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오랜만에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래도 한달 간 각종 과목들 시험, 리포트, 실험 보고서, 학회가 겹쳐 있던 이유라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아무튼 최근에 정말 많이 바빴다...오늘은 내가 연구에 임하는 자세를 논해 보자.
먼저 정말 꽂힌 노래를 소개한다. 모브닝의 알바트로스. 일단 가사를 한번 읽어보자.
나의 날갯짓은 뭔가를 위한 수단이 아니야 나의 날갯짓은 목적이야 그 끝이 비참할지라도
누군가 말하지 ‘살아남기 위해선 낮게 날아야 해’ 내가 쫓는 건 행복이 아니야 완벽일 뿐이야
뜨거운 태양에 다가서리라 온몸이 타올라 부서지더라도 외로운 비상의 끝이 비극이라도 죽음뿐일지라도
바싹 말라가는 검붉은 피와 망가진 영혼은 머지않아 파괴되리란 걸 잘 알아 그깟 보잘것없는 나의 모든 것 내어주리라
뜨거운 태양에 다가서리라 온몸이 타올라 부서지더라도 외로운 비상의 끝이 비극이라도 죽음뿐일지라도
나를 까맣게 태워버린 절망과 소멸의 빛은 하늘 그 아래 희망의 장송곡이 되리라
뜨거운 태양에 다가서리라 온몸이 타올라 부서지더라도 외로운 비상의 끝이 비극이라도 죽음뿐일지라도 찬란한 폭발 기꺼이 되리라
이카루스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늘을 날기 위해 팔에 깃털을 붙이고 높이 날아올랐지만, 너무 높이 난 결과 밀랍이 녹아 추락하게 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로 미지에 대한 인간의 욕심에 대해 비판하는 이야기이다.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바로 밀랍은 형편없는 접착제라는 것이다. (...)
밀랍이 형편없는 접착제이기에, 우리는 새로운 접착제를 개발해 또다시 시도한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그것이 바로 과학자의 자세이다.
과학자로서 미지에 도전하면서, 때로는 내 가설이 틀렸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가 아마 스스로에게 제일 솔직해지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 두 개의 선택지가 존재한다. 포기하거나, 다시 도전하거나. 이때 문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도전하는 우직함, 무식함이 있어야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만약 인류가 모든 지식을 잊어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과학은 단순한 지식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이론을 세우고 검증하는 하나의 사고 체계이기 때문이다. 박사 학위까지의 먼 여정은 생각하는 과정에서 프로로 만들어주는, 자신만의 연구 철학을 세워 나가는 과정이다.
비상하고 추락하고, 비상하고 추락하면서 떄로는 헛되어 보일 수 있지만, 지식의 장점은 절대로 그것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번 시도해 봤으면 이제 안되는 이유를 찾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이 과학자로서의 직업 윤리이다. 자연의 미지를 밝히는 긴 여정에서, 이 길은 혼자 나서는 길이 아니기에 다른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타서, 그 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내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한다. 과연 나는 스스로 빛이 날 정도로,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Brilliance란 단어를 좋아한다. 보석 속에서 반사되는 빛이 아닌, 뜨겁게 달아오른 쇳물에서 나오는 그 빛을 좋아한다. 스스로 빛나기 위해서는, 수천 도의 온도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 빛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그런 아름다운 빛을 내기를 동경한다.
이카루스의 이야기에서, 그는 추락하며 뜨거운 광채를 뿜어냈을 것이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밀랍이 아닌 새로운 접착제를 사용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깃털이 아닌 청동을 써 봤을 것이다. 수천 년 후, 우리는 비행에 성공했고, 이제 지구를 넘어 우주 저 멀리를 도전하고 있다. 셀수없는 실패 속 쓰여진 성공의 기록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영광이다.
다음 편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해 준 이야기인, 그럼 넌 언제 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