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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1020 회고록)

장호준
또다시 정신없는 한 주였습니다. 모의국회 2차 리허설 준비에 본격적인 시험기간 돌입. 거기에 심지어 모교로부터의 사건사고를 곁들인. 지난 며칠간 저를 혼란스럽게 만든 모교의 일에 관해서는 주변의 많은 분들께서 목소리를 내주시고 계시고, 저 또한 나름대로의 고민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내일이 전공과목 시험인데다 지금까지의 산출물 또한 만족스럽지 않은 퀄리티의 것이기에 시간을 더 달라는 비겁한(심지어는 아무도 관심없을 수 있는) 변명을 하며 아주 잠시 미뤄두려고 합니다.
이에 오늘은 모교에 잠식되어버린 내면을 환기하고자 이번 주에 느낀 또 하나의 시사점을 공유해드리고자 합니다. 바로 '경로의존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경로의존성이라는 개념에 관해서는 전공 강의 내에서 수차례 접했을 뿐, 일상대화에서 이를 논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주에 저로 하여금 스스로의 경로의존성에 관해 고민하도록 만든 계기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 부분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합니다.
모의국회를 준비하다 보면, 각종 요인으로 인해 기존에 준비해오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야 할 운명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쓰라리기는 하지만 성장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순간들이죠. 하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주어지는 조건도 전부 천차만별입니다. 무조건 바꾸어야 하는 요소와, 더 나은 연극을 위해 변경을 고려해볼법한 상황으로 나뉘기도 하죠. 지난 몇 주간 이번 가을을 함께한 사람들과 고민한 내용은 주로 후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후자와 같은 딜레마를 대하는 자세가 이토록 천차만별일 수 있구나를 체감했습니다.
가장 큰 범주로 구분하자면, '도전'과 '안정'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느냐를 기준으로 이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번 모의국회를 거치며 저는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저 두 범주 중에서 후자에 강하게 밀착해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자를 좀 더 의연하게 택하는 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말을 하면서도 '아 내가 너무 매몰비용에 몰두해있는건가'라는 생각이 수십 번은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혁신과 창의의 불꽃을 불태우는 동료들의 열의에 찬물을 끼얹는 건 아닐까하는 죄책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경로의존성 개념에 결부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된 건 어제 들은 강원택 교수님의 말씀 이후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한국 정치문화의 퇴보를 두고 '경로의존성'을 거론하시며 결국에는 87년 체제로 대표되는, 제도적 측면의 경로의존성을 극복해야 한국 정치문화의 발전을 꾀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국 정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자리에서 이번 주는 문득 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으로 다가온 것은 지금 제게 뭐가 가장 필요한지였습니다. 저의 경로의존성을 변호할 자신감과 근거(혹은 변명)이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 경로의존성을 깨부술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결론내리기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머리 아픈 고민이 많은 요즘, 이 고민은 언제쯤 그 실마리가 풀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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