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함을 마주하면 습관적으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다. 꺼내려고 꺼내는 것도 아니고, 마주한 것이 그다지 끔찍하지도 않음에도, 타인의 치부와 정신병과 안쓰러움을 미처 품어주지 못한 채, 그러나 동시에 그렇고자 하는 마음에, 이 둘 중 갈팡질팡 하나 어느 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탓에 그저 소멸을 욕망할 뿐이다.
(202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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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사는 이유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제가 사는 이유가 죽고 싶지 않을 떄 죽을 수 있으며, 동시에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도로 답했던 것 같네요.
최민우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다운 것이라면,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터부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죽음이라는 개념을 머릿속에 되뇌는 것만으로도 삶의 명도가 확 낮아지기도 하니, 달리 어찌할 방도를 모르겠더군요.