보냈다. 1918년 간도 등지를 유랑하면서 나무장사‧두부장사‧부두노동자‧음식점 배달꾼 등 최하층 생활을 경험하는데, 이 체험이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1924년 초에 단편 소설 「토혈」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것을 계기로 상경한 그는, 10월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고국」을 발표했다. 1925년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였고, 여기에 극도로 빈궁했던 간도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탈출기」(1925)를 발표함으로써, 당시 문단에 충격을 줌과 동시에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박돌의 죽음」(1925), 「기아와 살육」(1925)과 같은 문제작을 발표했고, 카프에도 가입했다. 그의 소설들은 모두 주인공의 극빈 상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그 주인공들이 그들을 배태한 사회 제도를 저주하며 부자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무산 계급의 문예’ 창조를 주장하던 당대의 프로문단에서 그 전범으로 환영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많은 단편들을 썼으나, 그 수준이나 경향이 이들 초기 작품의 그것들을 넘어서지 못했고 오히려 수준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그 중 「홍염」(1927)이나 「전아사」(1927) 등은 앞의 것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927년 중반 프로문학의 방향전환 후에 쓴 작품 「갈등」(1928)에서는, 소시민 지식인이 자기 이해 관계와 무산 계급에 대한 동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29년 카프를 탈퇴하였고, 1931년 『매일신보』의 학예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1932년 7월 9일 사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최서해 [崔曙海]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줄거리 늦은 밤 박돌의 어미는 아픈 아들인 박돌이 앓아서 그러니 의원인 김초시를 찾아와 가서 아들 좀 보아달라고 한다. 그러나 의원인 김초시는 돈이 없는 가난한 박돌 어미를 보며 몸이 아파서 못 간다 핑계대고 거부한다. 거부하는 김초시에게 박돌 어미는 약이라도 좀 지어달라고 하지만, 김초시는 마찬가지로 약을 짓는 약종이 모자라서 못 짓는다고 핑계대며 미리 비어둔 약서랍 하나를 꺼내어 보여준다. 김초시의 집에서 나온 박돌 어미는 하는 수 없이 박돌이 앓아 누워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뒷집에서 사는 생원이 나와서 의원에 왜 안 보이냐는 말을 듣고, 사정을 알게 된 생원은 뜸이라도 떠보라 권하지만 무얼 먹었는지 알게 된 생원은 우리집에 쑥이 있으니 그걸로 뜸이나 떠주라며 더럽다는 듯이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 뜸을 뜨던 도중 박돌은 결국 죽게 된다. 절망과 울분에 가득 찬 박돌 어미는 억울하게 죽은 박돌이 환영으로 보이게 되고 환영을 쫓아가던 박돌의 어미는 김초시의 의원으로 들이닥쳐 죽어가는 박돌을 치료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한 김 초시에게 악을 쓴다. 그러다 환영 속에서 김초시가 박돌을 불구덩이에 넣었다고 본 박돌 어미는 김초시를 물어뜯는다.
정우중
소설서평 <수난이대>-하근찬-
작가소개 하근찬(1931~2007) 1931년 10월 21일 경북 영천 출생.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 토목과를 중퇴한 후 수년간 교사 생활과 잡지사 기자를 하였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수난이대」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7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창작집으로는 『수난이대』(1972), 『흰 종이 수염』(1977), 『일본도』(1977), 『서울 개구리』(1977), 『화가 남궁씨의 수염』(1988), 『내 마음의 풍금』(1999) 등이 있고, 장편소설로는 「야호」(1972), 「월례소전」(1973~1975), 「제복의 상처」(1981), 「산에 들에」(1984), 「여제자」(1987), 「은장도 이야기」(1986) 등이 있다. 제7회 한국문학상, 제2회 조연현문학상, 제1회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소시민의 내면 세계에 침잠하던 동시대 대부분의 작가와는 달리 인정과 향토성이 짙은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이 겪는 민족적 수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다. 그리고 역사적 현실 속에 드러난 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강한 고발의 자세를 견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라는 전란 과정을 통해서 민족의 수난을 집약한 「수난이대」, 한국전쟁부터 종전까지를 배경으로 마을 청년들에게 소집 영장을 전하러 온 경관의 배 타기를 거절한 「나룻배 이야기」(1959), 한국전쟁 때 노무자로 동원되어 팔 하나를 잃고 돌아와 얼굴에 흰 수염을 붙이고 극장 광고판을 메고 다니는 동길이 아버지의 이야기인 「흰 종이 수염」(1959), 들고 있는 편지 뭉치가 집집마다 통곡소리를 자아내는 전사 통지임을 알고 냇물에 띄워 보냈다가 해고되는 배달부 이야기인 「홍소」(1960), 한국전쟁이 끼친 파괴적 영향력과 그 문화적 의미를 하나의 상징적 축도로 보여준 「왕릉과 주둔군」(1963), 한국전쟁 직후 격전장이었던 지역 근처 국민학교에서의 불발탄 피해를 묘사한 「붉은 언덕」(1964), 전후 어느 빈민촌의 판잣집과 부잣집의 개집을 견주어 같은 모양의 삼각집들이 일으키는 묘한 갈등을 다룬 「삼각의 집」(1966)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엄격한 구성과 적절한 토착어의 사용으로 소설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근찬 [河瑾燦]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정우중
김유정 <만무방> 소설 서평
저자 소개 김유정은 190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유년기에 부모님을 여의어 그의 유년 시절은 매우 우울하였다. 김유정의 문학 창작 활동은 193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1933년 '소낙비'와 '산골 나그네'를 ,1934년에 만무방을 집필한다. 그리고 1935년에<조선일보> 신춘 문예에 단편 '소낙비'가,<중앙일보>에 '노다지'가 당선됨으로써 문단데 각광 받으며 등단한다. 이어 왕성한 창작력과 빛나는 재질을 발휘하여, 단편'금 따는 콩밭', '떡', '만무방','산골', '봄봄'등을 잇달아 발표한다. 이들 작품은 대개 가난한 농촌 현실 속에서 순박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우지한 인간형을 해학적,서정적인 필치로 그린 작품들로 이후 그의 작품들도 대체로 유사한 경향을 보여준다. 김유정은 1936년 단편 '산골나그네','옥토끼','동백꽃','정조','슬픈 이야기'등을 발표하고 1937년에는 단편'따라지','땡볕','정분',장편 '생의 반려'등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는 20대부터 지병을 얻어 고통을 겪었으며 1937년 29세의 나의로 요절하고 말았다. 줄거리 전과자이자 만무방인 응칠은 5년전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알고보면 남는 것이 남의 빚 때문에 빚더미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 아내와 아들과 함께 몰래 도망나와 결국 아내와 아들과도 헤어져 산골을 돌아다니며 송이버섯을 캐어다 시장에 팔아 근근이 먹고 산다. 그러던 어느날 응칠은 아우 응오를 찾아왔는데 성실한 농군인 응오가 벼를 털지 않고 있었고 그 벼를 닷말쯤 도적을 맞았다. 동생 응오는 아내가 앓고 있는 병을 낫게하기 위해 치성을 올리려하고 응오는 이에 반대한다. 응칠은 벼 도둑을 잡기로 하고 응오네 논에서 짐복을 하다가 범인을 잡았는데, 도둑이 바로 자신의 동생인 응오였고 응칠은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감상 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이다. '우리 역사넷'이라는 누리집에 기고된 (<2) 농촌 사회 내부의 계급 관계의 변화>에 따르면 1930년대 대공황기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정책의 결과로 조선의 농촌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으며 그중 농민들의 현실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라면 농민층의 경제 생활이 매우 악화되었다는 점과 조선의 농촌과 농민의 상태는 이전의 시기에 비해 극도로 악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930년 현재 춘궁 상태에 있는 농가 호수는 자작농 18% 자작 겸 소작38%, 소작농 68%에 이르었다고 한다. 당시 농민층은 이미 기아 상태에 처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이트에서 인용한 당시 한 신문의 기사를 인용하자면
정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