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4/16 소명에 관하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겠는 상황에서라면 어떠한가?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은 현대인은 '너는 네가 되어야 한다'라는 주문으로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내가 무언가가 되어야 할 의무는 당연히 없다 (고 나는 겉으로 믿는다). 나의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철학적 차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가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한 '니가 뭘 알아'식의 반항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자라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꾸준히 무언가를 쌓아 온 사람들이 보이는 열정과 자기만족을 보고 있을 때면 더욱 그렇다. 때로는 교수님이나 선배님들에게서, 때로는 동기나 후배들에게서, 때로는 상상 속의 내 자신으로부터. 내가 그럴 만 한 싹수가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더 그렇기도 한 것 같다. 나는 과거의 시간과 미래의 시간 양쪽의 기회비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종종 '내가 하는 이 일이 나에게 잘 맞는 일인가?' 하고 자문하게 된다. 다행히 지금 하는 일은 잘 맞는다. 생물정보학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 나의 사고방식을 잘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면서 내가 가진 미약한 기술과 미약한 지식을 둘 다 갖췄다는 이유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의 이 미약함이 이에 대한 확신을 옅게 만든다.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발휘하는 분야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조금 더 능동적인 나만의 작은 퍼즐을 풀고 싶다. 방향의 수정은 어느 정도 필요한 것 같다. 내가 능력을 키워서 화살표에 다가갈지, 화살표를 돌릴지는 더 생각해 봐야겠다.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는 현재 할 일에 집중하여 전진하는 데에 쓰는 것이 가장 멀리 가는 방법이다. 기회비용의 과대평가는 내가 가는 길을 의심하는 데에 보다 큰 우선순위를 가져오는 우를 저지르게 한다. 방향을 잘 잡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교수님도 (압도적 재능의 생존편향으로 인한 경우를 제외하면) 얼렁뚱땅 교수가 되는 일이 종종 있으신 데다, 계속 방향을 바꿔 가시지 않는가. 방황에는 끝이 없는 기분이다. 이런 방황을 즐기는 동료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기회비용의 과대평가가 자기확신을 뛰어넘지 못한 탓이다. 이따금씩 모든 걸 벗어던지고 절에나 들어갈까 생각도 들지만, 속세에서 극락을 찾을 수 있어야 진정한 해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시 공부나 해야겠다. 깨달음이 주는 환희는 감각일 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
- 이준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