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전문가인 친구 왈, E인지 I인지는 뱃속에서 상당 부분 결정되어 유년기에 굳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감각 추구 기간 동안 외부로부터 충분한 만족감을 얻으면 I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E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 어릴 적 흰색 보도블럭만 밟는다거나, 손가락을 배배 꼬는 따위의 일을 한번쯤은 해 보았을 텐데, 이제 거기에 심취할 수 있으면 완전한 I 성향이 되어 타인과의 관계를 그닥 선호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나는 태어나 자라길 완벽한 I로 태어났다. 사람보다 책이 친한 시절이 더 길었고, 지금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기가 쭉쭉 빨려 힘이 들곤 한다. 그러나 나이가 점점 들다 보니 감각에 온전히 심취한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스물다섯이나 먹고 폴짝대며 횡단보도 색을 맞추는 것은 내 체면이 도무지 허락하지도 않거니와, 책이나 음악을 통해 자극을 얻는 것은 물론 좋지만 필연적으로 지루해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반드시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학자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적어도 아카데미아에는 끝없는 퍼즐이 순한맛부터 매운맛까지 모든 단계와 종류로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으로 돈을 번다고? 이것 만 한 직업이 있겠느냐 싶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갈대 같은 것, 막상 책이나 논문을 펼치면 또 놀고 싶기도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나의 소명과 쾌락 사이를 진자운동하며 고뇌하는 것, 학문적 엘리트와 행복한 소시민 사이에서 나는 늘 갈등한다. 인터넷이나 자기계발서들은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든 삭제하라는 메시지를 내세운다. 소시민을 혐오하며 기계처럼 살든, 아니면 욜로족이 되어 완전히 즐기는 삶을 살든 한쪽 극단의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더 자극적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진리는 회색지대에 있다.
그렇다면 회색지대의 어디쯤에 내가 서 있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관건일 터인데,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qualitative case study다. 지금 인턴을 하는 연구실은 다행히도 본받고 싶은 사람들 (적어도 부분적으로는)이 아주 많은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나름의 워라밸을 발견하시고, 모두들 연구를 사랑하시는 것이 느껴진다. 물론 행복하냐고 물어보면 아직 늦지 않았으니 도망치라 말씀하시지만...그래도...사랑하시죠?
우리 교수님은 소시민적 삶을 어마어마하게 축소하신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살기는 싫지만 군대에 가기 전까지는 욜로적인 삶은 살아 봤으니 그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겨울방학을 그렇게 한 번 보내 볼 생각이다. 주말에 출근하고, 연구에 빠져 워라밸을 내팽개치고 (건강도 안 좋아지시는 것 같기도 하다), 잡념을 억제하고 언제나 hyperfocus 상태를 유지하는 사이언스의 화신!
그래서 일요일 오후에 출근을 해 보았다. 종종 주말 출근을 해 온 적이 있기는 하지만, 루틴으로 만들어 본 적은 없으니까. 미리 뇌를 예열하고, 일주일치 딴짓(장문의 심지를 쓰는 등의)을 몰아 하고, 다음주 일정을 상상해 놓는 것은 분명 능률을 올려 주는 구조적 장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의 슬픈 점은 영혼을 바친다고 해도 멤피스토텔레스가 나타나 그 보상이 얼마만큼인지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겨울 방학을 기회삼아 직접 확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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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심지 구독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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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뽯팅! "연구자 = 생각하는 것으로 돈을 버는 직업" 이거 재밋넹
놀아도 보고 죽어도 보고...다 해보쟈 ㅋㅋㅋ
이
이준영
뭔가 다시 보니 너무 천박하게만 적은 것 같기도 하지만...난 세속적이기도 하니까 틀린 말은 아닌거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