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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은 0916-0922 회고록)

장호준
내가 가장 어릴 때의 기억은 인천에 남아있다. 남동구 도림동에 살던 한 꼬마는 유치원에서 이구아나를 탈출시켰다가 선생님에게 혼이 났고, 할아버지와 함께 오봉산을 오르고, 동생이 태어난다는 소식에 <벼랑 위의 포뇨>에서 나온 또래 여자아이가 찾아오리라 기대하고, 파주로 이사 가던 날에 친구들과 이런저런 지켜지지 못할 약속을 했던 기억 등이 인천에만 오면 떠오른다.
인천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할아버지댁 바로 아래층에서 지냈었다. 공교롭게 두 집을 잇는 계단이 있었기에 하루에도 몇번씩 오르내리고는 했다. 여담이지만, 한 번은 그 계단에서 넘어져서 굴러내려갔던 것 같기도 하다. 하루에 몇 번이고 왔다갔다 한 계단은 7살 되던 해, 아버지 직장으로 인해 파주로 이사가버리면서 영영 쓸 일이 없어졌다. 할아버지댁 아랫집에 새로운 식구가 이사오게 되면서, 아래층에서 계단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흔적만큼은 낯익은 짐 무더기 몇 꾸러미와 함께 남아있어서 인천에 올 때마다 매번 그 안에 잠겨있고는 했다.
공간에 잠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물론 그 공간 외의 다른 곳에서도 어린 시절의 기억을 곱씹을 수 있겠지만, 뭔가 아련한 시각적, 후각적 감각들이 실낱같이 남아있는 공간에서 과거에로의 복기는 뭔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저곳에서 이것저것에 치이다 보면 마냥 해맑았던 시기로 돌아가고픈 노스탤지어가 샘솟는데, 0에 수렴하는 그 가능성의 막막함을 조금이나마 잊는 순간이 할아버지댁 바로 그 공간에 잠겨있는 찰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암 진단을 받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다는 사실 그 자체도 슬프지만, 옅게나마 남아있는 과거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도 두렵다. 공간을 지키는 가장 듬직한 존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떠나시는 그 날이 오면, 과거로의 회상여행을 선뜻 떠나기가 더욱 버거워질까봐 두렵다. 가장 아득하고 가장 아련한 기억들 속에는 할아버지의 자취가 군데군데 남아있어서 그런 것일까. 불안한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그저 막막함만이 다가온다. 그냥 전부 거짓말이었음 좋겠다. 할아버지와 나의 공간이 조금 더 오래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한성 30년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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