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은 글자 그대로 '앎'입니다. 미가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은 미가 바로 각성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에 대하여 사회에 대하여 삶에 대하여 각성하게 하는 것이 아름다움이고 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모름다움'이라고 술회합니다. 비극이 미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야말로 우리를 통절하게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얇은 옷을 입은 사람이 겨울 추위를 정직하게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 아름다움'이란 뜻은 '알다' '깨닫다'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세계와 자기를 대면하게 함으로써 자기와 세계를 함께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담론, 신영복
아름다움...앎다움...
여기서 '다움'은 ‘특성이나 자격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므로 (표준국어사전)
아름다움은 알만한 특성이나 자격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 특성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을 뜻하고,
알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알면 좋을 것을 뜻하리라 해석했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름답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
개인의 인지적 한계는 수십만년간 그대로인 반면,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이 글은 일론머스크의 뉴럴링크가 상용화되기 전의 시점에 쓰인 글이다.) 인류 전체, 나아가 인류가 만든 AI는 기존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정보를 생산해내고, 이순간에도 각 분야의 극단에서 매시간, 매분 혁신과 새로운 발견은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부끄럽게도 내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 중 그 어느것 하나도 온전히 알지 못한다. 나는 이것들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들이 생산되는 과정에 대해서도, 그 결과물에 대해서도 온전히 접근할 수 없다.
요즘 매주 토요일마다 현광훈 마이스터의 공방에서 시계를 만들고 있다. 시계 나사와 태엽과 뼈대를 하나씩 하나씩 황동과 철 덩어리로부터 깎고 다듬으며 내가 매일 수십 수백번은 사용하는 시계에 대해 처절하 무지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며 내가 만들고 있는 시계가 아름다움을 느낀다. (여전히 더 복잡한 아날로그 시계, 혹은 디지털 시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거의 완성되가는 시계 ㅎㅅㅎ
누군가 '아이폰'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겠지만, 그는 정작 그가 이용하는 아이폰의 그 어느것 하나도 알지 못하는 채로 아름답다고 이야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애플 아이폰의 수석 엔지니어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많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하는가?
아니다.
알면 좋을 것 또한 아름답다.
보라, 이렇게 쥐뿔도 모르면서 (반)영구적인 글로까지 싸지르는 사람을 보고있지 않은가? 질문을 던지고 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생각한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설령 내가 그것에 대해 평생 알 수 없을지라도. 구도가의 길을 걷는 이들, 종교를 가진 이들이라면 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이들이라면 느꼈겠지만 순환논증에 빠지고 말았다. 알면 좋을 것이 아름다운데, 결국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두가 같은 대상에 대해 같은 정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않는 것에서 모든 인류의 갈등은 시작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들은 모름다운 것들이다. 그렇기에,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닌, 무관심일 것이다.
그렇다면 미움은 무엇인가? 이것에 대해서도 다루는 글은 내일 이어쓰겠다. 방금 안홍준 형님의 글을 읽으며 떠오른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