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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요일 - 험난하지만 의미있는 길이란? (이어서) / 시니컬해지면서 이상을 지킬 수 있을까? / 신앙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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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_Kim
<험난하지만 의미있는 길이란? (하)편>
2009년 10월 15일, 취임한지 1년이 조금 지난 여시장과 그의 남편은 차를 타고 티케체오 시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의문의 괴한들에 의해 차에 돌격소총과 수류탄으로 공격이 가해졌고, 남편은 죽었습니다.
다행히 그녀는 죽은것으로 착각하고 살려두었지만, 그녀는 수많은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그녀는 시장직에서 물러나기를 거부했고, 자신의 정당인 제도혁명당(PRI)에 경호인력 추가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들은 소극적이었고, 그녀의 전화를 무시하기도 합니다..
산토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시의 시민들을 위해 여러 구호정책을 벌이고, 마약 카르텔과 대립합니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그녀는 다시 습격을 당합니다.
2010년 10월 22일, 이번에는 확실히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그녀와 동행하던 공무원, 기자까지 총상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습니다.
시장직을 내려놓기를 거부하고, 다시한번 선거를 시작하며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상처입고, 훼손당하고, 굴욕을 당한 제 몸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부끄럽지 않고, 저와 제 가족들의 인생을 조각한 불행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정신적 상처에도 불구하고 계속 서 있는 것은 제가 완전하고 강인한 여성이라는 살아있는 사역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한 몇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 국민, 특히 가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계획, 프로젝트, 행동을 계속 찾고, 싸우고, 실행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단계에서는 티키데오의 리더로서 내가 가진, 직책, 책임에서 물러났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내 인생의 모범을 보여주며 교육해야 하는 세 자녀가, 나에게 인생의 가치를 알려준 세 아이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있기에 항복할 수 없습니다."
세 아이가 항복의 이유가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항복하지 않는게 신기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항복했을 것이고, 누구도 그 사람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도.
하지만 카르텔의 공작으로 그녀는 시장선거에서 낙선하고, 그녀를 경호하던 경찰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떠납니다.
그녀는 정치활동을 그만두고, 3명의 아이의 엄마로서 그들을 양육하는데 최선을 다합니다.
이제 시장은 아니었지만, 본인들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그녀는 2012년 11월 12일에 딸을 유치원에 데려다주다가 카르텔 조직원들에게 포위당합니다.
제발 딸만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녀의 요구를 그들은 들어주고, 그녀를 데려가서 강간하고, 고문하고, 살해해서 고속도로에 유기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그녀의 죽음에 눈물을 흘렸고, 그녀를 죽인 카르텔에 분노해서 그 카르텔에 보복을 해서 괴멸시킵니다.
힘도 없으면서 이상을 쫓다가 아이들을 고아로 만든 무능력한 엄마라고 할 수도 있고,
힘과 책임을 가지고 자신의 시민들을 지키며 끝까지 정의를 지킨 영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모두가 부패한 세상에서 혼자 정의를 부르짖었던 이 여인은 미련한걸까, 아니면 용감한걸까?
판단은 당신의 몫입니다.
산토스의 추모영상으로 마친다.
사랑을 줬지만 돌아오지 않음을 슬퍼하는 여인을 그린 노래인 Si Una Vez (Girl In A Coma)가 테마곡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니컬해지면서 이상을 지킬 수 있을까?>
주의) 난해하고 중2병스러움. 난 경고했습니다.
요즘 내 변화를 하나 체감했다.
조금씩 이상보다는 현실에 집중한다.
나는 세상의 악과 싸우겠다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걸 위해 UDT를 꿈꿨다.
철이 들면서 UDT를 내려놓고, 검사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검사가 얼마나 되기 어려운지, 얼마나 고된 직업인지, 얼마나 권위가 하락했는지를 알고나니 현실을 체감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검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뇌물에 무너지는 검사도 많고, 살해 협박과 좌천에 무너지는 검사도 많다.
치안이 안좋아짐에 따라 검사는 더 우스워진다.
그렇지만 세상의 악과 싸우려면 검사가 최선이고, 나는 오늘도 검사를 향해 나아갈거다.
그 전까지는 당연히 내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큰 꿈들이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지 체감했고,
지금까지 내가 부드럽게 말하면 이상적으로, 강하게 말하면 대가리 꽃밭으로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이 도와줄 수 있어도 결국 제일 고된 부분은 내가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현실주의의 장점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게 되는 것이지만, 단점은 시니컬해진다는 것이다.
시니컬해짐의 또 다른 부작용으로, 신앙이 사라진다.
(자세한 부분은 후술)
신앙이 사라지고, 과거의 이상들이 우스워지기 시작하는 내가 낯설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를 믿을 수 있을까?
남아있는 이상들을 현실으로부터 지키는게 나의 숙제다.
하지만 내가 현실에 충실하면 내 주변인들은 그만큼 이상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굳이 누군가 시니컬해야 한다면 내가 시니컬하고 싶다 ㅋㅋ
앞으로 김영진이 주변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기를 이제 기도하지는 못하지만, 소망한다.
<신앙의 결론>
역사를 공부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들과 얘기해보면서 <신은 우리를 사랑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다.
신정론의 문제와 함께 깊이 생각하고, 많은 연구를 해봤지만 나는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얘기할 수 없다.
통계학적으로 말하자면, <신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귀무가설(H0)을 기각하는것에 실패했고,
<신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귀무가설을 기각하는것에는 성공했다.
신의 존재를 믿지만, 그를 신뢰하지는 못하겠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존재를 어떻게 신뢰할까?
(물론 내 경험과 지식이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고,이 경험과 지식을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게 내 현 생각이다.)
(통계학적으로는 samle data(표본)와 그걸 바탕으로 만든 test(검증법)이 충분히 많고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기독교 신자로서 알게 된 나사렛의 예수는 정말 위대한 인간이고, 인류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가 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인류를 사랑하는 존재가 전지전능 하면 세상에는 왜이렇게 끔찍한 일들이 많을까? (적절한 예시: 난징 대학살)
이 의문에 대해서는 평생 연구해야 할것만 같다.
그저 신에게 질문할 수 있다면, 왜 그런 사건들을 막지 않았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아니, 난 항상 질문한다.
하지만 신은, 야훼는 침묵하신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내 이웃들을 사랑하고, 지켜줄거다.
이게 내가 신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다.
세상에 끔찍한 악을 허락한 당신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명령한 걸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신뢰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이게 옳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한성 30년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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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심지 구독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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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Suhyun
마지막 문단이 테드 창 '숨' 소설 중 옴팔로스의 내용이 연상됩니다.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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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김대영
인상깊은 타인의 삶과 영진님의 결심 잘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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