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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준

12/8 자기검열이란 이름의 병
자기검열의 존재를 물씬 체감하는 한 주였다고 이번 한 주를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실은 참으로 나에게 많은 일이 있던 한 주였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할 민주화 이래 초유의 반헌법적 사태를 겪었고 그로 인한 혼란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 시절 추억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사랑하는 외할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했고 시험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다른 무언가를 위한 글귀를 쓰기 위해 나름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순간순간을 지나며 참 많은 감상과 심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입술과 손끝에 닿았음에도 나는 되도록 꼭 필요한 만큼만의 것, 최소한의 것만을 바깥세상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내 이야기에 다들 얼마나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있는지, 가뜩이나 다들 머리가 아파올 이 시점에 나의 이야기가 남들에게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되지 않을지 의식되어서였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꼭 나름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면 여기가 그나마 낫지 않을까 싶어 끄적여보았다. 조금 더 평안한 날에 못한 이야기들을 할 기회가 오기를 고대하며, 모두들 이번 한 주를 안녕히는 못 지냈더라도 무사히 지냈기를 바란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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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방법론에 대한 고민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칼을 들어야만 한다면 마음먹기에 따라 대상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 대검보다 오로지 타겟의 급소만을 깊숙히 파고들 수 있는 예리한 검을 고르고 싶다. 이러한 판단의 경위가 어디로부터 기인하는지 찾아보고자 했지만 알량한 고결함을 지키겠다는 욕구가 내재해서일지, 칼을 쥠에 있어 작용하는 간절함이 부족해서일지, 디테일에 대한 갈망이 나도 모르는 새 집착으로 전이되어서일지, 혹은 그 밖의 이유일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주저없이 대검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이 요즘 유독 많이 보여서일까, 이러한 나의 생각이 남들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확신이 안 선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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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1110)
결론부터 적어보겠다.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나는 과거에 대한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그리운 과거를 꼽아보라면 고등학교 시기를 꼽을 것 같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말하지 못하는 게 서럽고 부끄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원하는 대로 이룰 수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다름 아닌 건강 측면에서의 자기관리이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났을 무렵 나는 소위 말하는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었다. 내신에 대한 스트레스는 엄청 받았는데 ‘갇혀있다 보니’ 그걸 풀 수단은 마땅치 않고, 식단 관리도 딱히 안 한 채 먹고 싶은 건 다 먹다보니 그렇게 흘러간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이후의 2년 동안에는 사관학교를 준비하던 많은 친구들의 조언과 도움에 힘입어 20kg 가량을 감량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운동을 거의 못하던 고3 시기에도 여전히 큰 요요없이 1년을 지나올 수 있었던 걸 축복이라 생각했다. 그때의 자신감이 뒷받침되어서 그런가, 1학년을 지나온 고등학교 시기의 나는 유독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다. 마음 먹고 무언가를 하면 반드시 이뤄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건강 측면에서의 목표 달성이 더 큰 동기부여가 되어 참 많은 것들을 이뤄낼 수 있었다. 대학에 오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높은 벽을 마주하게 된 나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약해졌다. 대학교에 와서 이뤄낸 것들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아서 점차 과거의 자신감을 잃게 되었다. 자신감을 잃으니 사람이 금방 무기력해지는 게 체감이 됐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버틸 수 있을까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 그런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할 시점에 생활패턴도 많이 무너졌다. 운동을 거의 못하고 잠도 불규칙적으로 자는데 식습관의 균형은 무너지고 불필요한 술도 참 많이 마셨다. 원래는 내년에 군대를 가게 되면 싫어도 건강관리를 하게 될 것 같아 군 복무를 핑계로 미뤄두고 있었는데, 최소 9개월은 남았는데 그 기간을 무기력함 속에 보내고 싶지는 않아 다시 행복했던 시점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시간도 공간도 세상도 모두 바뀌어버렸지만,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몸을 만드는 것보다도 마음을 다시 만들고 싶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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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1103)
본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의 회고를 쭉 읽어보았습니다. 근데 문득 읽다가 너무 앓는 소리만 해댄 것은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 회고를 읽다보면 어쨌든 우여곡절 속에서 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매번 저는 ‘이번주는 뭐가 맘에 걸렸어요’ ‘저는 뭐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라는 투로 회고를 채워대니.. 천주교 신자임에도 성당을 잘 안 다니다보니 신부님께 해야 할 고해성사를 여기에 하는 것 같아서 제가 봐도 좀 그랬습니다. 이에, 지금까지의 ‘경로의존성’부터 어떻게 좀 깨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씁니다. 바빴던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2년여 간의 긴 여정이었던 모의국회도, 버겁고 찝찝한 구석이 있지만 어쨌든 끝난 중간고사도, 한 달 동안 머리를 쥐어짠 연구소 컨텐츠 기획안도 무사히인지는 몰라도 살아서 지나왔습니다. 그거면 된 거 아닐까요? 이제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과의 씁쓸한 타협은 언제까지나 있겠지만, 그래도 생각한 바를 최대한 이뤄보고 싶습니다. 버킷리스트를 나름대로 만들고 있는데,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어 감히 여쭙습니다. “장호준이 하면 가장 의외일 것 같은 일이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이 또한 경로의존성을 타파해보려는 조그만 실험인데, 혹시라도 이 질문에 답을 건네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답변을 최대한 이행해보겠습니다. 이 정도가 이번주의 글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번 주 글에 적은 A와 B를 맞춰보신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 답을 기재합니다. A는 이준석 의원, B는 북한입니다. 나중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기를 고대하며 글을 줄입니다..
  • 장호준
(1021-1027 회고록)
어제 정치학교 강의를 듣고 문득 든 생각입니다 (여기서부터는 해라체로 쓰겠습니다) "인간의 삶은 결국 아이러니의 연속이라는 게 또 한 번 증명이 된 것 같다. 나는 그 아이러니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었는데 정작 나도 그 안에 깊숙히 갇혀있는 존재였다. 정치학교에 ’대중 사이에서 상당히 평가가 엇갈리는 정치인‘ A가 강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접했던 바로 그 시기가 떠오른다. 바로 그 A를 직접 만나기 전부터 닫힌 태도로 접하는 사람들을 보고 사실은 ’이들이 비판하고자 하는 기성정치인들의 자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바로 오늘(토요일), B라는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 자체에 거북함을 느끼는 나와 달리, A에 거부감을 느낀 바로 그 사람들이 나에 비해 개방적으로 B라는 난제를 대하는 것을 보고 ’나도 마찬가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워졌다. 극과 극은 닮는다는 말처럼, A와 B라는 양극단의 소재를 두고 그들과 나는 소름끼칠만큼 닮은 듯하여 이 또한 아이러니의 결과물인가 싶었다. 한편으로는 타인이 갇힌 덫을 이미 확인한 상태에서 나 또한 똑같은 덫에 갇혀있단 걸 인지하지 못한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는 생각에 막막해졌다. 아이러니로부터의 해방은 정말 유토피아적 상상일 뿐일까." A와 B의 정체는…우선은 상상 속에 맡겨두겠습니다. 그동안 ”정답을 알 것 같다“하시는 분들은 제게 온갖 답안을 던져보셔도 좋습니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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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1020 회고록)
또다시 정신없는 한 주였습니다. 모의국회 2차 리허설 준비에 본격적인 시험기간 돌입. 거기에 심지어 모교로부터의 사건사고를 곁들인. 지난 며칠간 저를 혼란스럽게 만든 모교의 일에 관해서는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목소리를 내주시고 계시고, 저 또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이 전공과목 시험인데다 지금까지의 산출물 또한 만족스럽지 않은 퀄리티의 것이기에 시간을 더 달라는 비겁한(심지어는 아무도 관심없을 수 있는) 변명을 하며 아주 잠시 미뤄두려고 합니다. 이에 오늘은 모교에 잠식되어버린 내면을 환기하고자 이번 주에 느낀 또 하나의 시사점을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경로의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는 전공 강의 내에서 수차례 접했을 뿐, 일상대화에서 이를 논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주에 저로 하여금 스스로의 경로의존성에 관해 고민하도록 만든 계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합니다. 모의국회를 준비하다 보면, 각종 요인으로 인해 기존에 준비해오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쓰라리기는 하지만 성장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순간들이죠. 하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주어지는 조건도 전부 천차만별입니다. 무조건 바꾸어야 하는 요소와, 더 나은 연극을 위해 변경을 고려해볼법한 상황으로 나뉘기도 하죠. 지난 몇 주간 이번 가을을 함께한 사람들과 고민한 내용은 주로 후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후자와 같은 딜레마를 대하는 자세가 이토록 천차만별일 수 있구나를 체감했습니다. 가장 큰 범주로 구분하자면, '도전'과 '안정'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를 기준으로 이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모의국회를 거치며 저는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저 두 범주 중에서 후자에 강하게 밀착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자를 좀 더 의연하게 택하는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말을 하면서도 '아 내가 너무 매몰비용에 몰두해있는건가'라는 생각이 수십 번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혁신과 창의의 불꽃을 불태우는 동료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경로의존성 개념에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어제 들은 강원택 교수님의 말씀 이후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 정치문화의 퇴보를 두고 '경로의존성'을 거론하시며 결국에는 87년 체제로 대표되는, 제도적 측면의 경로의존성을 극복해야 한국 정치문화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정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번 주는 문득 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온 것은 지금 제게 뭐가 가장 필요한지였습니다. 저의 경로의존성을 변호할 자신감과 근거(혹은 변명)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경로의존성을 깨부술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결론내리기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머리 아픈 고민이 많은 요즘, 이 고민은 언제쯤 그 실마리가 풀릴까요.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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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1013 회고 추가설명)
글에 적었다시피, ‘잡생각이 떠오르면 바빠져야 한다’는 생각은 고등학교 생활을 버티게 해 준 일종의 기본철학이었다. 그리고 그 잡생각은, 다름아닌 전학에 대한 고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 심지어는 과거의 스스로를 부정하면서까지 가게 된 학교였던 만큼 전학을 택하는 건 일종의 패배선언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나는 전학을 고민하는 내가 싫어서 무슨 회장을 하고 전학을 고민하는 내가 싫어서 무슨 활동을 더 하고 전학을 고민하는 내가 싫어서 어쩌고저쩌고…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새 잡생각에 둔감해지고 이것저것 하게 된 일이 모여 하나의 잘 짜여진 서사가 되는 예상 밖의 그 느낌이 너무나도 짜릿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온 뒤에도 3년 전과 같이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잡생각이 많아지자 그때 기억에 이끌려 똑같은 방식을 택했다. 근데 지금은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든다. 심지어는 ‘내가 생각보다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저 가치관이 물씬 드러내는 것 같아 서럽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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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1013 회고록)
첫 인턴 보고서를 무사히 제출했습니다. N주간의 고민거리였던 정치학교 영상과제도 어찌저찌 끝냈습니다. 준비팀으로서의 첫 모의국회 리허설도 큰 걱정거리 없이 마쳤습니다. 일 측면에서는 바쁘지만 나름대로 해피엔딩을 맞이한 한 주였습니다. 그런데 진짜.. 정말정말 바쁜 한 주였습니다. 45시간을 무수면 상태로 버티는 게 가능하다는 인체의 신비를 체감하게 될 정도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너무 생각이 많아질 때는 잡생각을 덜 하도록 일을 늘리자‘는 일종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방식을 통해 고등학교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대학에 들어왔더니 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어온 관성에 몸을 맡겼더니 여기까지 흘러왔습니다. 근데도 생각은 더욱 복잡해지더군요. 문득 이 방식이 믿어왔던 만큼 지속가능한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방식으로 인해 주변 세상에 둔감해지는 그 느낌이 소스라치게 싫었습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왔다는 소식을 비롯한 각종 이야기에 잠겨있을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 건 생각보다 큰 비극이었습니다. 노래 가사 몇 구절로 이번 주 회고를 마칩니다. "찬바람 소슬바람 산너머 부는 바람 간밤에 편지 한 장 적어 실어보내고 낙엽은 떨어지고 쌓이고 또 쌓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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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0-1006)
몇 주간 몸이 안 좋았다. 할 일은 많은데 몸이 안 따라주는 게 얼마나 답답한 건지 알겠더라. 바쁜 상황 속에서 아픔은 곧 재앙이라는 것을 체감했다. 간신히나마 유지해오던 삶의 리듬이나 박자라는 게 완벽히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이번 주는 그 리듬을 되찾는 데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심지 회고글을 비롯해 후순위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차곡차곡 다시 하고, 다음주부터는 다시 패턴을 찾아갈 수 있도록. 물론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특히 정치학교 과제는 너무 막막하다. 리듬과 박자를 되찾아가려는 과정에서 이번 주에 유독 맴돌았던 노래, 아니 넘버는 뮤지컬 모차르트!의 <나의 음악>이다. 개인적으로 감명깊게 된 뮤지컬이고, 심지어는 그 뮤지컬의 영향으로 인해 오스트리아까지 다녀오기도 했었다. 극중 방황을 겪고 거기서 길을 찾아내기까지의 모차르트의 고뇌를 잘 드러낸 넘버가 바로 <나의 음악>인데, 유독 이 넘버가 곱씹히게 된 이유는 '나의 박자 나의 쉼표 나의 하모니'에 대한 갈망이 유독 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뛰지 않으면 도태되고, 앞서나가려면 남보다 몇 배는 빨리 뛰어야 하는 세상 속에서, 어느 순간 세상과 나의 박자가 안 맞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빨리 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빨리 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보면 때로는 숨이 막혔다. 특히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이를 많이 체감하는 것 같다. 이에 피로를 느껴,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의 나를 만들고 싶어 올해 이것저것 하게 되었는데 오히려 나의 음악은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나에게는 꽤나 낯선 경험인데, 주중에 문득 나중에 여유가 되면 자연 속에 파묻혀 살고 싶어졌던 적이 있었다. 원래 장호준이라는 사람의 노후 로망은 건물이 빽빽한 도심에서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샴페인 한잔씩 기울이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런 생각까지 들게 된 것인지 한편으로는 신기하다. 근데 막상 생각해보면 이런 사고 자체가 아예 처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 인간은 고3 때 정치외교학과에 합격 못하면 차라리 성경공부를 해서 사제가 되겠다는 선언을 한 전적이 있기도 했었으니까. 그때 당시 로망을 돌이켜보면 '조용한 곳에서 맘편히 생각에 잠기고 글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으리라. 근데 지금 비슷한 고민이 들었다는 건.. 체감난이도가 고3에 맞먹는다는 건가? 대2병이라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체감하며 글을 줄인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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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0923-0929 회고록)
케이크에 꽃힌 '2'가 어색했다. 스무살 너머의 인생은 너무 막막한데 너무 빨리 실전이 되어버렸다. 첫 인턴계약서를 생일날에 작성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고는 오랫동안 만나려던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고등학교 이야기를 마저 했다. 아이러니한 날이었다.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던 날. 아직 너무 안락해서 빠져나오기 싫은 10대와 기대는 되는데 딱히 안락할 것 같지는 않은 20대가 만나던 날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아서 행복했다. 선물이나 메시지 그 자체보다도, 정신없을 하루 속에서 잠깐씩 나에게 할애해 준 시간의 존재 자체가 소중했다. '과분하다는' 어휘가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되면 다음번은 없을 거라는 연금술사의 아득한 한 구절이 떠올라 그 생각을 멈추고자 했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마음은 남아서, 축하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했다. 이십 대의 첫 인상은 '정신없다'. 10대에는 내가 온갖 계산과 가정을 하고 그걸 기반으로 경로를 구상하면 대체로 구상한 대로 일이 풀려나가서 뭔가 기분이 좋았는데, 20대에는 세상이 나를 상대로 온갖 계산과 가정을 하고 '어떻게 하면 얘 인생을 좀 더 하드코어로 만들까' 궁리한다는 느낌마저 때때로 든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이 많은 건 일종의 축복이지만, 이들 하나하나에 있어 나도 그들에게 '좋은 사람', '가치있는 사람'인지는 의문이 든다. 이십 대 인생 파훼법은 여전히 어색하고 번거롭고 짜증나고 막막하다. 오랫동안 나는 나 스스로 '애늙은이'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요즘은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남들은 일찍 철이 들었는데 오히려 나만 철들기를 거부하는 느낌? 지난 글에서도 그랬듯이 뭔가 내가 그동안 생각해온 '어른의 사고방식'과는 괴리감이 있는 부분들이 유독 눈에 많이 들어온다. 둘 중 하나 아닐까. 내가 애늙은이가 아닌 그냥 애였거나, 아니면 내가 어른을 정의하는 방식에서 간과하고 넘어간 대목이 있거나.
  • 장호준
(많이 늦은 0916-0922 회고록)
내가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인천에 남아있다. 남동구 도림동에 살던 한 꼬마는 유치원에서 이구아나를 탈출시켰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났고, 할아버지와 함께 오봉산을 오르고, 동생이 태어난다는 소식에 <벼랑 위의 포뇨>에서 나온 또래 여자아이가 찾아오리라 기대하고, 파주로 이사 가던 날에 친구들과 이런저런 지켜지지 못할 약속을 했던 기억 등이 인천에만 오면 떠오른다. 인천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할아버지댁 바로 아래층에서 지냈었다. 공교롭게 두 집을 잇는 계단이 있었기에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리고는 했다. 여담이지만, 한 번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서 굴러내려갔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한 계단은 7살 되던 해, 아버지 직장으로 인해 파주로 이사가버리면서 영영 쓸 일이 없어졌다. 할아버지댁 아랫집에 새로운 식구가 이사오게 되면서, 아래층에서 계단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흔적만큼은 낯익은 짐 무더기 몇 꾸러미와 함께 남아있어서 인천에 올 때마다 매번 그 안에 잠겨있고는 했다. 공간에 잠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그 공간 외의 다른 곳에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곱씹을 수 있겠지만, 뭔가 아련한 시각적, 후각적 감각들이 실낱같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과거에로의 복기는 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저곳에서 이것저것에 치이다 보면 마냥 해맑았던 시기로 돌아가고픈 노스탤지어가 샘솟는데, 0에 수렴하는 그 가능성의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잊는 순간이 할아버지댁 바로 그 공간에 잠겨있는 찰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는 사실 그 자체도 슬프지만, 옅게나마 남아있는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두렵다. 공간을 지키는 가장 듬직한 존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나시는 그 날이 오면, 과거로의 회상여행을 선뜻 떠나기가 더욱 버거워질까봐 두렵다. 가장 아득하고 가장 아련한 기억들 속에는 할아버지의 자취가 군데군데 남아있어서 그런 것일까.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함만이 다가온다. 그냥 전부 거짓말이었음 좋겠다. 할아버지와 나의 공간이 조금 더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 장호준
(0909-0915 회고록)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사실. 제게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리인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적 동향을 완벽히 분석하여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한 고등학생의 꿈이 전공 강의를 들으며 무너졌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모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에 제 문체는 오늘도 만연체를 떨쳐내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0909-0915 회고록)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사실. 제게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이기 힘든 진리인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적 동향을 완벽히 분석하여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던 한 고등학생의 꿈이 전공 강의를 들으며 무너졌습니다. ‘생각의 흐름을 모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에 제 문체는 오늘도 만연체를 떨쳐내지 못합니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하고 ‘B급 감성’, ‘인간미’로 승화해내는 이들에게 동경과 찬미를 보냅니다. 명절 잘 보내세요 모두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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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2-0908 회고록) 이번주에 문득 현학적인 언어에 대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저 스스로의 특색이라고도 생각이 들었던 화법과 문체였어서 그동안에는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따로 없었는데, 한 강의에서 접한 어느 한 학우의 발언을 계기로 ’집단지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현학적인 언어습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0902-0908 회고록) 이번주에 문득 현학적인 언어에 대한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저 스스로의 특색이라고도 생각이 들었던 화법과 문체였어서 그동안에는 고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따로 없었는데, 한 강의에서 접한 어느 한 학우의 발언을 계기로 ’집단지성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현학적인 언어습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윤동주와 백석의 글귀를 좋아했었는데, 요즘 들어 이상과 카프카의 작품에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자기반성이라는 소재를 ‘제 안의 모순성을 최대한 지워내는 데’ 주로 사용했는데, 모순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많은 두 거장의 작품을 접하며 스스로의 모순을 좀 더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감이 있습니다. 자기소개글에 작성한 바 있는 인턴 전형에 합격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종로로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플랫폼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분야를 다루는 부처에서 몸담게 될 것 같은데,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보고자 합니다.
  • 장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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