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노는 시간 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나 실기 등에 매진했다.
이러한 풍습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부터 지속되었으며 우리나라가 전쟁의 상흔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해 선진국에 이를 수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본다.
이러한 교육의 열정은 실로 대단했는데 수능 문학을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채만식 선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등학생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의 대학생과 비슷하던 당시에는
대학에 보내기 위해 집안의 기둥을 뽑는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큰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뒷받침할 인재를 양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어느 정도라면 낙동강에서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은 대학생들의 징집을
거부할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국민은 대학과 그곳에서 배출된 인재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반면 동시가 이러한 인재 양성을 등한시한 많은 개발도상국은 실패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표적으로 냉전 시기 공산주의를 막는 방파제로서 서구의 수많은 지원을 독차지한 콩고는 동시기 한국
보다 수배 많은 원조와 풍부한 자원을 두고도 실패했다.
이러한 교육적 풍토 속 한국은 속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흔히 빨리빨리 라고 하는 그 문화
말이다. 이러한 다양한 배경은 한국을 선진국이란 위치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그런데 바로 이 빨리빨리 문화로 인해 우리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
본론
상처받고 고립된 청년들
한동안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지만, 지금은 잊힌 키워드는 바로 자살과 고립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시절에도 이 두 문제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해결은커녕 오히
려 악화하였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작년 대한민국은 자살률 10년 중 최고치를 달성했다. 특히 10대에서 30대의 자살률은 심각한 지경인데
매년 4,500명의 친구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자살 비상 기구를 설치하고 그 난리가 난 일본은 15.6%인데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한국은 27.3%인 상황
은 기괴하기까지 하다.
여유와 관용이 사라진 사회
세계 가치관 조사 WVS에서는 자녀에게 가르칠 덕목 5가지를 꼽아보라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많이 뽑은 덕목의 순위는 상상력, 책임감, 독립, 노력, 절약, 인내 순이였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문제없어 보이지만 여타 국가 대비 현저히 떨어지는 항목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낮은 순으로 이타심, 순종, 종교, 관용이었다.
특히 가장 낮은 수치인 이타심은 고작 4%로 옆 나라인 일본(33%)과 중국(28.7%)에 비교해도 심각하게
낮은 수치이다. 이제 감이 오는가? 우리 사회가 여유와 이타심의 미덕을 버린 이후부터 많은 것이 망가지
기 시작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타인을 멀리하는 모순된 행동을 일삼았다.
그리고 그 후과는 분열된 사회라는 나비효과로 돌아왔다.
용서를 잊고 증오하는 모순된 사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항상 물어뜯을 대상을 노린다.
특히 지금은 잘못한 사람을 비판한다는 미명하에 합당하지도 않은 비난만 해대는 사람이 많다.
과연 그 사람은 진정으로 건전한 비판을 함으로써 바로잡으려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화풀이의 만만한 대상을 찾아서 신난 것일 뿐일까?
많은 사람들이 비판할 때 범하는 오류가 바로 이것이다. 잘못한 사람을 비판할 때는 그 사람의 잘못과
논리의 문제점을 중심으로 지적해야지 그 사람과 그 가족 주변 인물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과 혐오는
해답이 될 수 없다.
특히 많은 사람들은 단편적인 부분만 보고 판단하기에 종합적인 상황과 변화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적어도 개과천선하고 바뀌려는 사람, 긍정적으로 바뀌려는 사람한테까지 돌을 던져야 속이 후련한가.
하다못해 그 사람으로 인한 피해자가 있다면 모를까 최근 5년간 벌어진 사건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또한 혐오를 혐오로 되받아치는 행동의 문제는 전혀 효과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혐오로 혐오를 되받아쳐도 그 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별 타격을 입지도 않으며 개과천선을 할 가능성
은 눈곱만큼도 없다. 반면 스스로 바뀌려는 사람, 억울하게 마녀사냥당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잡으라는 혐오자와 범죄자는 못 잡고 전혀 엉뚱한 사람만 죽어나는데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이제 혐오를 혐오로 되갚으며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멈추어야 한다.
아무리 정당화하려고 해도 또 다른 이름의 혐오일 뿐이다.
진실을 사랑하되 잘못은 용서하자. 무고한 자를 비난하느니 죄지은 자를 용서하는 게 낫다.
결론
다시 방향을 찾아보자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속도를 중시해왔다.
그렇기에 모두가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면 가장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 사회의 발전과 국가의 번영은 100m 직선 달리기보다는 정해진 길이 없는 도보여행에 가깝다.
그렇기에 앞만 보는 게 아니라 옆을 볼 줄 아는 사람이 큰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고 결국
목표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한 후에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런 기본적인 준비도 없이 무작정 달려온 게 아닐까.
분열된 집안은 바로 설 수 없다
우리는 사랑을 해야한다. 타인을 사랑하고 상처를 보듬어주어야 한다.
사람은 고쳐쓰는게 어렵다지만 스스로 혐오의 굴레를 벗어나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다면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사회로 복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은둔 고립중인 청년의 수는 54만명에 이르고 그중 여성은 72.3% 남성은 27.7% 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경제적 손실은 연간 7조원이다.
특히 많은 은둔 청년들은 가정폭력, 가난, 학교폭력 등의 다양한 범죄와 악조건에 장기간 노출되어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회생활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상호작용의 부재는 인터넷상의 혐오의 선동에 대한 면역력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혐오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게 우리는, 우리사회는 진정으로 손을 내밀어 주었는가.
물론 약자가 선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약자 중에서 자신보다 더한 약자를 착취하거나 자신이 약자라는 점을 이용해 타인의 선의를 짓밟고
법과 도덕을 모욕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이 봐왔다.
다만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저 청년중에서 단 한명이라도 사회는 생각보다 살아갈
만하고 아직 선인이 이 사회에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어 스스로 자기혐오의 족쇄를 풀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
"
관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인류의 전유물이다. 우리는 모두 약점과 실수로 만들어졌으니
서로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자는 것, 이것이 자연의 첫 번째 법칙이다
Voltaire
"
사진 출처
슈카월드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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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심지 구독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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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
김
김대영
동감합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더라도 자살률이 이렇게 높으면 출산율 높여놔도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젊은 인구가 자살하면 경제동력도 상실할 거고 노인들 자살률이 높은 것을 보면 차세대가 나라에 대해 신뢰나 자부심을 갖기도 어려울 거고)
한편으로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예방하는 노력 그 자체를 통해서 국민들의 행복도도 높이고 보다 나은 나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서
서동현
이미 살아가는 생명을 지키는데 좀 더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국민 하나하나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노력한다면 어느정도 복구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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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우
사랑 좋죠. 저도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다만 실제로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서
서동현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유를 가지고 사람을 바라보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사람마다 마음을 여는 속도가 다르고 자라온 배경도 다르기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인간관계를 맺는 게 좋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뿐만 아니라 여타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도 적용되는 부분인데 현재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인 집단 간 갈등은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른 집단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그러려고 해도 제풀에 못 이기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봤습니다. 타인 그리고 다른 집단을 이해하는 첫걸음은 다소 지루해도 low tempo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타인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의 관찰이 필수인데 이게 어려우니 사회 전반의 인간관계가 꼬이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최민우
비슷한 고민이 있어 와다다 쏟아보자면,
그럼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작은 실천이면 되는 걸까요? 사실 사회의 문제를 만들어 낸 것은 더욱 거대한 구조일 텐데 말이죠.. 그 안에서 작은 나눔과 사랑의 경험이, 주변은 바꿀지언정 - 그럼으로써 내 마음은 약간 풍요로워질지 몰라도 - 세상을 바꾸는 것일까요? 문제 의식까지 닿는 것은 너무도 좋은 일이지만, 거기서 그쳐야 한다면 우리는 그저 안타까워하는 것이 역할인 것일까요?
저도 알아가는 중이지만, 제겐 많이 어렵기만 합니다.
서
서동현
사실 한 개인이 사회 문화를 바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회적 영향력이 높은 원로나 고위직인 사람조차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해결 방안은 사회 다수의 사람이 문제의식을 지니고 교육을 통해서 미래세대에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저부터라도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큰 변화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의 변화가 모이면 큰 결과가 오지 않겠냐는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게 한 개인으로서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